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포스. 내 안의 타자.
나는 항상 흐른다. 그것이 나의 본성임을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고 그것이 나의 존재 방식임도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다. 정말 절실하게 깨달았다.
다만 나의 흐름을 외부의 그것과 제대로 공명하지 못하였다. 나는 흐르기에 필터가 없었고 그저.. 모르겠다.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 불안은 나의 아토포스가 세상의 강요와 만날 때 무한 증식한다. 독특하게 존재하는 나의 것이 세상의 존재론적 강요와 만나면 그것은 그저 애매하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바람과 같이.
나는 존재하고 싶은데, 다만 나만의 존재 방식을 고집할 뿐이다. 이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본 것을 남들과 나누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이 소망이 좌절될 때마다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면 그냥 고장난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유령이다.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는 존재. 무시할 수 있지만 존재한다고는 못하는 존재. 한 때문에 이승을 떠나지 못한 존재. 연옥 사이에서 계속 죽고 다시 살아나는 피곤한 존재. 진정으로 죽을 수 없는 저주 받은 존재.
나의 아토포스적인 존재 방식은 '혼돈'이다. 그리고 세상이 강요하는 존재방식은 '질서'이다. 이 둘이 서로 중첩되어 실현될 때 진정한 자아 실현이 이루어진다. 나의 방식대로 세상의 일부가 되는 것. 나의 밀실을 광장에 녹이는 것. 푸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