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무아 Nov 27. 2021

CㆍC

   캠퍼스 커플

 

 우리 세 아이들은 모두 CㆍC , 캠퍼스 커플들이다. 각각 같은 대학교 출신으로 맺어진 짝들이다.

 사귈 때는 동료들 눈에 띄고 헤어지기라도 할 양이면 자주 마주치면서 얼굴 대하기가 편편찮아 심사숙고해야 할 사항이라고들 말하기도 한다.


 두 딸들은 재학 중 마지막 학기에 졸업 후 사회에서 일하고 있는 같은 대학 출신 짝들을 만났고 아들은 졸업을 거의 눈앞에 둔 시점에서 동기 동창끼리 마음을 모았던 것 같다. 그러니 CㆍC의 불편한 점은 뛰어넘은 셈이다.


 나는 CㆍC가 행운의 짝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척하면 삼척'이라고 소통이 수월할 것 같다. 교정의 어느 곳을 들먹여도 같은 경험으로 인한 같은 이미지를 떠올려 쉽게 대화가 된다. 그 대학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어 이해의 폭이 넓다. 사전 설명이나 해설이라는 한 단계의 작업을 뛰어넘은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다. 공감과 수용의 가성비가 높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니라.


 1993년, 문화나 정보가 지금보다 훨씬 빈약했던 시절,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실려 담박 유명해진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CㆍC 부부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세계를 토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기 쉽다. 그 세계는 좁고도 고유한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고 여행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폭넓은 독서를 하는 간접 경험으로 그 지평을 넓혀가는 기쁨이 있다.


 그 진리를 무시하고 자기만의 고유한 경험과 제한된 환경에서 형성된 지극히 주관적이고 왜곡되기까지 한 가치관과 행동 지침을 고수하며 타인에게 똑같이 적용시키고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갈등을 자초하는 일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입장 바꿔 생각해 보지 않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그렇게 되기 십상이다.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의 가정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자신만의 금과옥조를 만만한 가족에게 강요하고 밀어붙이면 귀중한 가족 관계에 금이 간다. 가정이 멍든다.

 자신이 만들어 온 가치관과 행동 방식을 옳다고 여기며 귀하게 생각하고 삶에 적용할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은 자신의 삶에 국한되어야 한다.

 나를 따르라며 상대를 압박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화까지 내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다.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위선의 깃발을 휘두르며 상대에게 덮어 씌운 '괘씸죄'를 처단하기 위해 번쩍이는 분노의 칼날을 뽑아 들면 속수무책이다.


 "이렇게 한번 해 봐."


 "그래? 그런데 나는 이게 더 편해."


 "필요하면 말해."


 "응, 알아았~~쓰어~~."


 이런 대화가 오가는 가정이 많았으면 좋겠다.

 

 감동받았던 책 제목이 있다.

 <아내가 입을 열면 나는 귀를 연다>

 이 얼마나 환상적인가?


 CㆍC 에게는 이 가능성이 높다. 서로가 서로의 가치를 잘 알고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기 쉽기 때문이다.

 대화가 척척 통하는 세 아이들, 세 쌍의 안정된 부부들을 곁에서 지켜보노라면 부모인 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고맙고도 신기하다.

작가의 이전글 적자 생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