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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Nov 20. 2021

적자 생존

  매혹적인 선택

적(適)자 생존

ㅡ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이나 집단이 살아남는다.

(書) 생존

적는 사람, 쓰는 사람, 기록하는 사람 살아남는다.


 오늘은 2002년 세상을 떠나신 시아버님의 기일이다. 성당 미사 봉헌을 위해 오전 10시 평일 미사에 참석했다. 코로나 이후 평일 미사 참석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신부님의 강론 말씀 중에 어느 한 문장이 반짝 내 귀에 와닿았다.

  " '적자생존' '적자(쓰자)생존'으로 쓰이는 게 한창 유행이었던 적이 있습니."

 나로서는 처음 대하유머였는데 참으로 유쾌하고 참신한 언어유희다.


 내 입장에서 볼 때 이 둘은 밀접하게 연결된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 나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쓰는 사람'이 되기를 택했기 때문이다. 나를 알아차리고 표현하며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소통의 수단으로 글쓰기를 만났다.

 울러 글쓰기는 자칫 메말라 갈라터질 수도 있는 내 삶을 촉촉히 적시며 다독여 주 소중한 물길도 된다.

 뭘 보거나 들으면

 '아, 저걸로 글 한 편 쓰고 싶다!'

생각이 떠올라 더 관심 있게 보고 듣고 느끼기도 한다.


 브런치에 올리는 내 글을 거의 한 편도 빠뜨리지 않고 읽으면서 새벽마다 꾹꾹 빠짐없이 라이킷을 눌러 주는 오래된 친구가 있다. 간혹 카톡을 보내온다.


 "그래 왔듯이 너의 글을 읽으면서 나의 지나쳐 버린 삶도 반추해 보는 아픔과 즐거움이 있단다."


 "매일 너의 글을 읽으면서 깡그리 잊혀지고 없었던 것 같았던 나의 청춘 시절을 가끔 소환하고 즐거움과 안도감으로 지내고 있단다."


우리 아이들은 브런치에 올라오는 내 글을 대하면

 '아, 엄마가 오늘도 잘 지내고 계시는구나.'

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지인이 안부를 물어오는 글에는 브런치에 올려놓은 글 중 제일 알맞다고 생각되는 것을 하나 찾아내어 공유하면 아주 가성비 높은 답장이 된다.

 반대로 내가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에게도 글 한 편을 골라 보내면 그쪽도 꽤 긴 사연을 보내온다.

 또 하나 보너스로 덧붙여 얻게 되는 것은 코로나로 인해 활동 반경이 많은 제약을 받고 남편 식사 챙기는 일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재 상황이 힘들거나 무료하게 여겨지지 않다는 것이다.


 올해, 2021년 7월, 아들의 권유와 도움으로 어찌어찌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혼자 마음속으로 다짐한 것이 있었다.

 별로 의지가 굳은 편이 아니라 굳은 의지가 필요한 일은 아예 시도하지 않는 소극적인 삶이 나에게는 훨씬 편한 삶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생에서 늦은 감이 있는 일일 수도 있지만 백일 동안 매일 한 편의 글을 올려보자는 각오를 다. 여차직하면 내려놓을 각오였기에 아무에게도 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다. 새벽 5시에 올리기도 하고 자정 직전이나 직후에 올리기도 하면서 백일 수행에 가까운 백일 글 올리기가 이어졌다. 옛날에 써 놓은 글들을 요긴하게 써먹으면서 써 놓은 글, 쓰는 글이 반반씩 차지하는 백여 편의 글이 올려졌다.


 이건 내 향도 아니고 내 힘도 아니다.


 뭔가 강한 힘에 의해 떠밀려 온 것 같다.

 브런치라는 가상공간에서 뜨겁게 살아 숨 쉬고 있는 사만 칠천여 작가님들의 각양각색 열정들이 뿜어내는 위대한 힘 덕분인 듯하다.


 7월 3일부터 10월 27일까지 106편의 글을 올렸다. 글이 비는 열흘 정도는 올린 글을 발행 취소한 들이다. 그 글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아들의 충고를 따랐다.

 써 놓은 글들은 이제 바닥이 났지만 어쩌면 계속해서 여세를 몰아 1일 1편 게재를 강행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잠깐 내려놓기도 해야 되겠다는 쪽으로 마음먹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당 과제물이다. 4 복음서를 읽고 그 중에서 예수님 말씀만을 골라 필사하는 것이 올해 우리 본당의 과제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본당 차원의 큰 행사다. 글쓰기에 마음을 쏟다 보니 도저히 필사 시간을 낼 수 없었다.

 11월 27일, 마감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과감히 글쓰기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그런데 쓰지 않는다고 시간을 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처음 2, 3 일 동안은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느라 계속 브런치에 사로잡혀 놓여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미처 만나지 못했던 다양한 글들이 참으로 많이 담겨 있었다. 쓰기에 대한 부담감이 없으니 대추나무 연 걸리듯 정신없이 이어지는 글들을 찾아 읽으며 라이킷을 눌러댔다. 시간 잡아먹는 귀신이었다.


 조화로운 삶, 균형 잡힌 삶, 계획적인 삶보다는 항상 충동적인 과유불급에 더 끌려 버리는 내 모습을 보며 피식 쓴웃음을 웃기도 했다. 그렇지만 재밌었다.


 이것들은 모두 '적適자생존'을 위해 '적자書생존'을 택한 나의 결과물들이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 가며 어제 성경 필사를 끝내었다. 귀한 노트를 소중히 책상 한 귀퉁이에 모셔놓았다.


11월 27일까지는 아직 주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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