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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un 06. 2023

생명 상생 평화 음악회

 솔봉이 마을, EH사회적협동조합.

 편안한 얼굴로 등받이 없는 조그만 의자에 꼿꼿이 앉아 계시는 신부님. 그 옆과 뒤를 종종걸음 치며 열심히 머리를 매만지며 깎고 다듬고 감겨주는 시늉으로 팬터마임 연기를 펼치는 청년. 무대 위에 깔린 배경 음악은 '세빌리아의 이발사'.

 청년은 한 동작 한 동작 진지하게 몰입하는 열연을 펼쳤고 신부님은 시종일관 흐뭇한 미소를 띠고 조용히 앉아 계셨다. 이발사 역은 솔봉이 마을 송우섭 청년, 손님역은 솔봉이 마을 자문사제 김평만 유스티노 신부님이셨다.


 2023년 6월 3일 토요일 오후 6시.

 방배4동 성당에서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치유와 건강 돌봄 센터' 건립기금 마련 음악회가 열렸다.


 솔봉이 마을은 발달장애자 부모들이 자신들의 死後 남겨진 자녀들이 독립하여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EH (Everyone Healthy, Everyone Holy)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생명상생평화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는 공동체 중의 하나이다.

 솔봉이란 부족한 듯하나 순수하고 맑은 사람을 뜻한다.

 솔봉이 마을 공동체의 당면한 목표는 청년으로 성장한 발달장애아들이 소득이 되는 직업을 가지고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문화생활을 즐기고 건강을 지켜갈 수 있도록 '치유와 건강 돌봄 센터'를 마련하는 일이다.


 두 번째로 김영진 청년의 피아노 독주가 있었다. 5층 성가대에 놓여 있던 그랜드 피아노가 4층 성전으로 내려와 있었다. 성전 앞 탁자 위에는 기부금 약정 안내서가 놓여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숨은 노고로 이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찡한 감동이 밀려왔다.


  11명의 하모니카 합주, 황치후 청년의 피아노 독주, 7명의 관현악합주 등이 이어졌다. 솔봉이들 한 명 한 명 곁에는 각자의 부모님들이나 봉사자들이 계속 함께하며 도와주고 있었다. 청중석에 앉아서 그들의 연주나 발표를 바라볼 때는 흐뭇한 마음과 조심스러운 우려가 얼굴과 눈과 입가에 미소로 피어올랐다.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마음들이었다.


 1부가 끝나고 김평만 신부님이 집전하시는 주일 토요특전미사가 봉헌되었다.


 2부 첫 순서는 가족 밴드 '아빠와 아들'의 연주였다. 넥타이까지 갖춘 정장 차림의 장년 한 분이 어깨에 기타를 메고 청중 앞에 섰다. 그 옆에 서 있는 껑충한 키의 청년은 불안정해 보이는 몸짓과 긴장한 표정으로 초조하게 서성거렸다. 당신보다 키가 큰 아들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시종 따뜻하고 편안한 미소를 잃지 않고 연주를 이끌어 갔다. 아버지의 능숙하고 힘찬 기타 반주에 맞추어 아버지와 아들의 목소리가 합쳐졌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피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ᆢ


  소향 <바람의 노래>


 한복을 차려입고 두 손에 조그만 손북을 든 솔봉이겨자씨합창단들의 아리랑, 정선 아리랑 연주도 있었다. 그들 앞에서 힘차게 장구를 치며 정성껏 이끌어 가는 지도자 이경순 님의 열정이 뜨거웠다.


 3부에서는 본당의 성가대 합창과 이번 발표회의 홍보대사를 맡은 바리톤 송기창, 소프라노 유신혜, 바이올린 김수현, 피아노 황재신 초청 음악가들의 연주가 이어졌다.

 뛰어난 기량을 지닌 프로 예술가들의 려한 재능기부로 마지막 순서가 펼쳐졌다.


 본당을 대표하여 사목회장님이 1천만 원 기부금을 전달하는 것으로 음악회가 막을 내렸다. 6시에 시작된 행사가 어느덧 10시를 넘기고 있었다.


 1층 입구에서는 김평만 신부님이 당신의 회갑 기념 선물이라며 참석자 모두에게 고급 포장 선물 가방을 하나씩 나누어 주셨다. 속에는 안동 자활기업 녹색드림식품이 만든 히스타민 제로 명품 된장 '한처음된장' 500g이 들어 있었다.

 이웃 교우들과 함께 시원한 초여름밤 정취 속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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