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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04. 2021

자연살이

  소박한 삶

  

"그것 갖꼬 머 하겠노?"


 "우리 밭에 꺼 캐 가그라."


  바람은 차가워도 남도의 내리쬐는 겨울 한낮 햇빛은 제법 짱짱하다. 모자까지 눌러쓴 방한복 등 위로 제법 따끈따끈한 온기가 전해진다. 싸늘한 겨울바람과 따끈한 햇살 속에 쪼그리고 앉아 시금치를 캐고 있는 나에게 금동댁 할머니가 여러 번 큰 소리로 채근하신다.

 금동댁 할머니는 남편 초등 동창의 형수님이시다.


 우리 텃밭 시금치는 야리야리 날씬하기만 한데 바로 윗집 금동댁 할머니네 텃밭 시금치는 튼실하다 못해 무성하기까지 하다. 촘촘히 뿌려져 빽빽이 올라온 건강한 시금치들이 짙푸른 색에 잎도 넓고 키도 크다.

 할머니 말씀대로라면 비료를 수시로 뿌려 주기 때문이란다.

 

 울 햇살 아래 텅 빈 텃밭의 몇 고랑을 차지하고 있는 노지 시금치. 양지바른 곳에서 모락모락 자라고 있는 봄동, 겨울초와 함께 겨울 내내 식탁의 초록을 책임지는 귀한 야채다.

 텅 비어 있는 우리 텃밭과는 달리 할머니네 텃밭은 온통 시금치로 뒤덮여 있다.


 80대의 나이로 다리를 거의 쓰지 못하시니 걷기 보조용 유모차를 밀고 다니신다. 그래도 들판에 있는 꽤 넓은 밭농사를 손에서 놓지 않으신다. 3,40 평 되어 보이는 집 안 텃밭은 사철 내내 놀리지 않고 늘 작물들을 심고 가꾼다.

 마늘, 콩, 참깨, 들깨, 배추, 무, 시금치ᆢ

 풀을 뽑을 때나 작물을 수확할 때는 아예 두 다리를 쭈욱 뻗고 철버덕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엉덩이를 밀어가면서 풀을 뽑고 돌멩이를 주워낸다. 집 앞 길가의 잡초까지 깨끗이 뽑아내고 거기에다 도라지를 옮겨 심는다.


 계속되는 채근에 검은 비닐봉지와 칼을 준비해서 올라갔다. 우리 집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금세 봉지가 가득 찬다. 큰 것들을 골라 캐노라면 바로 밑에 또 어린 것들이 뾰족뾰족 올라오고 있다. 머잖아 곧장 빈 자리를 메꿀 것이다. 적당히  담고 할머니께 대강 한번 보여 드려 눈도장을 찍는다.


 더 캐 가라고 하시지만 할머니 댁 시금치는 갈 곳이 많다. 가까운 곳에서 자주 들르는 여동생이랑 작은아들, 서울 사는 큰아들, 정기적으로 들러서 보건소에도 데려가 주고 살림도 보살펴 주는 요양 보호사, 커다란 목욕차 몰고 와서 깨끗이 씻겨주는 목욕 봉사자, 일요일마다 예배 가는 교회의 집사님, 권사님, 목사님.

 내가 표시 나게 많이 캐 가 버리면 할머니의 계획이 어긋난다.


 남에게 뭔가 주는 재미로 사시는 분이라 봉사자들이 오는 날이면 미리미리 야채들을 뽑아서 깨끗이 다듬는다. 비닐봉지에 담아 대문께에 딱 준비해 두는 것을 여러 번 보아왔기 때문에 잘 안다.


 대문을 나서기  거칠고 딱딱해진 할머니 손에 준비해 간 만 원짜리 한 장을 꼬옥 쥐어 드린다. 이러려고 그런 것 아니라며 강하게 손사래를 치신다.

 하지만 이런 맛이라도 있어야 그 아픈 다리를 끌며 지극정성 비료 뿌려가며 씨 뿌리고 풀 뽑아 야채들을 키워 시는 것 아니겠는가?


  십 년 동안 혼자서 그 집에서 살아오셨고 또 앞으로 얼마나 여러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그렇게 지내실 것인지.

 야채라도 줘 가면서, 사람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봐 가면서, 조금이라도 덜 적적한 여생을 하루라도 더 건강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본인의 고달픔보다 넉넉지 못한 자손들의 안위를 더 걱정하시는 독거노인 할머니들.

 고된 노동과 긴 외로움을 묵묵히 참고 견디며 주어진 하루하루 주어진 것들로 먹고 입고 주무시며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시는 시골 할머니들.


 늘 건강하세요. 몸과 마음 모두 모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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