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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16. 2021

한 지붕 두 가족 2/2

   미국으로 ᆢ


 딸네 살림과 육아를 전담해 오던 입주 아주머니와 업주부인 나의 가사 분담 문제가 묘하게 불편했다. 아주머니 입장에서 보면 네 식구가 일곱 식구로 늘어난 셈이다. 한 부엌에서 따로 식사 준비를 할 수도 없다. 한 배에 선장이 둘인 셈이라고나 할까?

 어린 손주들에게 남의 손길보다는 가족의 손길이 더 많이 가야 할 것 같기도 했다.

 2년 여 함께했던 입주 아주머니와 작별을 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낮 시간 동안만 아이들을 보살펴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아가 둘의 점심과 아가들과 놀아주는 일만 책임지기로 했다. 개신교 신자이신데 참 신앙인의 모범이신 사랑과 헌신으로 우리 아이들을 거두어 주셨다.

 귀하고 고마운 인연이었다.


 7월 말, 사위는 미국으로 일 년 과정의 법학 연수를 떠났다. 딸은 두 번째 다니는 대학이라 그러잖아도 늦어진 졸업을 1년 더 뒤로 미룰 수 없다며 아이들과 한국에 남아 학업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나는 딸이 1년 휴학하고 가족이 다 함께 미국으로 가기를 희망했지만 딸의 생각은 달랐다. 하긴 나이 차이가 많아서 어렵게 친밀해진 학교 친구들도 다 바뀔 테니까.

 

 묘하게도 딸이 3학년 1학기 종강과 함께 미국 약대 견학을 일주일 다녀오고 바로 그 다음날 사위가 떠나는 일정이다.

 딸이 귀국하는 날, 사위더러 아이들 걱정은 하지 말고 공항에서 둘이 만나 밖에서 1박 2일을 함께 지내고 오라고 했다. 사위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튿날 아침,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둘이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몇 시간 후면 사위가 출국을 해야 하는데 둘의  분위기가 영 별로다. 사위는 마무리 출국 준비를 하고 딸은 일주일 간 떨어져 있었던 아이들을 돌보면서 겉으로는 평온하고 예의 바른 듯했지만 긴장과 갈등의 기운이 팽팽했다.

 출국을 앞두고 사위도 긴장해 있었고 1년이나 아이들과 독박 육아로 씨름하며 한국에 따로 떨어져 공부에 매달려하는 딸의 심경도 복잡한 듯했다.


 사위는 떠나고 아이들과의 무더운 여름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조심스레 미국으로 가서 가족들이 함께 살 것을 거듭 종용했지만 딸은 낯선 곳에서 혼자 아이들 둘을 키우고 있으면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아직 한 번도 전담해 보지 못한 가사와 육아에 대한 불안이 아주 컸던 모양이다.

 나는 그대로 수긍했다. 세 살, 네 살, 20개월 차이인 두 손주 모두 아직 기저귀 차고 이유식 시작하는 한참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딸은 3학년 2학기 등록을 마쳤다.

 

 8월 31일, 2학기 개학을 하루 앞두고 딸이 말했다.


 "엄마, 아이들 데리고 미국으로 갈래요."


 나는 바로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래 그래, 정말 잘 생각했다. 정말 좋은 생각이다."


  딸과 사위는 계속 그 문제를 의논해 오고 있었던 모양이다.

 반가운 결정이었다.


 개학 하루 전날이라 서둘러 학교에 여러 가지 휴학 서류들을 제출하고 미국행 준비에 들어갔다. 부모님 추석 차례를 모셔야 되기에 9월 말 추석을 지내고 10월 2일 미국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나도 정착 도우미 역할을 맡아 함께 출발하게 되었다.

 네 명 탑승객에게 허용되는 이민 가방 여덟 개 가득 온갖 살림살이들과 아가들 옷, 장난감, 책들을 챙겨 담았다.

 LA까지 두 어린 녀석들의 14시간 비행 시간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느라 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마침 자동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라 카냐다 주택단지에 친정 조카네 네 식구가 살고 있었다. 대단한 우연이었다. 오매불망 그 착하고 예쁜 막내아들을 그리워하는 부산 큰올케언니에게 동행을 권유했더니 바로 찬성하셨다.

 어른 셋, 아이 둘이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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