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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12. 2021

고백록

   님 기림의 찬가, 진리에 바치는 연가.

 

 2020년 1월, 함안.

 오전 내내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하늘이 한두 방울씩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눈으로 변하기 직전의 차가운 겨울비. 적막하던 대기는 한 뼘 더 가라앉는다. 책 읽기 딱 좋은 분위기다.


 오랫동안 고이 꽂아만 두었던 책을 빼들고 집을 나섰다. 바로 집 앞에 카페가 있다. 잡다한 일상사에 눈길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집안을 벗어나 독서에 전념할 수 있는 좋은 장소다.

 몇 달 전 새댁 며느리가 "아버님 어머님, 힐링하세요."라는 문자와 함께 카톡으로 보내준 카페 상품 선물권도 있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한여름에 보내준 선물을  오늘에사 처음 사용해 본다.

 마음 같아서는 향과 색과 맛을 즐길 수 있는 카페 라테를 시키고 싶지만 밤새 뜬눈으로 지새울 것이 두려워 따뜻한 우유 한 잔으로 타협을 본다.


 들고 온 책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님 기림의 찬가, 진리에 바치는 연가'라고 적혀 있는 소제목을 보는 순간, 벌써 마음 한구석이 뭉클 뜨거워진다.

 

 언젠가 성당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일생을 담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태어난 그는 뛰어난 지성으로 당시 최고 수준의 인문학자가 되었다. 학생들에게 수사학을 가르치고 전쟁에서 승리한 왕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화려한 도 얻는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걸 수 있는 가치 있는 것을 찾지 못해 방탕한 생활 속을 허우적거리며 허무주의에 젖어 지낸다. 그것을 지켜보는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이 크리스트교의 영성 세계에 입문하기를 간절히 하지만 그는 강하게 거부한다.


 한 번만 주교님을 만나보라는 어머니의 간청에 불타는 눈빛으로 거칠게 대드는 아들 아우구스티누스.


 "어머니는 대체 저에게 무엇을 바라는 거예요?"


 슬픈 눈빛으로 안타깝게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모니카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대답.


 "나는 네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대사를 듣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세상 모든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소망을 어떻게 이렇게 잘 대변하고 있을까? 이 짧은 단 한 문장으로ᆢ.


 계속 진리의 길을 찾아 인문학 공부에 매진해 오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존재는 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물질적인 것에 가까워진다.'는 신플라톤주의의 사상을 만난다. 그 영향을 받아 한 동안 멀리했던 성경을 다시 읽고 참회하여 마침내 크리스트교 신앙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의 참회와 귀의는 긴 세월 변치 않고 인내해 온 어머니 모니카의 애처로운 눈물과 한숨 어린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들 말하기도 한다.  

 기도하는 어머니상으로 추앙 받는 성녀 모니카.


 354년에 태어난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른 살이 되던 384년, 밀라노의 주교인 암브로시우스를 찾아간다. 그의 가르침과 인도로 388년 사제가 된다. 395년부터 430년 그가 죽을 때까지 북아프리카의 힙포에서 주교로 봉직, 헌신하며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거듭 태어난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신을 사랑하는 그 자체에 있다는 진리를 설파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430년 크리스트교를 탄압하는 외적이 힙포로 쳐들어왔다. 로마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를 안전하게 피신시키기 위해 배를 보낸다. 그러나 그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배에 태워 떠나보내고 자신은 홀로 남는다. 배가 출발하기 직전까지 간절하게 로마로의 피신을 요구하는 조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 번도 나를 버리신 적이 없는 그분을 나는 수없이 배신해 왔다. 이제 다시 나는 그분을 배신할 수 없다. 여기에 남아 내 신앙을 지키겠다."


 결국 그는 적의 침입에 맞서 희생되고 만다. 아버지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휴식을 찾은 것이다. 그 영화를 본 바로 그날 이 책을 샀다. 벌써 5년도 넘은 옛날 일이다.


 옮긴이, 최민순 님의 경력도 예사롭지 않다. 1912년 태어나 1975년 64세로 선종하셨다. 1965년 번역하여 첫 발간한 책을 2014년 3판 11쇄로 다시 발행한 것이 이 책이다.  50년간 한결같이 이 번역의 뛰어남을 인정받고 있다는 말이다.


 최민순 신부님은 1935년 사제서품을 받아 23살의 나이로 전주 해성 학교 교장을 역임했으며 36세인 1948년에는 가톨릭대학교 부학장 역을 맡았다. 1960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번역하여 제2회 한국 팬클럽 번역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두 권의 시집과 네 권의 저서, 10여 권의 번역서를 남기셨다. 가톨릭대 영성신학 교수로, 당대 걸출한 시인이자 고전 번역가로 명성이 드높았다고 한다.

 정치, 사회, 교육, 문화의 모든 수준이 일천했던 어두운 시기 높은 영성과 문학적 재능으로 훌륭한 문화 유산들을 많이 남겨 놓으신 귀한 분이시다.


 <고백록>.

  

 당대 최고의  수사학자답게 유려하고도 풍성한 글로 표현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과 찬미는 17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아직도 찬란히 빛나고 있었.


 *'그 누구의 탓도, 다른 무엇의 노릇도 아닌, 내 죄악은 내 잘못입니다.'


 *'오묘한 섭리로 죄악의 비참에서 구원해 주신 당신의 사랑, 내가 무엇이기에 당신을 사랑하라 명하시나이까?'


 *'늦게야 당신을 사랑하다니! 오래이면서 늘 새로운 아름다움이여, 이다지도 늦게야 당신을 사랑하다니!'


 저 또한 저 멀리 한 발치에서 당신이 마련해 주신 모든 것에 감사, 찬미드립니다.


 빛과 그림자, 이 모든 것 뒤에 함께 계시는 아버지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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