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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10. 2021

봄날 아침

   우리 아이들의 내일

 어제 입학식을 치른 초등학교 1학년 예쁜 새싹들이 아빠나 엄마,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손을 잡고 첫 등교길에 올랐다. 온통 싱그럽게 설레는 봄날 아침이다.

 2019년 3월 5일 화요일. 


 새 가방을 메고 새 신주머니를 든 여린 모습들이 언니 오빠들 틈새에서 더 풋풋이 빛난다. 아이들과 보호자들의 발걸음이 학교로 향하는 좁은 골목길을 가득 메운다. 건널목에서는 녹색 어머니회 자원 봉사자 젊은 어머니들 세 명이 경쾌하고도 열정적인 태도로 아이들의 안전 보행을 돕는다.


 "얘들아! 이쪽으로, 이쪽으로ᆢ."


 길을 건너고 난 아이들의 등 뒤에다 대고 높은 목소리를 뽑는다. 


 "얘들아, 뒤에 자동차 가고 있어. 조심해, 조심해ᆢ."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애정과 염려가 가득 담겨 있다. 나도 모르게 그 몸짓과 그 목소리에 콧등이 찡해진다. 한 아이의 어머니이지만 지금 이 순간은 여기, 이곳을 지나가는 모든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아이들의 안전을 염려하고 지켜주는 열정적인 사랑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음속에 따뜻한 감동의 파문이 번졌다. 우리 부족한 인간들의 마음밭에 심어 놓으신 하느님의 사랑.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마음을 쏟아 봉사하는 헌신. 


 '정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구나!'


 그 어머니들이 뿜어내는 사랑의 향기가 등교길 골목을 가득 메운 아이들을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함께 가는 보호자들과 모든 사람들의 물결도 아름답게 채색되었다.


 그러나 오늘은 초미세 먼지 경보가 발령된 날. 하루가 멀다 하고 핸드폰 메시지에 안전 안내 문자가 날아와 꽂힌다. 야외 활동 자제하시고 마스크 착용  등 건강에 유의하세요. 

 풋풋한 어린 새싹 어린이들의 해맑은 얼굴에도, 귀엽고 여린 손을 잡고 함께 가는 보호자들의 상기된 얼굴에도 커다란 마스크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하얗거나 까만 침묵의 마스크들. 


 마스크를 뚫고 젊은 아빠와 어린 딸의 정겨운 대화가 이어진다.


 "아빠, 나 교실 찾아갈 수 있을까?"

 "그럼, 잘 찾아갈 걸, 1학년 1반."

 "교실에 누가 있을까?" 

 "아마 선생님이 먼저 와 계실 걸."


 교문 앞을 지키고 있는 학교 보안관 할아버지가 따뜻하게 환영한다.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뒤질세라 한 번 뒤돌아 보는 일도 없이 빠르고 경쾌한 걸음으로 학교 안으로 사라진다. 교문 밖에 남겨진 보호자들은 귀여운 아이들의 등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이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멀어지자 이윽고 아쉬운 듯 각자의 발걸음을 옮긴다. 


  손주들을 등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바라보는 하늘은 아까보다 더 뿌옇다. 높은 건물들을 자욱이 감싸며 내리누르고 있는 오염된 공기. 미세먼지 오염으로 온 나라가 우울한 듯하다. 조만간 딱히 좋아지리라는 희망과 기대가 없기에 더 막막한 심정이다. 중국 탓, 정부 탓을 해대지만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이 모두 우리들 각자가 일상생활의 안락과 윤택을 추구하느라 저질러 온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가 가져온 폐해 아닌가? 


 금지옥엽, 애지중지 사랑하는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이 미세먼지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가 해결 방안을 마련하고 그 실천을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할 일인 동시에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도 마음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일회용품 남용하고 물, 전기, 가스 에너지 아끼지 않고 집안이 넘쳐나게 의식주 용품들을 사재는 과소비에서 방향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나 하나의 그런 미미한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를 논하기 전에 아무리 사소한 효과밖에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희망을 불러오는 작은 몸짓이 아닐까?


 지금 당장 어떤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속수무책 암담한 기운에 짓눌려 있기보다는 이 어려움을 견뎌내는 데 정신적으로라도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재지 않고 비우기, 버리지 않고 활용하기, 쓰레기 덜 만들기, 집안을 청결하게 돌보기. 오늘의 미세먼지 경보에 대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정부를 탓하고 이웃을 탓하고 남을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미세먼지로 너무 우울해지는 오늘, 내가 오염시킨 자연에 대해 미안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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