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쓰는 편지
내 오래된 친구, 이림 동화 작가♡
친구, 네가 보낸 귀한 선물에 어떻게 답례를 할까 오래 생각해 봤어. 글을 한 편 준비해야겠다고 결론 내렸지. 그 생각은 이런저런 일상의 분주함에 파묻혀 내 마음 깊은 곳에 오랜 시간 숨어 있었어.
간혹 자기를 만나 달라고 작은 몸짓의 신호를 보내오기도 했지만 또 다른 경쟁자인 게으름에게 일순위를 양보하고 저 아래로 물러나 있곤 했지.
그런데 깜짝 놀랐어. 오늘이 벌써 5월 3일이라니ᆢ.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야. 적어도 어린이날이 되기 전까지는 이 글을 꼭 한 편 쓰겠다고 작정하고 있었거든.
눈길 가는 곳마다 손길 가야 되는 집안일에 두 눈 꾹 감고 카페로 달려왔어. 디카페인 라테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젠 오롯이 너와의 대화에만 집중하려고 해.
은연중 연말의 부산함을 몰고 오며 슬며시 한 해의 끝을 알리는 늦가을이 되면 불현듯 지나간 인연들이 크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어. 그날이 그랬지. 2020년 10월 말.
꽤 긴 시간 연락 없이 지내고 있었던 한 친구가 생각났어. 바로 너야. 카톡을 넣었지. 바로 답이 왔어.
서로 반가움과 고마움을 전하고 건강하기를 축원하면서 한 권씩 책을 주고받았어.
네가 먼저 박금산의 소설집 <소설의 순간들>을 보내왔어.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생각해 볼 기회를 많이 주는 것 같아 강력 추천한다면서.
나도 그 무렵 큰애가 보내 주었던 정혜신의 적정 심리학 <당신이 옳다>를 큰애를 통해 너에게 택배 주문해 보내줬지.
또 1년이 흘렀어. 2021년 11월.
네가 먼저 연락을 해왔어. 갓 출간된 따끈따끈한 동화책 두 권이 노란 봉투에 담겨 우리 집 우편함에 꽂혀 있었어.
<키다리 감나무>, <별아 할래>
너의 필명 '이림'이 예쁜 겉표지에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어. 단정한 너의 모습처럼.
겉표지를 넘기니 바로 소개되어 있는 너의 이력이 화려했어.
두 일간지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으며 계몽사 아동 문학상을 수상했고 제7차 교육과정 초등 고학년 국어 교과서에 <울타리 속 비밀> 동화가 수록되어 있다고.
45년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오면서 네가 남긴 귀한 발자취들이었어.
중ㆍ고등학교 국어 교사, 문예창작학과 외래 교수를 거치며 다수의 동화집, 동시집, 풍속 시집 등을 출간했다니 너의 재능과 꾸준함, 성실함에 찬사를 보낼 뿐이야.
오래전에도 동화책을 선물 받은 적이 있어. 그동안 쉬지 않고 꾸준히 창작의 길을 걸어왔구나.
며칠 뒤에 또 한 권의 책이 왔어.
<작업> 34호.
네가 속해 있는 문인 동인회 가향 문학회에서 1987년부터 발행해 온 연간지였어.
월회지도 발행하고 있다더구나. <가향>.
아름다운 향기일까? 아님 아름다운 마을일까?
구석구석 알뜰하게 잘 챙겨 보았어. 어디서나 말없이 성실한 네 모습이 여러 장의 사진과 많은 글에 담겨 있었어. 부회장이라는 네 직함에 어울리는 듬직한 활약이더구나. 얼마나 묵묵히 성실하게 그 자리에서 헌신하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어.
<작업>34의 맨 뒤쪽 속장에 실려 있는 화보 한 페이지를 찰칵 내 핸폰에 담았어. 오늘 이 글의 대문 사진으로 쓸려고.
상큼한 동화집 <별아 할래>에서는 귀여운 세 살짜리 어린 아가가 건강하고 탄탄한 대가족 문화 속에서 한 점 티 없이 잘 자라고 있더구나.
이번에는 <키다리 감나무>를 열었어. 실려 있는 여섯 작품을 읽으며 울고 웃었어. 동화를 읽을 때 싱긋 웃거나 재밌다는 생각을 한 적은 많지만 이렇게 눈물 쏟는 일은 참 오랜만이지 싶어.
티르의 안타까운 사연을 읽으면서 돋보기를 벗고 손수건을 대신 눌렀어. 뒤이어 고물 밥솥 고슬이가 무지개 여행단 공식 인정 밥솥이 되는 장면에서는 또 크흐흐 웃었어 .
어떻게 이렇게 참신한 소재와 건강한 주제, 뛰어난 문장력을 다 갖추고 있는지. 삶의 모든 장면들을 깊게 성찰하고 자세히 관찰하는 네 성실한 모습이 읽어졌어.
책을 내고 보면 늘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한다면서 <키다리 감나무> 속 이야기들은 네 생활 속 이야기들이라 어른 독자들이 더 좋아해 줄려나 기대한다던 네 바람이 딱 맞아떨어지네.
가족, 자연, 여행길, 이웃. 네가 경험하고 생각한 모든 것들을 따뜻한 눈으로 섬세하게 깊이 바라보는 네 모습을 그려봤어.
음, 내 친구 이림 동화 작가는 자연과 가정 그리고 이웃 공동체에서의 건강한 삶을 아주 잘 살아내고 있구나.
네 덕에 이번에 열매 맺은 커다란 수확물이 또 하나 있지.
혹시 책 보내 주면 좋아할까?라는 질문과 함께 주소 달라는 네 말에 내가 갖고 있는 과 친구들 전화번호로 카톡방을 열었어. 거기에 친구들이 또 다른 친구들을 불러들여 열세 명의 조촐한 대화방이 만들어졌어.
이름하여 7394방. 73학번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방.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학우들도 꽤 여럿이었어. 졸업 이후 처음 소식 접하는 이름도 있고.
서울, 부산, 울산, 창원, 경기 ᆢ.
여학생 17명, 남학생 13명. 30명 정원이었던 학우들의 이름을 번호 순대로 전부 기억해서 올려주는 글에는 깜짝 놀라기도 했어.
서로 추억을 소환하는 그때 그 시절의 앳된 사진들도 올리면서 재미난 글들과 음악과 책, 근간 소식들이 오고 갔지.
친구들의 감사와 격찬에 네가 답했어.
크게 히트 치는 글도 못 썼으면서 작가라는 말을 듣고 사니 민망할 뿐~
창원 경남권에서 소소하게 글벗들과 글 쓰는 재미를 누리는 정도인데^^
다만 이제 뻔뻔해지기도 해서 언제 또 책을 낼까 싶어 이번엔 좀 많이 나누는 중이랍니다. 이런 방이 생기니 그동안 고팠던 사대 국어교육학과 친구들과 나눌 정이 새삼 기대됩니다.
모자라는 글이지만 사랑으로 읽어주세요.
책을 그냥 받을 수는 없고 사서 보겠다는 친구들의 글에는 이런 답을 보냈어.
요즘은 창작 지원금 제도가 잘 돼 있어서 한 권은 전액 지원금으로 출간했어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사람이라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다른 친구들이 남긴 글들도 반가웠어.
*45년이 흘렀어도 마치 어제 만난 듯 하나도 어색하지 않네.
친구들 이름 하나하나 참 정답다.
*모두들 보고 싶다.
함께했던 그 시절, 우리는 제각기 조금씩 달랐지만 이름처럼 푸른 나무였기보다 서로 다르다고 느낄 정도의 묘목에 가까웠달까? 서로 자신에 몰두할 시기라 그 느낌마저 어렴풋할뿐더러 그 속에서 무엇을 미처 알아채지 못하기도 했지요. ㅇㅇ가 그리 따뜻한 줄 그땐 몰랐고 더욱이 ㅇㅇ가 작가가 될 줄은.
4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제각기 뚜렷이 다른 어떤 나무로서 어떻게 가지를 펼치고 줄기를 키웠는지 기대되누나.
ㅇㅇ, ㅇㅇ, ㅇㅇ를 근년에 봤는데 개성은 변화하기보다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이구나 싶기도 했다.
모두 만나면 얼마나 즐거울까?
새로 탄생한 조촐한 이 방이 오랫동안 시원한 샘물이 되어 때때로 찾아오는 우리들의 목마름을 시원하게 적셔 주길 소망하고 있어.
따뜻하고 섬세한 눈으로 깊이 바라보는 네 단단함으로 앞으로도 나를 울리고 웃게 해 줄 좋은 작품들을 많이 써내길 기대할게.
함께 그리고 따로 걸어온 긴 시간들을 돌아본다.
행복한 시간이었어.
사랑해, 건강하자.
2022년 5월 3일
오랜 친구 서무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