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할머니의 동요, 동화 육아 1 ]
손주가 백일을 맞았다. ‘인성’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손주의 태명은 ‘대박이’(이런저런 사유로)여서 이름과는 별개로 가족들은 자주 대박이라 부른다. 식당에 예약하여 양가 가족 10여명과 백일 축하를 하려다가, 코로나 방역조치가 격상되어, 집에서 간단하게 상을 차리고 양가 조부모만 참석하기로 했다. 돈도 절약하고, 대박이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더 좋은 선택이었다.
후배들이 내게 질문한다. “진짜 손주가 자식보다 더 예뻐요?” 물론 답은 ‘그렇다’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런 질문을 받고 보니,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손주를 돌보면서 요맘 때 내 딸들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과 생각이 들었을까, 얼마나 예뻐하며 키웠나? 하는 등의 생각이 뭉게 뭉게 피어올랐다.
나는 두 딸을 일본 유학 중에 낳았다. 친정어머니가 일본으로 오셔서 한 달 정도씩 두 아이의 육아를 도와주셨다. 오셔서 당신 딸인 나와 손녀를 돌보는 일만 하시다가 가셨는데도, 엄마는 손주들 덕분에 일본에 여러 차례 오갈 수 있었다며 기분 좋은 경험으로 생각해 주신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 운이 좋은 산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초보 엄마로서 나는 딸들이 차차 커 가면서 더 이뻤지, 백일 전후의 큰 딸을 진정 이뻐했나 싶다. 이쁘기보다 몸도 마음도 고되고 힘들었던 기억이 크다.
큰딸 대박이 엄마는 달랐다. 산후조리원에서 2주, 집에 돌아와서는 3주 동안 국가가 지원하는 산후 조리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니 1달 반 정도는 주위 가족들이 물리적으로 돕지 않아도 될 만큼 사회적 돌봄 구조가 마련되어 있었다. 해산 이후 산모들은 자신의 몸을 회복하는 동시에 신생아를 돌보는 기초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어서 제도적인 차원에서 참 좋아졌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산후조리원 비용이 만만찮게 많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앞으로는 이 비용도 국가가 부담하게 되리라 기대해본다.
딸네는 우리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 산후 조리사님이 계시던 3주 사이 내가 한 일은 딸이 저녁식사를 준비해주고, 식사하는 동안 대박이를 돌보는 일이었다. 물론 그 사이 대박이가 자고 있을 때도 많았으니, 그럴 때는 딸의 말벗을 해 주었다. 큰 딸은 워낙 독립적인 아이인데, 아이를 낳고 보니 ‘혼자 힘으로는 안 되겠구나’ 싶었는지, 육아에 대해 함께 의논하고 자주 도움을 청한다. 무엇보다 대박이를 즐겁게 돌보면서, 수유와 수면교육 면에서 차분하게 훈육시킨다. 그래서인지 대박이는 많이 웃고, 인지나 신체 활동도 무척 빠른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
백일이라는 행사를 끝낸 바로 다음 날, 딸이 복직했다. 복직이기보다는 새로운 회사로 이직했다. 백일짜리를 두고 출근이라니, 누구보다 엄마 본인의 마음이 가장 아플 것이다. 곁에서 돕는 할머니로서 마음으로는 1년 정도 엄마가 직접 키우면 좋으련만 싶지만...나부터 두 딸을 3개월 만에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했으니, 딸더러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 다행스럽게도 1월부터 대박이가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도 마련했다. 나는 그저 곁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도울 작정이다.
대박이에게 무슨 선물을 해 줄까 고민하다, 외할아버지, 할머니의 선물 가운데 하나로 대박이 이름으로 생애 첫 기부를 해 주었다. 이웃과 어울려 살아가는 의미를 깨닫는 아이로 성장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임신 기간과 출산 후 100일에 걸쳐 몸과 마음을 다하여 누구보다 많이 고생한 우리 딸을 응원한다.
대박이는 배고플 때를 제외하고는 별로 울지 않는 아기다. 울음 끝도 짧아서 안아주면 끝이다. 대박이를 안고 잠을 재우면서 우리 애들을 키울 때 들려주던 동요를 자장가로 나즈막히 불러주었다. 2-3곡쯤 불러주면 대박이는 취한 듯 잠이 들었다. 동요를 불러주던 어느 날, 대박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이건 새로운 노래인 걸?” 하는 표정으로 노래를 귀 기울여 듣고 있는 게 느껴졌다. “우리 대박이 할머니 노래 듣고 있구나..자, 이제 다음 노래는 뭘까?” 하고 노래를 이어갔다. 노래를 부르다보니, 우리 애들 키우던 때도 생각나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동요의 가사가 신기하게도 다 되살아났다. 대박이게 느리게 불러주면서 동요의 가사를 되새기니, 노랫말이 정말 아름답기도 하고, 그 안에 담긴 애환이 속속들이 전해져 오기도 했다. 그런 경험을 한 이후 나는 노래 한 마디 한 마디를 더 정성스럽게 불러주기 시작했다.
산후조리 전문가가 계실 때까지는 내가 손주를 재울 일이 없었으니, 대박이에게 자장가를 들려 준 것은 생후 40일 만이었다. 대박이를 안아 재우면서 처음으로 이 동요를 자장가로 들려주었다. 내 기분도 좋아지고, 손주도 편안해 하는 것 같았다. 50일 정도 되었을까. 졸려서 칭얼거리는 대박이를 안고 이런저런 자장가를 느리고 나지막하게 들려주니, 대여섯 곡 정도는 “이건 무슨 노래지?” 하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듣다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대박이를 만나고 처음으로 불러 준 자장가는 <모두 다 꽃이야>라는 국악 동요다. 어떤 모임에서 이 동요가 담긴 동영상을 처음 보고, 가사와 멜로디, 영상까지 퍽 마음에 들었는데, 벌써 2013년에 나온 동요란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활용하게 된다고 했던가. 내가 대박이를 재울 때마다 이 노래를 자주 불러주니 대박이 엄마아빠도 이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고, 덕분에 나는 ‘외할머니’ 대신 ‘꽃할머니’라는 호칭을 갖게 되었다. 양가 가족구성원에게 외가, 친가 라는 명칭을 붙여 부르지 않으려는 젊은 엄마아빠의 신선한 시도가 돋보이는 호칭이다. 대박이가 말을 할 줄 알게 되어, 나를 ‘꽃할머니’라고 불러주는 날을 상상하면 벌써 가슴이 부풀어오른다. 꽃할머니라는 호칭이 어떤 연유로 붙여졌는지, 다시 그 노래를 들려주며 이야기거리로도 삼을 수 있을 터다.
<모두 다 꽃이야> 뿐만 아니라 국악동요는 엇박인 장단에 멜로디도 간단해서 유아들이 들으면 금방 기분이 좋아지게 되는 듯하다. 그래서 대박이를 재울 때 10곡 정도가 담긴 국악동요 동영상을 즐겨 활용한다. <모두 다 꽃이야>는 자장가 중에서도 대박이가 단연 제일 좋아하는 노래일 거라 믿어 본다.
모두 다 꽃이야 (류형선 시, 곡)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몰래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우리 ○○이 예쁜 꽃
우리 ○○이 고운 꽃
맘마도 잘 먹고
코~야 잘 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