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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pr 23. 2023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Just Do It

 오랜만의 도심 나들이, 시내 한복판 광화문에서 저녁 식사 약속이 있었다.

 짝삼수, 맑음회. 여고 동창 다섯 명의 모임이다.

 남편의 저녁을 준비해 놓고 집을 나섰다.


 전철역까지 가는 짧은 길에도 연둣빛 여린 잎으로 새 단장한 싱싱한 가로수들이 찰랑이듯 나부끼며 반짝이는 생기로 빛나고 있다. 나무마다 가지마다 잎마다 자기들만의 매력을 뿜으며 부드러운 봄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다. 흥겨운 춤을 추고 있다.

 춤, 춤으로 맺어진 인연. 친구들과의 오래된 인연을 떠올려 본다.


 2002년 8월, 목동 현대 백화점이 문을 열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21년 전 그때, 나는 마흔여덟이었다.

 남편을 좀 많이 좋아했고 무엇이든 함께 하고 싶어 했고 열린 가정을 꿈꾸었던 나는 백화점 문화센터의 부부댄스강좌에 마음이 꽂혔다. 원리원칙주의자, 차갑고 딱딱한 남편에게 말조차 꺼내기 어려웠지만 나름 머리를 굴리고 작전을 짜서 남편과 함께 첫 춤수업에 참석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남편도 마음 한 켠에서는 댄스 강좌를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책꽂이 한구석에는 얇고 오래된 댄스 교본 한 권이 꽂혀 있었다. 다만 기대 파트너로 아내인 내가 아닐 수는 있었겠지만.


 쭈뼛쭈뼛 어설픈 첫 수업이 끝나고 일어난 너무나 재밌는 사건. 아무런 사전 약속도, 아니 30년 가까이 연락도 없었던 여고 동창 세 명이 눈에 들어왔다. 중, 고 6년을 함께했으니 40여 명 되는 수강생들 가운데서도 단박 얼굴들을 알아보았다. 놀라며 웃고 반기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옆에는 어색한 웃음을  남편들이 한 명씩 서 있었다. 뒤이어 다른 한 쌍이 더 합류하여 다섯 쌍의 부부, 열 명의 남녀 혼성팀이 이뤄졌다.

 남편들이 서먹서먹해한 것도 잠시,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호호하하 웃음꽃이 활짝 피는 이야기판, 술자리가 벌어졌다. 비슷하게 성실하고 비슷하게 예의 바른 다섯 쌍은 몸치인 것도 비슷했다. 1시간 남짓의 댄스 강좌는 서막이었고 우리들의 본 놀이터는 2차로 이어진 생맥주집이었다. 노래방도 들렀다.


네가 틀렸다, 내가 맞다, 선생님께 물어보자 ᆢ.

아옹다옹 티격태격, 스텝이 엉키는 뻣뻣한 짝지와 다투었던 억울함을 호소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즉석 인민재판이 이루어졌다. 피고는 거의 항상 체면 차리느라 남 앞에서는 점잔 떨어야 하는 남편들이었다. 좀 많이 억울했을 것도 같다.

 촉촉이 배어났던 땀도 식히고 조금 출출해진 허기도 달랬다. 단골로 정해진 치맥집에 자리 잡으면 주문한 골뱅이 무침이 미처 준비되기도 전에 방금 삶아 꼬들꼬들한 소면부터 재촉했다. 참기름에 버무리고 통깨 살짝 뿌려낸 고소한 소면 접시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뽀얗게 겉면에 안개 서리는 500ml 생맥주 컵. 차가운 손잡이를 잡고 벌컥 들이키는 첫 한 모금은 상쾌한 청량음료였다. 이어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대형 피처 잔도 부지런히 테이블 위를 오갔다. 매번 자정이 가까워서야 아쉽게 자리를 털었지만 우리에게는 또 다음 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집마다 한 차례씩 돌아가며 음식을 차려내고 친구의 친구네 강화도 별장을 빌려 1박2일 합숙 춤 연습을 하기도 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뀌고 일 년 이 년 세월이 흘러갔다. 주민문화센터 등으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꽤 오래 계속한 춤 강좌. 춤보다는 맥주에 훨씬 많은 시간과 의미를 두었다. 낙엽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는다는 사춘기 시절의 학생 때처럼 많이도 웃었다. 전염성이 강한 웃음기에 모두 들떠있는 중년의 청춘들이었다.


 춤을 너무도 못 추는 절대 몸치, 우리 열 명 중 단 한 쌍도 제대로 부부댄스의 묘미를 즐기지 못했다. 룸바, 차차차, 자이브, 지르박, 왈츠까지 다 배운 스텝을 강의실 밖에서는 단 한 곡도 제대로 밟지 못했다. 우리 친구들이 내린 결론은 '남성분들의 리드 실력 결핍'이었다.

 범생이의 탈을 벗고 용기 있게 구로동에 있는 콜라텍까지 두 번이나 단체 진출도 시했지만 뻣뻣한 막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우리들의 댄스 역사는 거의 5년 만에 막을 내렸다. 기량과 열정의 부조화. 춤은 남성의 리드에 맞춰 여성이 추는 데 맛이 있다는데 역부족이었다.


<Shall We Dance?> 영화에 나오는 명대사는 영원한 우리 여자들만의 로망으로 남았다.

ㅡ남성 댄서의 역할은 여성 파트너가 화려한 꽃으로 활짝 피어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담는 액자가 되어주는 것이다.ㅡ^^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금요일 함께 만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는 말금회로 바뀌었다.

 그 시간들은 여전히 소중했다.


 남편 한 분이 중국으로 사업체를 옮기고 또 다른 분이 지방에서 공장을 차리는 등 여건이 변하면서 이제는 여자들 다섯 명만의 점심 모임이 되었다. 명칭도 말금회에서 맑음회로 바뀌었다.

 그나마 예기치 못한 코로나의 기습으로 무한정 모임이 뒤로 미루어지며 유명무실해지는 위기에 처했다.

 '이건 아니다.'라며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로 정한 것이 짝삼수 모임이 되었다. 짝수 달 셋째 수요일의 점심 식사 만남.

 늦깎이 데이케어 센터장이 된 한 친구의 바쁜 일정에 맞추어 이번달부터는 도심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일정을 조절했다. 오늘이 그 첫 모임이다.


 함께해 온 이십여 년의 세월. 아이들은 번갈아 가며 상급 학교로 진학하고 사회 진출을 하고 외국으로 떠나가기도 했다. 남편들은 승진을 하고 사업을 키우고 퇴직도 하며 양가 부모들의 상을 치르고 다섯 집 열두 자녀들의 결혼식을 모두 끝냈다.

 우리는 나이를 먹었다.


 오랜만에 나가 본 광화문 거리의 저녁 풍경은 낯설고 신선했다. 깨끗하고 넓은 길 가로는 꽤 긴 연륜을 자랑하는 기품 있는 가로수들이 양편으로 줄을 섰고 최신식 고층 건물들은 눈부셨다.

 게다가 봄밤이 아닌가?

 다섯 친구들은 얼굴이 좋다고들 추켜 주며 서로의 흰머리와 주름살을 마주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생로병사의 여정 중 뒷부분에 도달해 있는 우리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꼭 이뤄야 할 목표도 아등바등 책임져야 할 의무도 없다. 박경리 선생님이 남긴 말씀처럼 버리고 갈 것만 남았으니 홀가분하다.

 주어진 오늘 하루, 여기까지 온 것에 감사하며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Just Do It.

 친구들과 맺은 결론이다.


 남편의 세끼 집밥을 준비할 수 있고 베란다의 화분들을 가꿀 수 있고 마음 써서 찾아와 주는 아이들을 반가이 맞으며 소박한 집밥을 차려  수 있다.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는 돌백이 손녀를 위해 집안 대청소를 해 놓을 수 있다.

 수영을 다니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다.


 마치 유럽 여행을 떠나온 듯 우아한 식당과 카페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같은 방향의 전철을 함께 탄 친구가 말했다.

 "친구들 덕에 행복했어. 내가 제일 부족한데ᆢ."

 이심전심, 내 마음을 그대로 옮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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