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위드 패밀리 ♡
함께 만들어 가는 따뜻한 시간들
어느새 겨울 냄새를 담고 있는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쉬지 않고 땅을 적신다. 한줄기 차가운 바람이 으스스 대기를 가른다. 후드득 떨어지는 낙엽들이 차갑게 젖어 있는 땅 위로 묵직하니 몸을 뉘인다.
고요한 아침 시간.
큰애가 끓여다 준 진한 대추차 한 잔이 따끈하게 데워져 책상 위에 놓여 있다.
해마다 가을이면 밭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수확한 귀한 대추를 아낌없이 한 박스씩 보내주는 친구가 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의 동창이다.
택배로 부쳐져 오는 대추 박스. 20 kg. 엄청난 양이다. 나는 또 그것을 봉지 봉지 담아 주위 여러 사람들과 넉넉히 나눈다. 퍼내고 또 퍼 내어도 꾹꾹 눌러 담은 박스 안에는 아직도 제법 많은 대추가 남아 있다. 일 년 내내 요긴하게 잘 쓰인다.
딸에게도 나누어 준 대추가 향긋한 대추차가 되어 어제 나에게로 왔다. 이것저것 늘 챙겨주는 딸의 섬세한 마음과 오래된 친구의 묵직한 우정이 대추차의 깊고 그윽한 달콤함과 딱 맞아떨어진다.
학업을 끝내기 바쁘게 곧장 취업과 결혼, 육아로 이어져 힘들게 동동거리던 딸이 어느덧 이리 깊은 맛을 내는 대추차도 끓일 줄 알게 되다니 ᆢ.
대견하다. 고맙다. 안심이 된다.
어제는 둘째네의 맏이인 외손녀 라파엘라의 첫 영성체 날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주일학교 학생들이 처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뜻깊은 날이다.
세례는 받았지만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루카 22,19)
라고 말씀하신 성체성사의 깊은 뜻은 미처 헤아릴 수 없는 어린아이들이 몇 개월에 걸친 집중 교리 공부를 받고 이제부터는 미사에서 행해지는 성체 성사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되는 큰 행사다.
"그리스도의 몸~~!"
"아멘."
사제가 높이 들고 선언하는 밀떡을 받아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정중히 입안으로 모신다.
내 안에 늘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현존을 깊이 기억하며 그 보살핌 안에서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는 것이다.
위드 코로나로 바뀐 정책 덕분에 11월의 첫 주일인 어제는 500명이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거의 2년 만에 처음이다. 26명 아동들의 가족, 친지들과 교우들이 모두 편안하게 성전 안에서 첫 영성체 축하 미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 하나의 자그마한 기적 체험이었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예쁜 어린이들과 그 부모님, 수고하신 선생님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주시는 축하 선물이었다.
식당에서도 아무 제재 없이 열 명이 한 방에서 함께 식사할 수 있었다.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일찌감치 서둘러서 미사 30분 전에 성당에 도착했다. 사돈어른 두 분께서는 벌써 도착해 성전 안에 앉아 계셨다. 거의 4년 만에 뵙는다. 우리 부부보다 네 살씩 많으신 두 분은 여전히 아름다우시고 활달하시지만 지나가는 세월의 흔적은 우리 넷 모두에게 깃들어 있었다. 조금씩 야위셨고 조금씩 쇠잔해지셨다.
지난 4년 사이 사돈댁도 큰 아픔을 겪었고 우리도 큰 어려움을 만났다. 정작 아이 셋을 키우고 결혼시키기까지는 정신없이 젊은 힘으로 쭉 뻗은 길을 열심히 잘 달려온 것 같은데 70을 전후한 지금 이 시기에 큰 파도를 만난 것이다. 이것이 인생인가 보다.
사돈댁의 아픔 앞에서 나와 안사돈 어른은 둘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고 우리의 큰 어려움에는 두 분이 거금을 보내 주셨다. 뜨거운 기도와 함께.
아직도 아픔과 어려움의 극복 과정에 놓여 있지만 손녀의 기쁜 행사에 함께 참여하여 감사와 위로의 말을 주고받으니 주어진 길을 담담히 성실하게 걸어가시는 두 분의 성숙한 연륜의 무게가 느껴진다.
조카를 축하해 주러 먼길 온 큰딸 부부를 포함하여 열 명이나 되는 가족들이 풍족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거운 대화 속에서 고맙게 잘 먹었다.
조용히 아들에게 카드를 건네어 주시며 음식 대금을 치르게 하시는 바깥사돈 어른에게 말씀드렸다.
"내년에 있을 연년생 동생, 둘째 손주의 첫 영성체 때는 저희가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안사돈 어른은 활짝 웃으시며 농담을 던지셨다.
"치매 걸려서 우리 그런 약속 기억 못 해요."
어린 손주들은 쑤욱 쑥 성장해 가고
젊은 아들 딸들은 의젓이 성숙해 가고
한 걸음 비껴 선 우리는 잔잔히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