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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07. 2021

푸른사자 와니니

   틀린 삶은 없다, 서로 다를 뿐이다.


 세상에는 동물의 종류만큼 다양한 삶이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삶이 있다. 틀린 삶은 없다. 서로 다를 뿐이다. 저마다 저답게 열심히 살고 있다. 얼룩말은 얼룩말답게, 이구아나는 이구아나답게, 흰개미는 흰개미답게, 플랑크톤은 플랑크톤답게 그리고 사람은 사람답게.

 와니니는 와니니답게, 사자답게, 왕답게 초원을 달린다. 우리 모두 그랬으면 좋겠다. 저마다 다운 모습으로 신나게 달린다면 지구의 웃음소리가 한결 커질 것이다.

 나도 나답게 읽고 쓰고 노래하고 그리고 큰 소리로 웃어야겠다. 하하하.

                   건기가 시작될 무렵

                   초원에서 아주 먼 아파트에서

                  지은이 이현


 될 수 있으면 일주일에 한 번은 둘째네 집으로 간다. 가까운 곳에 살아서 다행이다.

 남편과 점심까지 챙겨 먹고 부엌 정리를 끝내면 어느덧 2시 전후가 된다. 걸어서 가기에는 조금 거리가 멀다. 마을버스를 탄다. 물가가 싼 인근 대형 마트에 들러 과일 야채들을 배달시키고 딸네 집에 들어서면 3시.

 사위는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재택근무 중이다. 초등 2, 3학년인 두 손주들은 마음대로 온 집을 왔다 갔다 하며 게임이든 독서든 놀기 바쁘다. 수요일 오후에는 아무 학원에도 가지 않는다.


 아이들이 엄마를 불러대는 통에 일에 집중할 수 없었던 딸은 주 20시간 근무 작업량을 채우기 위해 노트북을 챙겨 들고 사무실이나 동네 카페로 출근을 한다.

 대강 부엌일을 좀 돌아보고 사위와 손주들의 간식 과일들을 챙겨준다. 두 녀석들은 이제 다 커서 제 할 일들을 아서 잘한다.


 손주들과 공통된 화제를 만들기 위해 재밌는 동화책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 할머니가 읽을 책 한 권 골라 달라고 하면 번개같이 책꽂이로 달려간다. 좋아라고 달려가 고른 책을 중하게 가슴에 안고 와서 나에게 건넨다. 손녀의 타고난 따뜻한 심성이 곱고도 고맙다.


 요리에는 영 자신 없는 내가 어설프게 뚝딱 만들어 준 음식에도 초긍정 반응을 보인다.


 "주먹밥이 이렇게 맛있는 건 반칙 아니에요?"


 깜짝 놀란 만한 독창적인 립 서비스로 나를 격려해 주는 열 살 예쁜이 우리 손녀.


 이번 주에는 <푸른 사자 와니니>를 추천받았다. 1, 2 두 권으로 되어 있는 장편이다. 지은이는 이현.

 미처 몇 장 넘기지도 못했는데 시간은 벌써 6시가 되었다. 저녁 준비를 위해 집으로 출발해야 한다.

 

 딸이 귀가했다. 잠깐 동안 짧게 서로 근황을 주고받고는 서둘러 귀갓길에 올랐다.  때는 급한 마음에 마을버스를 이용했지만 돌아갈 때는 서리풀 둘레길의 호젓함을 놓칠 수 없다. 집을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바로 서리풀 둘레길에 들어선다. 도심 속 귀한 숲이다. 저녁 해 질 녘의 숲은 나름 독특한 정취를 담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돌아가지 못하고 아직 길 위에 머물러 있을 때 찾아오는 묘한 향수가 좁은 오솔길에 자욱하니 깔려 있다.

 최근 내린 가을비로 촉촉해진 흙이 상쾌하다. 요즘은 산길에서 주로 유튜브로 소설을 듣는다.


 집에 도착해 저녁을 마치고 <푸른 사자 와니니>를 꺼내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   ~   ~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그것은 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일이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초원의 모두는 언젠가 죽게 되지. 그게 오늘일지 내일일지 아무도 몰라. 그러니 오늘 가 할 일을 해 . 그럼 내일이 올 거야. 그것이 초원의 법이야.

 먹이를 나눌 수 없다면 서로를 믿을 수 없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함께 무리를 이룰 수 없다. 그래, 사자는 모름지기 사자끼리 돕고 살아야 하는 법. 말레이카야 같이 가자.

 나도 마디바가 무섭다. 하지만 말이다, 나한테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어. 우리가 뿔뿔이 흩어지는 거야. 더 이상 친구를 믿을 수 없게 되는 거야.

 와니니와 친구들은 이미 한 몸이었다. 힘들고 지칠 때 로 돕는 친구들이었다. 강해서 함께하는 것이 아니었다. 약하고 부족하니까 서로 도우며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게 친구였다.

 물도 먹이도 힘도 초원에서는 그 무엇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다. 마음먹은 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희망이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늘뿐이었다.  때가 되면 비구름은 떠나고 또 돌아오게 마련이다. 힘든 순간마다 와니니 이렇게 말했다. 이제 곧 비구름이 돌아올 거야. 이제 곧 너의 시간이다. 스스로 멋진 수사자가 되어라.

 죽고 사는 일은 초원의 뜻이라고들 하지. 맞아 그렇지만 어떻게 살지 어떻게 죽을지 선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야. 그게 진짜 원의 왕이야.

 이따금 그런 날이 있다. 행운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방법이 없는 날. 사자라도 ,코끼리라도, 제 아무리 강해도, 제 아무리 애써도 도저히 안 되는 날이 있다. 초원의 어느 동물에게나 있는 일이다. 그럴 때 누군가는 행운의 도움으로 계속 살아가고 누군가는 쓸쓸히 초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물과 사냥감을 찾아다니고 초원에서는 그 누구도 가볍게 목숨을 내놓지 않는다. 누조차 단지 사냥꾼 동물들에게서 도망치려고 사는 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려고 하는 거지.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뭘까?

 비극은 끝났다. 더 이상 미움도 분노도 없어. 그런 걸 어지려고 하다간 삶이 얼마나 무겁겠냐? 결코 가볍게 걸을 수 없지. 다 내려놓았다.

 은 원래 그런 거야. 실수는 크고 실패하는 날이 더 많아. 이제부터 배우면 돼.


  초원에서는 초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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