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걱정해서 집 앞까지 찾아와 만나 주는 친구들이 있다. 고맙고 반갑다.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생각보다 얼굴이 좋아서 좋다."
"표정이 밝아서 안심이다."
"씩씩하게 잘 하고 있어서 참 좋다."
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대꾸한다.
"덕분에."
"세 끼 꼬박꼬박 집밥 먹잖아, 그것도 단백질 엄청 챙기면서."
"몸무게 팍팍 늘어."
그리고는 하하호호 웃으면서 집 뒷산 산책길을 가볍게 같이 걷는다.
"네가 제일 맛있는 것 많이 먹어. 밥도 제일 맛있는 부분 네 것 먼저 뜨고 국도 네 그릇에 고기 제일 많이 넣어."
"네가 젤 중요해."
"응 그럴게, 알았어. 하하하."
하지만 실제로는 언감생심, 언행일치가 쉽지 않다. 냉장고 속 구석구석 살펴 남은 음식 먹어 치우기에 바쁘다. 나물이나 졸임 반찬 남은 것은 국물 꼬옥 짜내고 쫑쫑 다져 달걀 푼 물로 부침개 구워 먹는 나만의 잔반 처리 비법도 있다.
음식을 버린다는 것은 우리 나이 또래에서는 거의 금기 사항이다.
하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동년배였던 이웃 한 분의 말이 생각난다. 해외 출장이 잦은 남편이 긴 외국 출장에서 돌아오기 전날은 후다닥 냉장고 청소를 한다. 그럴 때면 한 바께쓰씩 음식 쓰레기가 나온다.
들을 때는 웃어넘겼지만 깔끔하게 잘 차려입고 다니는 그이의 살림살이는 나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매번 확인하곤 했다.
음식을 결코 버리지 못하는 내 모습에 또 한 번 혼자 웃었던 일이 있다. 가까이 사는 친척 조카며느리의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조카며느리로부터 어린아이 둘을 한나절 좀 돌보아 달라는 부탁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친 모양이다. 시간에 맞추어 그 집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두 아이들은 그리 손이 많이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자라서 둘이서도 잘 놀았다. 서둘러 출근한 맞벌이 조카 부부의 바쁜 일상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싱크대 주변이다.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남겨둔 그릇 몇 개를 씻어 주려고 개수대를 살펴본 순간 무언가 내 눈길을 확 끌었다. 족히 한 그릇은 될 만한 떡국떡이 그대로 쏟아 버려져 있었다. 유기농 고급 식자재를 즐겨 먹는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개수대 바닥에 쏟아져 있는 떡국떡도 뽀얀 색에 윤기가 나는 것을 보니 싸구려 상품은 아니다. 나는 그것을 깨끗이 쓸어 담아 물에 헹구었다. 다시 끓여 내 점심으로 먹었다. 그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나는 그 부분에서 꽤 웃기는 못 말리는 사람이다.
식탐이라고는 없이 늘 깔끔하게 일정량 이상은 절대 먹지 않는 소식지상주의자인 남편도 나에게 사명을 부여한다. 썰어 놓은 바나나 한 조각이 남아도 슬라이스 된 군고구마 한 토막이 남아도 구운 고등어 한 젓가락이 남아도 절대 더 이상 손을 대지 않는다.
어려운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요즈음은 더욱 그러하다.
그것들은 모두 내 몫이다.
상을 차리면서 잘려 나온 꼬투리들, 식탁을 정리하면서 남은 잔반들. 다 나의 식탁 메뉴로 채택되니 내 몫의 정식 식사는 제대로 차리지 않아도 될 때가 많다.
나는 그 상황을 즐긴다. 내가 만든 음식이고 식자재 구입부터 요리까지 모든 과정이 다 내 손을 거쳤으니 나름 귀하다. 맛있게 챙겨 잘 먹는다.
과일 접시 준비하다 따로 잘라낸 조금 흠 간 부분도 지난번 식사에서 남은 한물 간 반찬들도 모두 나와 인연 맺은 좋은 음식들이다.
솜씨 없지만 꼬박꼬박 차려 주는 매끼 음식을 많이 까탈 부리지 않고 열심히 잘 먹어 주는 남편에게 감사한다. 대형 마트에서 식자재 팍팍 주문 배달시킬 수 있는 여건에 감사한다. 재래시장 들러 싱싱하게 진열되어 있는 생선이나 수북이 쌓여 있는 제철 나물들에 시선 뺏기며 맘껏 눈호강할 수 있는 건강에 감사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고생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정의 내려 주신 아름다운 어르신 김형석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나에게 주어진 보너스들이 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