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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09. 2021

맨 오브 라 만차

  돈키호테

 

  *부부 갈등이란 배우자와 정서적 부부로 성장하려는 성장통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나는 내가 어른이 되어 이룬 내 가정, 내 가족에 대해 참 많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번번이 그 결과에 상처를 입는 나에게 장성한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노력' 좀 그만하세요."


 그 '노력' 중의 하나가 ME 피정 참석이었다.

 Marriage Encounter.

 결혼 생활 재조명.


ㅡ남편이나 아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서로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며 보람되고 행복한 부부 생활을 지속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ㅡ


 이 프로그램의 목표다.


 그런 것에 별 생각이 없고 오히려 딱 귀찮아하는 남편을 설득하여 함께 그 피정에 참석하기 위해 긴 시간 온갖 머리를 굴렸다.

 막내가 대여섯 살쯤 되었던 무렵, 성당 주부 교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열한 명의 주부 교사들. 남편들은 거의 대부분 레지오 활동을 하고 있었다. ME 피정도 거의 다 다녀왔다.


 그 남편들의 도움을 받아  남편을 설득하는 일에 나섰다. 우리 집을 방문하기도 하고 동네 술집으로 불러내어 술을 한 잔 하기도 하면서 레지오 활동으로 남편을 불러내었다. 이어서 그분들의 강력한 추천과 권유로 ME 피정도 신청하였다. 금,,, 2박 3일간의 일정이다. 그분들이 나를 장충동 성 베네딕토 교육관까지 승용차로 데려다 주었다. 남편은 시내 직장에서 그곳으로 바로 오기로 했다.


 2박 3일간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 지도 신부님 한 분과 봉사자 부부 세 쌍이 6개월 동안 매주 만나서 사전 준비를 한다고 들었다. 주제 강의와 그 주제를 삶에서 적용시킨 봉사자 부부들의 예화 발표와 서른 쌍의 참석자 부부들의 대화, 나눔, 발표 등으로 일정이 전개되었다.

 특별하고도 뜻깊은 시간이었다.


 특히 나에게 큰 의미를 지니고 다가온 것은 주제곡이었다.


 각 차수별로 지도 신부님과 봉사자들이 미리 주제곡을 정해서 교육 기간 내내 짬짬이 들려준다. 대중가요, 가곡, 팝송 등 다양한 곡들 중에서 한 곡을 선택하는 모양이었다.


 이번 우리 차수에서 선정된 곡은 뮤지컬 <맨 오브 라 만차>의 주제곡이었다.


Impossible dream.

Unreachable star.


 소설 <돈키호테>에서는 별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는데 뮤지컬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여인이 있다.

 거리의 여인 알돈자.

 많은 건달들이 이 여인을 둘러싸고 있다.

 알돈자는 노래한다.


어떤 놈도 다를 게 없어, 다 똑같아. 

누구든 원하는 건 하나, 특별한 놈은 없어. 

그러니 사랑 따위는 다 필요 없어.

돈이나 듬뿍 집어 줘, 주는 만큼 돌려줄게. 

이런 인생은 싫어, 그렇지만 어떡하겠어.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겠어.


 알돈자를 만난 돈키호테. 그녀의 겉모습을 뛰어넘어 그가 발견한 그녀의 순수한 내면세계를 향해 돌직구를  날린다. 그녀에게 맞는 새로운 이름도 선사한다.

 돌시네아~~!!

 

그는 노래한다.


오, 나의 마음을 앗아간 여인.

그대를 실망시키지 않겠소, 돌시네아.

하늘에서 내린 여인, 돌시네아.

천사의 속삭임 같은 그대 이름, 돌시네아.

이것이 꿈인지, 정녕 현실인지 알고 싶을 뿐이오.

그댈 위해 살아왔네, 돌시네아.

그대만을 기다린 끝의 영광, 돌시네아.


 알돈자는 돈키호테의 열렬한 사랑을 완강히 거부하며 아버지도 모르고 창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신의 비천한 정체감에 대해 자조하며 울부짖는다.

 돈키호테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한층 더 뜨겁게 다가간다.

 많은 남자들로부터 야유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 더욱 괴롭힘을 당하는 알돈자.


 훗날, 정의의 칼을 높이 들고 세상을 향해 뛰어들었던 의로운 투쟁에서 수없이 좌절하고 꺾인 돈키호테의 이 이제 병고에 찌들어 초라하게 막을 내리려 할 때 그 앞에 알돈자가 나타난다.

 패배한 삶에 절망하여 영원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는 돈키호테의 마지막 순간에 그를 찾아와 스러져 가는 그의 혼을 일으켜 세운다.


*이리 오시오, 아가씨. 그래, 무슨 일이요?

*날 모르겠어요?

*누구신지요?

*알돈자예요. 

*음, 미안하지만 그런 이름은 기억에 없어.

*저 사람(산초)은 알 거예요. 기사님.

*기사라니, 나는 기사가 아니오.

*당신은 나의 기사님이에요, 돈키호테.

*돈키호테? 용서하시오. 내 병에 들어 정신이 맑지 못하다오. 당신을 알 수 있으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구려.

*제발 기억을 해 내 봐요.

*그게 그리도 중요한 일이오?

*당신이 나에게 말을 건 이후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달라졌는데.

*내가 당신에게 뭐라고ᆢ?

*나를 바라보면서 나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잖아요?

돌시네아, 돌시네아.

당신이 찾아낸 여인 돌시네아

천사의 속삭임처럼 들려왔죠 돌시네아, 돌시네아.

그 꿈을 기억해 봐요. 돌시네아, 돌시네아.

그 영광을 다시 내게 보여 줘요. 돌시네아, 돌시네아.

*그럼, 그럼, 그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소?

*이기고 짐에 상관없이 운명의 길을 따를 것이라고 ᆢ

*말해 주오, 말해주오.


 조심스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알돈자


*그 꿈은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기억 안 나요?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기억해야 돼요

*길은 험하고 험해도


조금씩 기억을 되찾고 가까스로 힘을 내어 알돈자가 불러 주는 노래의 뒤를 잇는 돈키호테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그래요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맞아요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고마워요 기사님, 몸도 안 좋은데ᆢ.


*오 나의 레이디,


 온 몸의 힘을 다 끌어모아 돈키호테는 절규한다.


*기사라면 칠전팔기로 악을 무찌르는 게 마땅하지요. 산초, 나의 갑옷과 칼을 준비하여라.

*또 사고를 치시려고요?


 돈키호테의 우렁찬 목소리, 한껏 고조되는 빠른 템포의 배경 음악.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부르는 백조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


영광의 나팔 소리 나를 부른다.

어디로 향하든 언제나 내 곁엔 나의 친구, 나의 레이디.

나는야 돈키호테, 라 만차의 기사. 

운명이여 내가 간다. 

거친 바람이 불어와 나를 깨운다 .

나를 휘몰아 간다, 그 어느 곳이라도 영광을 향해 ᆢ.

아아~~


쓰러지는 돈키호테


*아, 기사님.

*주인님이, 우리 주인님이 돌아가셨어요.

*돈키호테는 죽지 않았어요. 믿어요, 산초. 날 믿어.

*알돈자

*내 이름은 돌시네아예요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나의 저 별을 향하여

쉽게 닿을 수 없어도 힘껏 나아가리

영원히 저 별을 향하여


 돈키호테의 기사로서의 첫출발은 부패로 만연한 이 세상을 정의로 바로 세우겠다는 원대한 꿈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외친다.

ㅡ이 세상은 썩을 대로 썩은 세상.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향해 결투를 신청하며 운명이여 내가 간다.

그 어느 곳이라도 영광을 향해 가자.

정의는 승리하리라.

비겁하고 악한 자들아, 너희들의 세상은 끝났다.ㅡ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기사로서의 꿈은 바위  앞의 계란처럼 무참히 깨어졌지만 절망에 빠져 있는 비천한  한 여인을 일으켜 세운 돈키호테.

 돌시네아라는 이름을 받고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여 한없이 초라한 돈키호테의 마지막 길을 찬란한 영예의 관으로 장식해 주는 알돈자.


 한 남자의 무모하리만치 헌신적인 사랑이 한 여자의 무너져 내린 삶을 세워 일으켰다.

 한 여자의 감사와 존경이 허무로 끝나가는 한 남자의 일생을 영광으로 옷 입혔다.


 ME 교육의 정수, 남편과 아내가 이루어 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부부상을 보여 주고 있는 최고의 주제곡.

 이 곡을 선택한 분들의 높은 안목과 간절한 소망이 ME 피정 프로그램에 대한 깊은 신뢰감과 진한 감동을 한층 더 확장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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