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무아 Oct 08. 2021

양천 노인 복지회관

   글쓰기 교실


10년, 20년 나이를 먹어 가면서도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 있는 할머니 두 분이 계신다.


 2000년, 양천 노인 복지회관 '어르신들 글쓰기 교실' 봉사 활동을 일주일에 한 번씩, 일 년 정도 다녔다. 참여 인원은 할머니들 열 분 정도였는데 한 명 한 명 글쓰기 수준이 천차만별이었다. 이제 갓 복지회관 한글반을 졸업하신 분부터 일제강점기 고등학교를 졸업하신 분까지 다양했다.


 글쓰기 시간이 되면 또박또박 네모 바둑판 공책에다 한글 연습을 하시는 분도 계시고 떠오르는 대로 간단히 수필이나 편지를 쓰시는 분도 계셨다. 그중에서 지금도 기억나는 두 분은 일제 강점기 고녀를 졸업하신 분들로 글쓰기 시간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지나간 일들이나 현재 일들을 쓱싹쓱싹 거침없이 글로 표현하여 발표도 곧잘 하셨다.


 그 두 분의 살아온 외적 환경은 아주 달랐다. 한 분은 반듯하게 자라 탄탄하게 자리 잡은 자녀들의 울타리 속에서 남편과 함께 평온한 삶을 누리고 계셨다.


 다른 한 분은 결혼한 순간부터 가정경제를 책임지고 4남매를 키우시며 억세고도 강인하게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셨다. 남편은 그 시절 경성제대를 졸업한 인텔리 지식인이었지만 결혼 후에도 절에서 맨날 공부만 했다고 한다. 그런 남편을 위해 먹을 것, 입을 것들을 챙겨서는 철 따라 매번 보따리에 싸서 머리에 이고 아가들은 손을 잡고 걸려서 남편이 공부하는 절에까지 다녀오셨다고 한다. 남편은 결국 공부를 접고 집으로 내려왔지만 경제력이 전혀 없는 백면서생 신세는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남편더러 땔감을 좀 구해오라고 했더니 바로 이웃에 사는 큰형님네 마룻장을 뜯어 왔더라는 이야기도 쓰셨다. 그 어려운 시절을 살아 내며 자녀들을 키워온 이야기들을 구구절절 글로 잘도 풀어내셨다. 알고 보니 어르신들 글쓰기 대회에서 큰 상도 타신 분이셨다.


 아이들이 독립하여 떠나고 혼자 살게 된 어느 날, 아들이 원고지와 볼펜을 사 들고 와서 어머니더러 글을 한번 써 보라고 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때부터 시작한 글쓰기 버릇이 요즘은 새벽 3시에 눈을 뜨면 16절지 한 장에다 어제 일기를 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신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한 장 한 장 던져둔 일기가 벽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다고 하셨다.

 날이 밝아 오면 노인 복지회관 친구들과 나눠 먹을 호박죽이나 전을 부쳐 와서 나눠 먹고 복지회관에서 거의 하루를 보내신다. 귀갓길에는 아파서 못 나온 노인 친구들을 찾아보시고ᆢ


 정부가 저소득 독거노인에게 제공하는 작은 임대 아파트에서 홀로 지내시지만 씩씩하고 의젓하고 건강한 삶을 잘 살고 계셨다. 그 연세에 매일 일기를 쓰시는 그 정신력으로 그렇게 끝까지 자기 삶을 야무지게 잘 꾸려 가시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도 노후에는 날마다 하루의 일기를 한 장씩 써서 방 한 켠 벽에 쌓아두는 그런 단순하고도 성실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살아오신 다른 한 분도 성실하시기는 마찬가지셨다. 자신의 자랑스러운 삶을 글로 잘 그려 내셨다. 본인도 야무지고 똑똑하시고 유능하셨다.

 그로부터 10년쯤 지난 어느 날, 잊고 지냈던 그 할머니께서 느닷없이 전화를 주시더니 이사를 한 우리 집까지 찾아오셨다. 당신의 70세 생일 기념으로 자서전을 출간하셨다고 그 책을 들고 오신 것이다. 푸른색 표지도 허술하고 인쇄도 평범한, 얄팍한 한 권의 책자였지만 그분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자기만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보물이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시던 나에게 꼭 한 권 전해주고 싶으시다며 버스를 타고 우리 아파트까지 먼 길을 찾아와 손에 쥐어 주시던 그 열정.


 그 두 분 할머니처럼 강인한 정신과 건강한 몸으로 독립된 노후의 삶을 의미있게 누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 본다.

작가의 이전글 푸른사자 와니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