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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Nov 18. 2021

얼렁뚱땅 엄마  3/3

   수능 의상

 정적이 감도는 조용한 집안에 지극히 사무적인 목소리만 단조롭게 울려 나오고 있다.

 오늘 치른 수능고사의 정답을 알려주는 EBS 교육방송 TV 아나운서의 음성이다. 아나운서조차 긴장으로 얼어붙은 듯 감정은 완전히 배제된 딱딱한 음성이다.


 조그만 공부상을 준비하여 어깨를 잔뜩 치켜올리고 TV 앞에 앉아 있는 아들의 뒷모습은 침묵 속의 긴장 그 자체다. 수능 추위로 바깥은 매서운 겨울 날씨인데 얇은 반팔 여름 티셔츠 한 장만 입고 있는 아들의 등과 어깨 위로 안개 같은 가느다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마실 것 한 잔도 권할 수 없는 얼음 같은 긴장감이 아들의 온몸에서 안개의 열기로 뿜어져 나온다.


 방송되는 한마디 한마디에 초집중하고 있는 아들의 뒷모습이 짠하게 마음을 파고든다. 홀로 걸어야 할 인생 관문의 또 한 과정을 있는 힘을 다해 통과하고 있는 애틋한 모습이다.


 우리 가족이 세 번째 수능을 치르는 2006년 11월.

 종일 수능을 치르고 곧장 귀가한 아들은 교육방송 수능 정답 해설 시간만을 초조히 기다렸다. 방송이 시작되자 바로 채점에 들어갔다. 한 문제 한 문제 정답이 발표되면서 안도의 한숨 속에 섞여 간혹 아쉬움과 한탄의 신음도 새어 나온다.


 나는 바로 뒤 소파에 앉아 이어지는 아들의 반응에 마음을 졸이며 조심스레 한마디씩 건넸다.


 "왜? 틀렸니? 괜찮아."


 "와아, 다 맞았구나! 잘했다, 잘했어!"


 채점이 끝났다.

 점수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적당한 안도감과 적당한 아쉬움이 결과로 남은 듯하다. 아들은 크게 실망하지도, 크게 기뻐하지도 않았지만 좀 많이  아쉬워했다.


 " 2 외국어인 독어를 그렇게 열심히 할 시간에 수학을 많이 했으면 좋았을 걸ᆢ"


 아들이 고3이 되어 수능 준비마지막 박차를 가하면서부터 평소에도 여러 번 되뇐 말이다. 어학 공부를 좋아하는 아들은 국어, 영어뿐만 아니라 독어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다. 요점들을 정리해서 한 권의 노트에 빼꼭히 적어 놓은 기록물을 보며 독어 참고서로 발간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수능 전날 오후, 아들이 나의 공부방으로 쑤욱 찾아왔다.

 그 당시 나는 외고 바로 앞 대로변에 있는 조그만 오피스텔 한 칸을 논술 공부방으로 빌려 쓰고 있었고 아들은 누나인 큰애보다 11년 뒤에 똑같은 외국어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외고에도 이과 교과학습 편성이 허용되었던 때였다.

 평소에는 야간 자율학습으로 귀가 시간이 늦었던 터라 나는 항상 아들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이 공부방으로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날은 수능 전날이라 고사장도 둘러보고 준비물도 챙겨야 하기에 학교에서 일찍 귀가시킨 모양이다.


 아들이 인터넷에서 찾아 메모해 온 준비물 쪽지를 보며 이런저런 의논을 했다. 준비물 목록 중에 초콜릿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수능 시험에 때맞춰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에 입고 갈 겉옷이 마땅치 않았다. 무조건 편안하고 따뜻한 것으로 입고 가야 할 텐데 마땅히 준비되어 있는 옷이 없었다. 입고 있는 가을 점퍼로 역부족이었다. 난감했다. 미리 좀 좋은 것으로 방한복을 한 벌 마련해 둘 걸. 열심히 최선을 다해 오늘 이 시간까지 달려온 아들에게 미안했다.


 당시 그 방을 숙소로 쓰고 있었던 막내 외삼촌의 옷장을 열어 보았다. 다행히 편안하고 따뜻해 보이는 두툼한 오리털 갈색 점퍼가 한 벌 걸려 있었다. 입혀 보니 크기도 딱 맞았다. 속으로 안도의 숨을 쉬었다. 갑자기 닥쳐온 추위에 옷이라도 든든히 입어야 할 텐데 그 걱정이 덜어진 것이다.

 동생에게 연락해 보니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그냥 가져가서 계속 입으라는 말까지 해 주었다. 한마디 불평도 없이 아저씨 티가 연한 갈색 오리털 점퍼를 입고 아들은 따뜻하게 수능을 치렀다.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얼렁뚱땅 임기응변으로 한 고비를 넘겼다.


 이제 실체를 드러낸 수능 점수를 바탕으로 담임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합격을 위한 고난도의 작전을 짜야 하는 시간이 다.

 입학 원서 제출은 모든 게 컴퓨터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1분에 1000타를 넘나드는 날렵한 속도로 자판을 두드리고 마우스를 움직여 가며 아들은 몇날 며칠에 걸쳐 각 학교 입시 요강과 학과별 선택 비중들을 검색해 갔다. 컴맹인 나는 그저 옆에서 아들의 눈길이 가는 곳으로 함께 시선모으는 것밖에는 도와줄 일이 없었다. 아들이 하는 말을 새겨들으며 짧게 한 마디씩 생각을 나눌 뿐이었다.


 아들은 의대 진학을 목표로 컴퓨터 검색에 몰두하더니 3 지망까지 모두 의대로 원서를 제출했다. 아쉽게도 외고라는 특성상 감히 서울대는 도전해 볼 수 없었다. 친구들 중에는 그런 이유로 특목고가 아닌 일반고로 진학한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그 당시 정부는 의학 전문대학 제도를 도입해 각 대학의 의대에 밀어붙였다. 대학에서는 입학생들의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를 표명했지만 정부의 시책에 따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시간을 두고 조금씩 의과대학 입시 정원을 줄이고 대신 의학 전문대학 입시 정원을 늘려오는 중이었다.

 고등학교 재학생들의 의대 학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2007년도 입시에서 아들은 1차 지망대학이 아닌 2차 지망대학에 합격하였다. 입학 등록을 하고 예과 1학년 과정을 이수해 가면서 아들은 다시 수능에 도전하였다. 

 원했던 1지망 의과 대학에 합격하였다. 08학번.

 해가 바라던 의과 대학으로 바로 진학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의대와 의전, 반씩의 인원으로 신입생을 뽑았다. 이듬해부터는 전원 의학 전문대학생으로만 신입생을 선발하였다.


 6년에 걸친 어려운 의과대학 공부와 국가 고시, 이어지는 인턴, 레지던트 수습 과정, 전문의 자격 시험. 11년간의 길고도 고된 과정을 한 차례도 낙방하는 일 없이 끝까지 잘 걸어왔다. 지금은 꼬박 3년을 채워야 하는 군의관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아들이 고맙고 장하다.


 얼렁뚱땅 엄마 밑에 고마운 세 자녀를 주신 커다란 은총에 감사드린다.


 2021년 11월 18일, 목요일인 오늘도 코로나의 어려움까지 감내해 가며 전국에서 2022년 대입 수학 능력 고사가 실시된다. 

 이 땅의 모든 젊은이들이 꿈을 향해 쏟은 귀한 땀방울들이 소중하고 튼실하게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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