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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03. 2021

예쁜 그림

   꽃보다 아름다운.

 


 예약해 놓은 에어컨 설치 기사가 도착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많이 만났던 깔끔한 젊은이 기사가 아니라 나이가 일흔이시라는 수더분하고 덩치가 좀 있으신 할아버지 기사분이셨다.


 전기 제품 수리 가게를 오래전부터 운영해 오고 있는데 성균관대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한 아들의 권유와 주선으로 대우 전기와 계약을 맺어 이 일도 하고 있다고 했다.

 함께 따라와 옆에서 센스 있게 조수 역할을  해내시여자분이 부인이라고 한다.

 그럼 나랑 비슷한 나이일 텐데 나긋나긋한 말씨와 날렵한 몸놀림과 조용한 행동이 사랑스러웠다. 나보다 10년은 더 어려 보인다. 어딜 가나 싹싹하다고 칭찬을 많이 들을 사람 같다.


 더운 날씨에 내놓은 시원한 포도즙 한 잔을 남자분은 단숨벌컥벌컥 다 비웠다. 다시 한 잔 채워 드렸더니 바로 또 한 모금 꿀꺽 삼킨다.

 그러더니 갑자기 생각난 듯 황급히 잔을 내려놓으며 조금 떨어져 앉아 있는 아내를 향한다. 


 "니는 안 묵나?"


 "나도 묵었다."


  잔이 얼른 눈에 띄지 않자 다시 묻는다.


  "어데 있노?"


  "내 꺼는 저어기 있다."


 여자분이 식탁 위를 가리켰다. 할아버지는 아내의 손가락을 따라 눈길을 옮겼다. 식탁 위에 놓인 주스 컵을 확인한 후에야 조금 전의 화들짝 놀랐던 긴장을 내려놓고 순순한 평정심으로 돌아갔다. 건성으로 예의상 던진 질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아내를 챙기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옆에 있는 나에게도 역력히 전해진다. 더 이상 별말 없이 조용조용한 할머니도 진정성 있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느끼셨을 것이다. 조그마한 할머니를 넓은 품으로 감싸 안는 믿음직한 할아버지. 평화롭고 따뜻한 일상이다.

 행복한 할머니의 멋진 남편, 할아버지 기사님.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정이 뚝뚝 묻어나는 두 부부의 살가운 모습이다.


 부인은 짬짬이 잘 키운 두 아들에 대한 자랑도 잊지 않았다. 자랑할 만했다.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왜 하냐고 가볍게 핀잔 주는 남편의 목소리에 비난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부인과 맞장구쳐 가며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재밌다.

 장성한 아들 둘과 부부가 살고 있으니 남자 셋이 하루에 타월 스무 장도 모자라고 온 집은 엉망진창이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밝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강한 분이었다.

 자그마한 몸매의 조그만 발에 평범한 여성화가 아닌 남자용 까만 고무신을 신은 여름 패션 감각도 신선했다.


 힘든 일을 하는 동안 서로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는다. 짜증스러운 명령이나 불만 섞인 대꾸가 없으니 당연히 긴장이나 갈등도 없다.

 무더위 속에서도 오손도손 야무지 일을 다 마무리하고 공구들을 챙겨 말없이 차로 향하는 두 분의 예쁜 뒷모습.

 일흔 남편은 트럭 운전석에 오르고 그 뒤를 따르는 아내는 나란히 조수석에 올랐다.


 위험한 일을 하는 남편을 집에서 걱정하고 있느니 차라리 따라나섰다며 밖에서 둘이 같이 밥 한 그릇 사 먹는 일도 좋다고 했다.

 오래 동안 기억될 따뜻한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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