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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Mar 12. 2022

여러 얼굴을 가진 층간소음 1

 예쁜 꽃으로 날아와 ᆢ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는데 예쁜 꽃봉투 하나가 툭 떨어진다. 은은한 살구색 고운 바탕에 잔잔한 꽃가지들이 섬세하게 수놓아져 있다. 아무 글자도 없는 겉봉이 낯설다. 궁금한 마음으로 봉투 안을 들여ㆍ보니 곱게 접힌 앙증맞은 꽃편지 한 장. 그제야 생각이 난다. 저절로 웃음이 떠오르는 따뜻하고 귀여운 편지 한 통.

 아, 여기 있었구나.


 안녕하세요? 804호입니다. 먼저 입주를 축하드립니다. 저희가 네 살, 한 살 아이 둘을 키우고 있어서 바닥에 매트도 깔고 했지만 의도치 않은 층간 소음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 사전에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혹시라도 불편함을 느끼시면 문자 한 통 보내 주세요.

 010  **** ****입니다. 빈 손으로 인사드리긴 뭐해서 수박을 준비했어요. 부담 갖지 말고 드셔요. 날씨도 덥고 코로나도 아직 안 끝났지만 건강 조심하시고 지나가다 뵙게 되면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2020년 6월의 일이다.

 2년간의 농촌 살이, 귀향 생활을 접고 서울로 다시 돌아왔을 때 잠깐 가재울 신축 아파트에서 지내게 되었다.

 일요일 오전, 초인종이 올렸다. 딩동~~.

 이삿짐을 푼 지 며칠 되지 않아 낯선 곳이고 딱히 찾아오기로 한 사람도 없었다.

 문을 여니 유모차를 각각 한 대씩 앞세운 젊은 부부 한 쌍이 서 있었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예쁘고 젊은 아내가 먼저 말을 건네 왔다.


 목요일에 이사 오시는 것 봤어요. 저희들은 위층에 살아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이 편지와 수박 한 통을 내밀었다.

 아직 많이 어려 보이고 해맑은 얼굴을 한 젊은 남편은 뒤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나는 고맙게 잘 먹겠다고 수박을 건네받았고 둘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나는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수박을 반으로 잘라 반 통을 올려주고 왔다.

 한창 어려 보이는데 대단하다. 벌써 아이 둘을 저렇게 키웠으니. 2년 전 결혼하여 아직 신혼인 우리 막내네와 비슷한 나이로 보인다. 둘이서 오손도손 오늘의 이 방문을 의논하고 유모차 두 대에 나눠 태운 아가들까지 대동하 이 행차에 나선 모습을 생각하니 새삼 사랑스럽다. 장한 젊은이들이다.


 그 이후 우리 사이에는 이런 문자들이 오고 갔다.


 좋은 이웃을 만나서 반가워요. 귀여운 아가들을 둘이나 보살피느라 힘드시겠어요. 하지만 정말 보람 있는 일이죠. 콩국,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솜씨가 좋으시네요. 서랍 정리하다가 아가들 과일 갈아 먹이면 좋을 듯한 도구가 하나 있어서 현관문 손잡이에 걸어놓았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앗, 강판 없었는데 잘 쓸게요. 감사합니다


 여덟 살짜리 남자아이 외손주가 있는데 작아진 옷 좀 가져다 드려도 될까요? 아직은 조금 클 것 같습니다만.


 첫째와 성별이 달라서 둘째는 옷을 하나, 둘 사 주고 있었는데 물려주시면 감사하죠.


 저희 딸네는 아홉 살짜리 딸, 여덟 살짜리 아들인데 그때그때 필요해 보이는 것들 함 챙겨 와 볼게요. 필요 없는 것이면 과감히 재활용으로 버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옷 잘 받았어요. 소소하지만 문 앞에 드실 것 놓고 갑니다.


 에휴, 이런 일에 돈 쓰게 해서 죄송해요.

 별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는데 ᆢ.

 앞으로는 잘 받았다고만 전해주세요. 아가들 키우느라 수고 많으세요.


 우리 둘째네 서랍 정리했나 봐요. 뭉쳐 놓았길래 제가 들고 왔어요. 마음에 드시는 것 몇 개 고를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요. 나머지는 옷체통에 부탁드려요. 수고하세요.


 옷,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옷 놓고 가 주셨던데 잘 입히겠습니다♡


 혹시나 성가시게 짐만 되는 것 아닌가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좀 아깝다는 생각 때문에 늙은 꼴통 짓을 하곤 합니다. 하나라도 건질 게 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습니다. 불필요한 것은 과감히 옷체통으로~~!!


 꽉 막힌 아파트, 낯선 주거 공간에서 어린 주부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전업주부 역할을 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가끔 밖에서 마주치면 항상 밝은 얼굴이라 마음이 좋았다. 간혹 화장실 천장을 통해 쉽게 그치지 않는 아가 울음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쓰였다. 마음속으로 꼭 안고 어르고 달래주었지만 쉽게 그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아가의 긴 울음에 어린 부모들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 갈까?


 우리가 그곳을 떠나는 이삿날 아침, 새댁의 문자가 왔다.

 이사 나가시네요. 조심히 가시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나도 답글을 달았다.

 네에, 아가들 키우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세요. 가끔 기억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이제 어느덧 세 살, 여섯 살이 된 아가들은 통통거리며 온 집안을 뛰어다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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