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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11. 2021

나의 실수

   어머님의 순발력


 1977년, 이럭저럭 여름도 거의 끝나가는 어느 일요일, 결혼을 둔 예비 신부가 예비 시댁을 방문했다. 결혼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던 때였으리라. 주 6일 근무하던 때라 토요일까지 출근을 하고 일요일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부산에서 해운 회사 신입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예비 신랑과 같이 갔던 걸까? 혼자 갔던 걸까? 그 부분은 기억에 희미하다.


 부산 조방앞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함안행 버스를 탔다. 그날은 시댁이 춘곡 고향 마을에 새로 집을 지어 상량식을 올리는 날이었다. 그때 시댁은 계속 살았던 고향 춘곡을 떠나 잠깐 함안 읍내인 말산리에서 살고 있었다. 집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걸리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지금은 건물들로 뒤덮여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졌지만 그때만 해도 논둑길을 조금 지나면 마당 쪽문으로 들어가는 샛길이 있었다. 한발짝 집으로 들어서니 이런저런 준비로 부산한 분위기였다.

 쉽게 너스레 떨며  속으로 동화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인 스물세 살 새침데기 나였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발령 받은 중학교에서 첫 해를 보내고 있었던 사회 병아리 초년생. 뭔가 일은 도와야겠는데 어렵기만 한 그 상황에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참여해야 할지 난감했다.


 마침 어머님이 오늘 상량식에 쓰일 백설기 떡을 찌느라 이제 막 솥에다 쌀가루를 안치고 불을 땔 준비를 시작하셨다. 나는 그 불 때는 역할을 자청하였다. 제일 만만해 보이는 그 이 바로 나에게 맡겨졌다. 아버님은 쓰기 좋게 손질되어 있는 야무진 땔감들을 수북이 내 옆에 쌓아 주셨다. 나는 불길을 꺼뜨리지 않는 일에만 신경 쓰며 아궁이로 나무들을 계속 집어넣었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부엌일에 익숙치 못한 내 코에도 타는 냄새가 맡아지는 것이 아닌가? 난감한 심정이 되어 조심스레 어머님을 불렀다. 달려오신 어머님이 화들짝 놀라셨다. 이미 솥뚜껑 밖으로 불길한 회색 연기가 솔솔 새 나오고 있었으니.


 그때 어머님 나이는 50세. 황급히 솥뚜껑을 여셨다.

 아뿔싸, 솥 밑에 깔린 물은 다 말라 버렸고 떡은 이미 가장자리가  갈색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얼개 위의 삼베 천에 곱게 깔린 쌀가루가 뜨겁게 달궈진 솥 안에서 하얀 백설기를 넘어 갈색 숯으로 조금씩 변해 가는 중이었다.

 내가 큰일을 낸 것이다. 상량식에 쓰일 귀중한 떡을ᆢ


 그런데 어머님은 별 나무람이나 지청구 없이 아주 쉽게 그리고 빠르게 대안을 찾아내셨다. 바로 집 앞의 시장통으로 후딱 나가셔서 떡 대신 빵을 사 오신 것이다. 먹음직스러운 단팥빵을  봉투 하나 넉넉히 사 오셔서 그것들을 챙겨 들고 춘곡 집으로 올라가셨다.


 나는 참으로 의외였다. 면목도 없었다. 한바탕 걱정을 듣게 될까 봐 잔뜩 얼어 있었는데 너무나 쉽게 나의 실수가 묻혀 버렸다.

 40년도 지난 그때 그 장면과 분위기가 지금도 내 기억에 또렷하게 재현된다. 그때 느꼈던 안도감과 고마움의 마음도 함께.


 그때의 고마웠던 마음을 살아생전 어머님과 오순도순 나눠 보지 못했던 도 또 하나의 나의 실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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