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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17. 2021

파크 라 브레아

   Park La Brea


 21개월, 41개월, 어린 두 아가들을 데리고 14시간 비행 끝에 이민 가방 여덟 개를 끌고 도착한 LA 공항. 사위와 조카가 마중 나와 있었다. 조카와 큰올케언니는 조카네 집으로 향하고 우리는 사위가 운전하는 차에 올랐다. 한 달 남짓 떨어져 있었던 딸네 가족들이 다시 만났다.


 사위는 LA 다운타운에 있는 미국 서부 최대 규모 아파트 단지 '파크 라 브레아'의 고층 아파트 1층 한 채를 임대해 놓았다. 4천여 가구의 고층 아파트와 저층 빌라를 한 개인이 소유하여 전체를 임대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학교와는 제법 거리가 떨어진 곳이지만 가족들이 살기 편한 곳으로 이 아파트를 선택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드물게 자동차 없이 도보로도 생필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아파트에 들어서니 이미 완벽하게 살림 도구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식탁을 비롯하여 접이식 소파, 그릇, 침구들까지. 낯선 곳에서 사위가 혼자서 애를 많이 썼다.

 화장실을 갖춘 넓은 안방은 딸네 네 식구가 쓰고 붙박이장이 갖추어져 있고 바로 앞에 화장실이 있는 꽤 넓은 방을 나 혼자 쓸 수 있었다. 거실을 거쳐 현관 바로 옆에 부엌이 있으니 이른 시간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어도 무방할 것 같았다.


 구조가 아주 단순하면서도 편리했다. 채광도 좋고 환기도 잘 되고 공기 좋은 1층이라 아주 만만하고 편리했다.

 짐을 풀고 바로 식사 준비에 들어갔다.


 파크 라 브레아.

 

1950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명성대로 아파트 단지가 정말 크고 넓다. 하나의 큰 마을이다. 단지의 중심 부분이 커다랗게 원을 그리는 방사형으로 고층 아파트 두 단지가 자리 잡고 그 주위로는 가든이라고 불리는 단독주택들이 블록을 이루며 모여 있다.


 고층 아파트들이 둘러싼 커다란  양의 가운데 부지는 넓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큼직한 분수가 있고 잘 가꾸어진 잔디밭과 동산이 있는 가장자리로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시원시원하고 넉넉하게 놓여 있다.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들은 수령 100년을 거의 채워 가는 듯 굵직한 둥치와 풍성한 가지 끝의 무성한 잎사귀들이 서늘한 그늘을 만든다. 아이들이 놀기에 천상 낙원이다. 간혹 매트 위에서 옆에 생수병 하나를 두고 요가 개인 수업을 받는 청년들도 있었다. 주말에는 테이블마다 가족들 모임이 벌어졌다.

10월 31일, 할로윈 데이에는 하루 종일 축제 행사가 열렸다.


 빨간 넝쿨 꽃들이 축축 늘어져 눈길을 끌고 앞뜰이 깨끗이 청소되어 있는 예쁜 카페.

 창문 안으로 열심히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 들여다 보이는 체육관.

 사위가 종종 큰 애를 데리고 다니는 수영장. 넓은 모래밭까지 갖춘 놀이터.

 아파트 단지 안의 부대시설들도 넉넉하다.


 4,000여 세대가 사는 하나의 마을이 한 소유주의 운영 아래 있으니 경비와 관리가 철저해서 안전하고 깨끗하다.

 담을 벗어나면 동서남북 네 정문마다 색다른 도시 풍경이 펼쳐진다.

 가장 많이 들르고 가장 많이 이용했던 곳은 더 그로브 쇼핑몰 쪽이다.

 단지 안을 한참 걸어와 닫혀 있는 쪽문을 열고 나서면 할인 의류 판매장 로스가 있고 좌측으로 조금 더 가면 홀푸드 마켓이 있다. 조금 더 걸어가면 LA 패키지여행 때 꼭 들르는 관광 명소, 파머스 마켓이 나타난다.

 미국에서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도 장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배낭을 메고 식품들을 사 날랐다.

 돌아올 때는 열쇠로 쪽문을 열어야 하니 집을 출발하기 전에 꼭 쪽문 열쇠를 챙겨야 한다.


 다른 한쪽 정문으로는 LA 타르핏 뮤지엄이 있다. 주제별로 전시물이 여러 관에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 야외에는 지금도 보글보글 거품을 뿜어내고 끓어오르며 콜타르 냄새를 풍기는 작은 늪이 있다. 이곳이 유전 지역이라는 증거라고 한다.


  또 다른 방향에는 LACMA 현대미술관이 LA의 문화 예술을 가득 담고 있다.


  한 달을 머물면서 승용차로 30여 분 거리의 조카네 집도 드나들고 올케언니랑 4박 5일 미국 동부 여행도 다녀왔다. 집에 있는 동안은 가능하면 집밥을 먹이려고 최선을 다했다.


 시간 나는 대로 다 함께 좋은 곳으로 나들이도 많이 다녔다.

 '21세기의 문화 아크로폴리스'라고 불리는 게티 센터는 초현대식 건물과 미술 분야의 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명소이다. 미국의 석유 재벌 폴 게티가 소장한 대규모 미술품들을 전시한 게티 미술관과 미술 교육관, 잘 가꾸어진 독특한 정원들이 군데군데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두 언덕 사이 골짜기를 연결하여 지은 높은 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주차장에서부터 트램을 타고 올라갔다.

 말리부 해변에 있는 게티 저택도 관광지로 개방되어 있었다.

 해변 리조트 단지 산타 모니카, 미국 영화계의  본산지 할리우드 등도 돌아보았다. 


 조카 부부와 함께 베네수엘라 출신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LA 교향악단 정기 연주회와 한국에서 영화로 이미 보았던 뮤지컬 <시카고>도 관람했다.


 아이들이 잘 지내도록 자리 잡는 것도 보고 감생심 꿈도 못 꾸었던 조카도 만나보며 길면서도 짧게 느껴지는 한 살이 미국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귀국해서는 기대하지도 않았던 한 달치의 의료보험료를 돌려받는 보너 스도 받았다


 이듬해 봄, 남편과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아파트 단지 가득 보라색 벚꽃이 만발해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뿐 아니라 도심 곳곳 가로수로 심어져 보라색 꽃구름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꽃나무 이름은 '자카란다'라고 했다.


 여섯 식구가 다 같이 1박 2일 코스로 '작은 덴마크'라고 불리는 솔뱅을 거쳐 산타 바바라를 다녀왔다.

 선교의 중심 역할을 했다는 수도원을 둘러보고 버스에 올라 알아듣지도 못하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귓전으로 날려 보내며 골목을 누볐다. 바닷가에서는 수륙양용 보트도 탔다.


 평일에는 남편과 둘이 승용차를 이용해서 제임스 딘의 동상이 있고 영화 '에덴의 동쪽' 촬영지였다는 그리피스 천문대도 다녀왔다.


 파크 라 브레아♡


 다시 한번 갈 기회가 있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더 행복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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