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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May 03. 2023

直視

상처와 위로

 40년 넘게 이어져 온 동창 일곱 명의 매달 모임이 있다. 결혼과 함께 남편의 직장을 따라 서울로 옮겨와 풋내기 새댁 때부터 만나왔다. 같은 중, 고, 대학을 다녔으니 50년 이상 같은 문화 속에서 비슷한 많은 것들을 공유해 온 셈이다.

 남편들의 승진, 아이들의 성장 과정뿐 아니라 말 그대로 그 집의 숟가락 숫자까지 지나온 세월의 역사를 거의 환히 알고 있다.

 각자 자신만의 결대로 다른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왔지만 큰 테두리 안에서 볼 때는 그조차 비슷한 모습들이다. 지금은 모두 부부 둘만의 삶을 살고 있다. 익숙한 친구들의 모습에 내 모습이 많이 들어 있다.


 코로나를 문제 삼지 않으면서부터 다시 모임이 정상을 회복했다. 카톡방도 활성화되었다. 카톡방에 일곱 명들의 많은 일상적인 글들이 오고 갔다.

 어떤 문장에서 내 마음이 걸려 넘어졌다.


 지난달 모임 직후 마음 편하게 소소한 남편들 흉을 보는 글에서 A가 말했다.

 'B와 C 앞에서는 이 말이 사치스럽지만ᆢ'

 바로 뒤이어 D가 글을 올렸다.

 'B와 C 앞에서는 입 다물어야지'


 B와 C로 불린 이름 중 C는 나를 지칭한다. 남편이 식도암으로 투병 중이기 때문이다. B친구는 남편의 거동이 불편하다. 나는 그 표현을 그냥 넘기며 평소와 같이 일상적인 글을 올렸고 B도 자신들의 여행 소식과 사진들을 올리며 서로의 근황들을 알렸다.


 그런데 나는 점점 그 표현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남편의 상태에 따라 내 위치가 그렇게 달라지는 것일까? 그렇게 친구들이 말을 조심해야 할 어려운 대상이 된 것일까? 자신들의 소소한 불평불만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불행에 처해 있는 것일까?


 친구 A는 긴 시간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앞으로도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수시로 거는 나의 힘든 전화를 다정히 들어주었고 정성 어린 음식들도 많이 배달해 주었다.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한두 번도 아니다. D도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정확한 친구다. 두 친구에게서 배우는 지혜가 많다.


 둘 다 나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이런 표현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글에 마음을 다친다.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 남편이 아프다는 이유 하나로.

 내가 너무 예민하고 까칠하게 자존심을 앞세우는 것일까?

 지극히 나 중심적인 좁은 생각으로 옹졸하게 왜곡된 감정에 휘둘리는 것일까?

 Give and Take.

 내가 행하지 못했던 공감과 배려, 너무 쉽게 내보내었던 내 언어들에 대해 반성해 본다.


 이 글을 친구들이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다. 친구들 앞에서 언급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글로써 한 번 정리해 본다.

 상처를 받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는 관계의 양면성을 본다. 내가 단단해져야 이 빛과 그림자를 모두 수용하며 조화를 이룰 것이다.

 상처 입은 내 마음을 보며 아프지만 직시해야 할 내 부족한 모습들을 만난다. 마음을 다잡는다.

빈대 한 마리 때문에 삼 칸 집을 잃고 싶지는 않다.


  남편 스스로의 투병 자세를 믿음으로 지켜볼 것이며 나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좀 더 단단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힘이다. 이 글쓰기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

 섭섭함이 나에게 남겨준 선물이다.


 그동안 친구들 앞에서 투정을 너무 많이 부린 것도 같다.

 나는 아무런 일이 없었던 듯 친구들과의 모임을 계속할 것이고 티 내지 않고 귀한 인연들을 이어갈 것이다. 힘들 때는 전화를 할 것이고 내미는 손을 잡을 것이다.

 내가 받았던 큰 위로와 격려를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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