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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Nov 08. 2021

위드 코로나, 위드 패밀리 ♡

   함께 만들어 가는 따뜻한 시간들

 어느새 겨울 냄새를 담고 있는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쉬지 않고 땅을 적신다. 한줄기 차가운 바람이 으스스 대기를 가른다. 후드득 떨어지는 낙엽들이 차갑게 젖어 있는 땅 위로 묵직하니 몸을 뉘인다.


 고요한 아침 시간.

 큰애가 끓여다 준 진한 대추차 한 잔이 따끈하게 데워져 책상 위에 놓여 있다.


 해마다 가을이면 밭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수확한 귀한 대추를 아낌없이 한 박스씩 보내주는 친구가 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의 동창이다.

 택배로 부쳐져 오는 대추 박스. 20 kg. 엄청난 양이다. 나는 또 그것을 봉지 봉지 담아 주위 여러 사람들과 넉넉히 나눈다. 퍼내고 또 퍼 내어도 꾹꾹 눌러 담은 박스 안에는 아직도 제법 많은 대추가 남아 있다. 일 년 내내 요긴하게 잘 쓰인다.


 딸에게도 나누어 준 대추가 향긋한 대추차가 되어 어제 나에게로 왔다. 이것저것 늘 챙겨주는 딸의 섬세한 마음과 오래된 친구의 묵직한 우정이 대추차의 깊고 그윽한 달콤함과 딱 맞아떨어진다.

 학업을 끝내기 바쁘게 곧장 취업과 결혼, 육아로 이어져 힘들게 동동거리던 딸이 어느덧 이리 깊은 맛을 내는 대추차도 끓일 줄 알게 되다니 ᆢ.

 대견하다. 고맙다. 안심이 된다.


 어제는 둘째네의 맏이인 외손녀 라파엘라의 첫 영성체 날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주일학교 학생들이 처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뜻깊은 날이다.

 

세례는 받았지만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루카 22,19)

라고 말씀하신 성체성사의 깊은 뜻은 미처 헤아릴 수 없는 어린아이들이 몇 개월에 걸친 집중 교리 공부를 받고 이제부터는 미사에서 행해지는 성체 성사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되는 큰 행사다.


  "그리스도의 몸~~!"

  "아멘."


 사제가 높이 들고 선언하는 밀떡을 받아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정중히 입안으로 모신다.

 내 안에 늘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현존을 깊이 기억하며 그 보살핌 안에서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는 것이다.


 위드 코로나로 바뀐 정책 덕분에 11월의 첫 주일인 어제는 500명이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거의 2년 만에 처음이다. 26명 아동들의 가족, 친지들과 교우들이 모두 편안하게 성전 안에서 첫 영성체 축하 미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 나의 자그마한 기적 체험이었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예쁜 어린이들과 그 부모님, 수고하선생님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주시는 축하 선물이었다.

 식당에서도 아무 제재 없이 열 명이 한 방에서 함께 식사할 수 있었다.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일찌감치 서둘러서 미사 30분 전에 성당에 도착했다. 사돈어른 두 분께서는 벌써 도착해 성전 안에 앉아 계셨다. 거의 4년 만에 뵙는다. 우리 부부보다 네 살씩 많으신 두 분은 여전히 아름다우시고 활달하시지만 지나가는 세월의 흔적은 우리 넷 모두에게 깃들어 있었다. 조금씩 야위셨고 조금씩 쇠잔해지셨다.

 지난 4년 사이 사돈댁도 큰 아픔을 겪었고 우리도 큰 어려움을 만났다. 정작 아이 셋을 키우고 결혼시키기까지는 정신없이 젊은 힘으로 쭉 뻗은 길을 열심히 잘 달려온 것 같은데 70을 전후한 지금 이 시기에 큰 파도를 만난 것이다. 이것이 인생인가 보다.

 사돈댁의 아픔 앞에서 나와 안사돈 어른은 둘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고 우리의 큰 어려움에는 두 분이 거금을 보내 주셨다. 뜨거운 기도와 함께.

 아직도 아픔과 어려움의 극복 과정에 놓여 있지만 손녀의 기쁜 행사에 함께 참여하여 감사와 위로의 말을 주고받으니 주어진 길을 담담히 성실하게 걸어가시두 분의 성숙한 연륜의 무게가 느껴진다.


 조카를 축하해 주러 먼길 온 큰딸 부부를 포함하여 열 명이나 되는 가족들이 풍족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거운 대화 속에서 고맙게 잘 먹었다.

 조용히 아들에게 카드를 건네어 주시 음식 대금을 치르게 하시는 바깥사돈 어른에게 말씀드렸다.


 "내년에 있을 연년생 동생, 둘째 손주의 첫 영성체 때는 저희가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안사돈 어른은 활짝 웃으시며 농담을 던지셨다.


 "치매 걸려서 우리 그런 약속 기억 못 해요."


  어린 손주들은 쑤욱 쑥 성장해 가고

  젊은 아들 딸들은 의젓이 성숙해 가고

  한 걸음 비껴 선 우리는 잔잔히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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