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무아 Mar 11. 2022

애플 망고를 아시나요?

   코로나 극복기 남편상賞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다.

 어제 저녁, 초등 3학년 새 학기를 맞은 외손주 녀석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무사히 잘 비켜 갔으면 하고 마음 졸여 왔는데 코로나라는 거센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노출돼 버린 모양이다.

 두 줄로 나타난 반응 검사 키트지를 들고 한 살 위인 연년생 초등 4학년 누나랑 네 식구가 선별 진료소를 찾아 2시간여를 줄 서 기다리다 차례가 되어 검사 창구에 이르니 양성 반응이 나타난 손주 녀석만  PCR 검사 자격이 있고 내일 손주가 양성 반응으로 나오면 그때 나머지 세 식구가 검사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손주만 검사를 받고 네 명이 지쳐서 귀가하여 모두 힘들어하고 있었다.


 음식을 좀 챙겨 들고 딸네 집으로 향했다. 골목을 벗어나 대로변에 이르니 내가 타야 할 마을버스가 100 미터 정도 앞에 멈춰 서 있다. 빨간 신호에 걸려 잠시 대기 중인 모양이다. 신호등을 통과하면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순간 냅다 뛰기 시작했다. 빨간불이 조금 더 오래 켜져 있길 바랐다. 잘하면 저 차를 탈 수도 있겠다. 들고 있는 장바구니 가방이 덜 무거워서 다행이다.


 간발의 차이로 신호등은 풀리고 잠깐 정류장에 머물렀던 버스는 바로 내 눈앞에서 휑하니 떠나 버렸다. 안내 전광판을 바라보니 다음 버스 도착 시간은 15분 후였다. 선거를 치르는 법정 공휴일이라 배차 시간이 훅 늘어난 모양이다.


 할 수 없군, 택시를 탈 수밖에.


 돋보기를 꺼내 끼고 잘 쓰지도 않는 앱을 찾아 택시를 호출하는 일은 번거롭고 익숙하지도 않다. 마침 지나가는 빈 택시가 내 손짓에 따라 얌전히 앞에 와서 섰다. 다행이다.


 편하게 뒷좌석에 자리 잡자 택시가 출발했다. 평소에 차로 꽉 막혀 있던 길이 뻥 뚫려 있다. 웬일로 한산하다는 말에 기사님이 맞장구를 치신다. 


 코로나가 대단하니까요.


 그리고는 재밌게 말씀을 이으신다. 60대 초반쯤으로 보인다.


 우리는 얼마 전에 코로나를 겪었어요. 집사람이 친구 만나 밥을 먹었다더니 이틀 지나 아프기 시작했어요. 목이 아프고 몸살이 심하고ᆢ.

 코로나였어요.


 보건소에서 연락이 와서 나는 자가 격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인천에 아들 집이 있긴 해요. 그런데 아픈 아내를 두고 어딜 가나요? 나도 자가 격리를 하겠다고 했지요.


 아내에게 화장실이 있는 방을 내주고 격리를 시작했어요. 나는 밥은 잘하거든요. 냉장고 속에는 밑반찬이 있고요. 일단 시장에 가서 일회용 국그릇, 밥그릇 식기들을 왕창 샀어요. 국도 샀어요. 된장국, 설렁탕, 추어탕 종류별로요. 그리고 과일집엘 들렀어요. 비싸고 맛있는 과일 다 보여달라 했지요. 그런데 애플 망고라는 게 있더라고요. 망고는 먹어 봤지만 애플 망고는 처음 봤어요. 그것도 샀어요. 집에 와서 일회용 용기에 세 끼 꼬박꼬박 식사 챙겨 들여보내 주고 중간중간 간식 넣어주고 과일도 깎아서 들여 줬어요.

 토스트 원하면 토스트도 만들어주고요.


 다 회복되고 나서 요즘은 반찬이 달라졌어요.


 세 끼 챙겨주는 일이 그리 힘든 일인 줄 몰랐어요. 돌아서면 밥 챙겨야 되더라고요. 여자들이 정말 힘들겠어요.


 얼마를 벌든 무조건 아침에 나와서 저녁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점심까지 준비하는 건 너무 스트레스더라고요.


 대화가 이어졌다.


 정말 잘하셨네요. 코로나 극복 모범 시민상 받으셔야겠어요. 모범 남편상요.


 , 이건 모두가 다 하는 정상적인 일 아닌가요? 또 그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되는 건 맞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택시는 둘째네 집 앞에 멈추었다. 요금은 5400원.

 오랜만에 타 본 택시였다.

 오랜만에 만나본 따뜻한 사람이었다.


 다음 날 모두 확진자로 밝혀진 둘째네 네 식구의 빠른 회복을 기도한다.

 가족들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 새삼 중요한 일이 되었다.

 투병 중인 모든 사람들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난 당신 맘 다 알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