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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May 12. 2023

손님맞이

   쑥떡

 수영 후 귀갓길에 건너는 조그만 다리 위. 인기척 없이 늘 초록만 깔려 있는 도심 한복판 천변이 오늘은 색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 꽤 비탈진 천변 둑 위에 배낭을 멘 아주머니 한 명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또 한 사람이 있다. 동행인가 보다.

 막 올라오는 봄나물 채취에 몸과 마음이 폭 빠져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봄나물은 쑥인데 저이들은 지금 무엇을 캐고 있을까?


 3년 전 떠나온 함안으로 생각이 날아간다. 2018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2년을 살아 본 남편의 고향, 함안. 부모님들은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텃밭이 딸린 집이 남아 있었다.


 돈나물, 취나물, 밭미나리, 상치, 시금치, 열무, 봄동, 깻잎, 가지, 당근, 토마토, 완두콩, 땅콩, 들깨, 마늘, 양파, 무, 배추, 더덕ᆢ.

 가까이 사는 시누이 부부의 주도하에 백 평 남짓 텃밭 작물들을 많이 거뒀지만 내 평생 가장 많은 쑥을 캐고 다듬고 씻었다.


 날이 밝아오는 새벽이면 무조건 현관을 나셨다. 아침 식사 전까지 큰 배낭 하나 가득 쑥으로 채워 올 수 있었다. 전을 부쳐 먹기도 했지만 떡집 단골이 되었다. 쫄깃쫄깃 쑥절편과 사르르 입에 녹는 쑥인절미. 봄에는 포근포근 부드러운 하얀 팥고물을 입히고 날이 더워지면 쉬이 상하지 않고 고소한 냄새 폴폴 풍기는 노란 콩고물을 썼다. 읍내 아파트 옆집 형님과도 나누고 시골 본가 동네 할머니들에게도 돌렸다. 까마득히 잊었는데 서울 지인에게 택배로 부쳐 주기도 했다고 한다. 냉동실도 채웠다.


 2년 동안 꽤 많은 손님들이 다녀갔다. 1년에 한 번씩 세 아이들 온 가족이 다녀갔다. 2박 3일, 4박 5일. 아들은 혼자서 훌쩍 내려오기도 했다. 

 부모님 산소가 가까이 모셔져 있기에 부산, 마산 사는 시누이네도 종종 들렀고 서울 사는 시동생 부부도 다녀갔다.

 오래전 성당 주일학교 주부교사로 함께 활동했던 교우들, 한동네 살았던 사총사 멤버 세 형님들, 동창들 두 팀, 부산 사셨던 큰오빠 작은오빠 부부들과 조카, 남편 친구들ᆢ.


 손님이 오는 날은 무조건 쑥떡을 맞추었다. 도착하는 시간에 맞게 따끈한 떡을 주문해 두었다가 바로 맛 보이고 떠날 때는 싸 주고.


 가장 정신없이 치렀던 손님은 일꼬스모 글쓰기 모임 회원들이다.

 340 km, 편도로만 네 시간 반이 걸리는 길. 서울에서 온 손님들은 1박 2일, 2박 3일을 묵었지만 이 손님들은 다섯 명 모두 하룻길로 다녀가는 일정이었다. 다들 바쁜 데다 1박 2일 머무는 것이 부담스러운 면도 있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타고 오기로 한 봉고차에 사정이 생겨 서울에서의 출발이 자꾸 지연되것이었다. 정오 경 도착하기로 한 계획이 오후 2시를 넘어 3시, 4시로 늦어졌다.

 얼마나 시장할까? 또 돌아가는 길은 어떻게 될까?


 2019년 4월 13일, 토요일.

 4월의 낮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거의 4시가 다 되어서야 드디어 반가운 상봉이 이루어졌다.

 아파트 입구에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내리는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들고 있던 쑥떡 봉지들을 바로 안겼다. 아직은 조금 온기가 남아 있는 하얀 팥고물 쑥인절미. 길에 선 채 맛나게들 먹었다. 집에 들어갈 틈도 없이 그대로 말이산 고분군으로 향했다


 주택가 허름한 골목을 지나 네댓 개의 나무 계단을 오르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넓은 동산. 위엄 있으면서도 평안한 분위기의 고분들이 넉넉한 곡선을 그리며 여기저기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다. 조금씩 오르내리는 능선들을 따라 펼쳐지는 넓은 초원과 눈길 끄는 야생화, 푸른 하늘과 그 사이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고분들. 조금 전까지 발 담갔던 속세의 부산함이 자취를 감춘다. 기품 있는 사연을 간직한 평안함, 고요한 휴식이 있다. 잠시 침묵하게 하고 잠시 숨을 가다듬게 하는 그윽한 기운. 함안 말이산 고분군의 매력이다.


 거의 매일 산책하는 나의 사랑하는 공간. 여름밤이면 반딧불이도 만난다. 여기저기 어둑한 대나무 숲 사이에서 펼치는 그들만의 群舞. 찬란하다. 아~, 조그맣게 탄성이 터져 나온다. 가만히 어둠 속에 머물며 그들의 앙징스런 비상에 눈길을 빼앗기곤 했다.


 곧게 자란 나무와 곱게 피어 있는 꽃, 기품 있는 고분들에게 눈길 뺏기며 20여  잘 닦여 있는 오솔길을 내려오면 바로 앞에 함안 박물관이 있다.

 아라가야의 도읍지였던 만큼 의미ㄷ있는 유물들이 알차고 품위 있게 잘 전시되어 있다.


 날이 금세 어둑해졌다. 차를 몰아 5분 거리에 있는 시골집에 도착했지만 벌써 어둠이 깔렸다. 텃밭 작물들을 구경하고 채취하는 건 물 건너갔다. 한 바퀴 휘익 눈길만 준 채 읍내 아파트로 돌아왔다. 마음 써서 준비한 시골 밥상, 삼계탕으로 늦은 저녁을 먹었다.

 걸어서 5분 거리인 전원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나름 유명한 곳이다. 안팎으로 조경이 훌륭하다. 큰 룸을 차지하고 이 집의 별미인 팥빙수와 음료들을 즐기며 먼 길 달려온 회포를 풀었다. 어느덧 10시가 지났다.


 출발을 서둘렀지만 서울 도착 시간은 새벽 2시를 넘겼다. 각자의 집 앞까지 일일이 태워다 준 우리 총무님은 들고 온 화분과 봉투뿐 아니라 그날의 기록을 추억으로 만든 동영상까지 커다란 선물을 남겨 주었다.


 제목은 '함안댁 면회가세, 고즈넉한 면회길.'

 첫 화면에는 삼행시를 담았다.


 고진감래라더니

 즈믄 가지 이야기와 정성이 모여

 넉넉한 웃음이 되었습니다


 배경 음악으로는 언젠가의 월드컵공원 나들이에서 내가 불렀던 가곡, '思友'가 깔려 있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ᆢ.

 섬세한 배려가 진하게 와 닿았다.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2분 39초 속에 담겨 있는 함안의 이른 봄과 남편을 포함한 일곱 명의 남녀 어른들. 4년 전의 풋풋한 모습들이 영원한 젊음으로 남았다.

 화분 갈이를 한 번 한 변엽목 크로톤도 무성한 잎을 자랑하며 우리 집 베란다를 꽉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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