볼리비아 코파카바나
한국인으로서 세계여행을 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경험 중 하나는 국경을 육지로 건너는 경험이었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섬'이라, 타국을 가려면 비행기로 바다를 건너야 하기에, 2018년 유럽여행을 하면서 처음 여러 나라들을 큰 고생 없이 육지로 건너며 세상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2019년 5월, 남미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여정은 특별히 '볼리비아 홉'이라는 버스 투어를 신청해서 하루에 걸쳐 페루 쿠스코에서 볼리비아 라파즈까지 이동했다.
밤 9시, 버스 터미널 앞에 도착했다.
외관만 보면 장기매매나 마약 거래 같은 무서운 단어가 떠오르는 투박한 분위기였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선택하는 버스 투어인 만큼 관리자들도 있었고 체계가 잡혀있었다. 나는 일찍 투어를 예약해서 가장 좌석이 좋은 2층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의자를 눕혀 잠을 청했다.
다음날 새벽 6시, 페루 푸노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해도 안 뜬 이른 새벽이기도 했고 원래 푸노는 별 볼 일 없는 작은 마을이지만, 나에겐 들리지 않으면 안 되는 아주 소중한 곳이었다. 이 시골 동네에서 볼리비아 관광비자를 발급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볼리비아는 독특하게 거의 모든 국적자들에게 관광비자를 필수적으로 발급받게 했었다. (2025년 12월부터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8개국에 대해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다고 한다.) 미리 비자를 발급받지 않는다고 입국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100달러가량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보통 한국인들은 서울에 있는 볼리비아 대사관에서 어렵지 않게 비자를 발급받지만, 나는 남미여행을 미국에서 시작했기에 볼리비아 대사관에 들릴 기회가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푸노에도 다행히 볼리비아 영사관이 있었다! 할렐루야!
버스의 다른 관광객들이 푸노를 구경하는 동안, 나는 아침 8시에 오픈하는 영사관으로 달려가 이제 막 출근하는 영사관 직원들을 불쌍한 고양이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며 기다렸다. 내가 많이 절실하고 급해 보였는지, 직원들은 창구를 일찍 열어 단 10분 만에 비자 발급을 도와주셨다. Coreana(한국인) 여권인걸 보시고는 처음 보는 국적자인지 매우 신기해하셨다.
비자 발급 소동 덕에 푸노의 서늘한 동트기 전 모습은 내 기억에 아주 진하게 남았다.
국경을 넘는 건 생각보다 별일이 아니었다.
페루 출국 심사 후에 두 발로 국경을 건너서, 볼리비아 입국 심사를 받으면 끝이었다.
특히 남미인들에게는 이렇게 국경을 넘는 것이 일상인지, 너무 자연스럽게 서류를 작성하고 버스에서 알아서 짐을 내려 한구석에 일렬로 모아놓더라. 나와 한국인 동행들은 그저 그들을 따라 하면 됐다.
코카인, 필로폰, 대마 등 마약 문제가 큰 지역인지라 짐 검사는 꽤나 꼼꼼히 했다. 그렇게 나는 아직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볼리비아 비자로 볼리비아 땅을 밟았다.
오후 1시, 볼리비아 코파카바나에 도착했다.
코파카바나는 나처럼 페루-볼리비아 버스 투어를 신청하면 꼭 들리는 해발 3,800m의 호수 마을이다. 세계에서 배가 다닐 수 있는 가장 높은 호수인 티티카카(Titicaca) 호수를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호수가 얼마나 큰지, 수평선이 끝도 없이 펼쳐져서 마치 바다 같았다.
코파카바나에서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갓 잡은 신선한 송어, 트루차(Trucha) 요리를 꼭 먹는다.
나는 이미 이곳을 다녀간 한국인들에게 맛을 인정받은 포장마차에서 동행들과 함께 단돈 3천 원짜리 트루차 덮밥을 먹었다. 송어 한 마리가 통째로 바삭하게 구워져 올려진 덮밥이었다.
밖으로 보이는 바다, 아니 호수를 보며 밥을 먹으니 그동안 버스로 이동하며 쌓였던 피로가 싹 가셨다.
5월의 코파카바나는 눈부셨다.
날씨까지 도와줘서 덥지도 춥지도 않았고, 고산지대에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숨 쉬는 것도 힘들지 않았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니 어젯밤부터 짐을 바리바리 싸서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으며 약간 긴장했던 마음도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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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진'을 건질 수 있는 언덕이 있다길래 동행들과 구글지도를 열심히 찾아 세로 칼바리오라는 언덕으로 향했다.
그런데 구글도 아직 잘 파악 못한 길인지, 두 번이나 이상한 길로 안내를 해서 허탕을 쳤다. 심지어 그중 하나에서는 스페인어로 "험한 길"이라 적힌 표지판도 마주쳤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맞는 길을 찾아냈다. 말이 언덕이지 거의 등산에 가까웠다. 비포장 돌길을 숨이 턱턱 막혀가며 올라가다가, 더 이상 못 올라가겠다 싶을 즈음 정상에 도착했다.
인생 사진을 넘어 코파카바나를 여행 한다면 안 가면 범죄에 가까운 풍경이었다. 짙푸른 티티카카 호수와 코파카바나 마을의 붉은 지붕들, 그리고 멀리 안데스 산맥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특히 해 질 녘에는 하늘이 오렌지빛과 보랏빛으로 물들어서 남미를 통틀어서 손꼽히는 장관이라는데, 나는 6시까지 버스 앞으로 집합해야 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하산을 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 다시 버스를 타고 달렸다.
밤 중에 휴게소에 들러 엉성한 햄버거도 먹고, 투어사에서 제공하는 팝콘을 먹으며 버스 안에서 틀어주는 영화도 봤다.
밤 10시 반,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볼리비아 라파즈에 도착했다.
남미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을 포함한 본격적인 볼리비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Copacabana, Bolivia_Key words
- 페루 푸노(Puno)
- 볼리비아 코파카바나(Copacabana)
- 티티카카 호수(Titicaca)
- 트루차(Trucha)
- 세로 칼바리오 언덕 (Cerro Calvar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