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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pr 20. 2023

재래시장 출입 금지

  골반 장기 탈출

 집 근처에 재래시장이 있다는 것은 큰 선물이다. 교통편이  좋고 규모가 크면 더욱 좋다. 지하철로 두 구역 떨어진 곳에 이수역 남성사계시장이 있다. 지하철 4호선, 7호선 환승역인 데다 주위가 인구 밀집 지역이라 상점도 손님들도 정말 많다. 넉넉하게 펼쳐지는 시장통의 활기찬 모습은 늘 마음 한구석에 살아 있다.

 많은 가족들이 복닥댔던 시절뿐 아니라 삼시 세끼 집밥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도 장보기는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거의 집 근처 대형 마트를 이용하지만 재래시장에도 곧잘 들른다.


 집을 나서기 전 부피가 꽤 되는 비닐봉지 뭉치를 챙겨 든다. 깨끗이 씻어서 말린 비닐봉지들이 가득 들어있다. 장바구니를 챙기고 될 수 있으면 비닐봉지를 적게 받으려 애쓰지만 금세 수북이 모인다. 아파트 재활용 자루에 던져 넣어 버리면 그만인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찢어지거나 오염되어 다시 쓸 수 없을 때까지는 쉬이 버릴 수가 없다.


 시장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노점상 할머니에게 비닐봉지를 꾹꾹 눌러 담은 커다란 봉투를 내밀며 말을 건넨다.  

 "깨끗이 모은 건데 쓰실래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약간 어리둥절해한다. 하지만 내민 봉투를 보고 말귀를 알아들은 순간 거의 뺐다시피 잡아당겨 옆에다 챙긴다. 다행이다.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규모가 큰 상점에서는 받지 않는다. 늘어선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다. 못에 걸려 있는 새 비닐을 툭툭 뜯어 쓰기에도 바쁘다.


 돈으로 환산하면 천 원도 되지 않을 것들을 알뜰살뜰 말려서 가져다주는 손님이나 반갑게 받아 소중하게 사용하는 할머니들은 같은 시절을 살아온 같은 정서의 소유자들이다. 종이 한 장 함부로 버리지 않는 근검절약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이다.

 지난번 비닐 뭉치는 시장으로 가는 지하도에서 수삼을 펼쳐 놓고 팔던 할아버지에게 갔다.


 시장 입구에 들어선다.

 온통 살 것이 많고 사고 싶은 것이 많다.

 싱싱한 생선들이 보이고 먹음직한 미역 다발, 수북수북 쌓인 멸치 더미, 파릇파릇 야채들과 울긋불긋 과일들이 길목마다 가득이다.

 신선한 붉은색을 드러낸 쇠고기, 돼지고기들이 선을 보이는 정육점들도 줄을 서 있다. 동네 골목에 있는 조그만 정육점이나 대형 마트 한구석의 왜소한 정육 코너와는 차원이 다르다.

 선선히 주문하는 대로 손질해 주는 삼계탕용 닭, 바로 옆에 있는 닭가슴살, 샤부샤부도 할 수 있고 손쉽게 양념이 되는 불고기감. 동네 마트보다 훨씬 푸짐하게 담겨 있는 연근과 마, 마트보다 천 원은 더 싼 것 같은 바나나 송이. 국물 맛 내기 딱 좋은 꽃게도 눈에 확 띄는 곳에서 예쁜 색깔을 뽐낸다. 바로 옆에는 맛의 차원이 다를 것 같은 생물 갈치가 자랑스럽게 은빛으로 빛나고 있다.


 샛노란 참외, 빨간 딸기, 초록 시금치 모두 눈길을 거두고 외면했다. 따끈따끈 보들보들 윤기가 흐르는 돼지 족발, 구수한 기름 냄새 풍기는 녹두전, 비닐 랩 아래에서 예쁜 자태를 자랑하는 각종 반찬들도 모두 지나쳤다. 예쁜 꽃모종들은 아이쇼핑만으로도 호강이다.

 그래도 어느덧 배낭과 준비해 간 장바구니 두 개가 가득 찼다. 육류,어류, 과일, 야채ᆢ.


 갈 때는 무임승차권이 있는 전철을 이용한다. 돌아올 때는 묵직한 배낭과 양손에 든 장바구니가 있으니 마을버스를 탄다. 마을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일, 타고 내리는 일, 집까지 가는 일 모두 만만치 않다. 매 순간 조심해야 한다.


 아이들이 알면 기겁을 할 일이다. 나의 일상을 세세히 잘 알지 못하지만 종종 주의를 준다.

 "엄마, 재래시장 가지 마세요."

 "무조건 배달시키세요. 택배 주문도 하고요."

 "무거운 것 들고 다니면 병나요."


 작년 이맘때쯤 일이다. 뒷물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뭔가 혹 같은 것이 두툼하게 만져졌다.

 암?

 동네 산부인과에 들렀다. 의사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방광이 빠져나온 것이라고 했다.

 아들은 케겔 운동을 권했다.

 둘째가 자료를 찾아 보냈다.

ㅡ방광, 자궁, 직장이 느슨해진 질을 통해 빠져나오는 증상으로 '골반 장기 탈출'이라고 한다. 20대 이상 여성 3명 중 한 명꼴로 흔하게 나타난다. 케겔 운동을 많이 하고 변비약이랑 물을 많이 먹고 무거운 것을 들지 말아야 한다.ㅡ


 아이들은 다시 한번 강조한다.

 무거운 것 들고 다니지 마세요, 절대로. 평균 수명이 길어졌으니 몸을 더 잘 아껴야 돼요. 엄마는 발바닥도 안 좋잖아요?


 새벽 배송 앱을 깔아주고 대신 주문도 해주겠다고 한다. 알았다고 말은 했지만 재래시장을 쉬이 포기할 수는 없다.

 혼자 다짐해 본다.

 '자주, 조금씩 사 와야지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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