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가이다.십자가의 길, 사랑, 인내, 겸손. 마음에 뜨겁게 와닿는다. 이 말들을 한 번씩만 더 떠올렸어도 지나간 시간들이 조금은 덜 후회스러울 듯하다.
눈시울이 뜨끈해진다. 떠오르는 많은 사람들, 지나간 많은 시간들 ᆢ.
두 번째로 좋아하는 성가는 바로 앞 페이지에 있다. 18번, 주님을 부르던 날.
주님을 부르던 날
당신은 내게 응답하셨나이다.
당신 오른손으로 구해주시고
나를 위해 시작한 일 마치시리니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37년 전 세례식날, 이 성가가 얼마나 뜨겁게 내 마음속 깊이 다가왔던가?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며 이동익 레미지오 주임 신부님 사제 서품 40주년 기념 축하 주일이다. 2023년 6월 11일.
30명의 복사단, 20여 분 손님 신부님들, 사회 저명인사들, 또 신부님을 사랑하는 다른 본당 신자들 여러 분들이 함께하셨다.
코로나 때부터 한두 명씩 또는 두세 명씩 띄엄띄엄 앉았던 6인용 긴 의자가 오늘은 모두 여섯 명씩으로 꽉꽉 채워졌다. 성전 위층도 신자들로 가득하다.
제대 위에 계시는 다섯 분 신부님이 함께 집전하시는 전례가 시작되었다.
강론 대신 20여 분짜리 동영상 <사제생활 40년을 돌아보며>가 방영되었다.
30년간 가톨릭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가톨릭중앙의료원장, 가톨릭대학교 생명대원장 등을 맡아 일해 오셨다. 10년 전부터 본당 사목을 맡으셔서 5년 임기의 두 번째 본당으로 우리 본당에서 사목 중이시다. 40년 사제 생활의 역사가 짧고 굵게 소개되었다. 풋풋한 청년의 패기가 잘 생긴 노년의 인품으로 익어갔다.
부족한 가운데서도 하느님께서 사랑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사제로 살기 위해 발버둥쳤고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내 주변에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만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앞으로의 40년도 더 하느님을 사랑하고 교우들을 사랑하고이 세상 이웃들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 역시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 여정에 있어서 늘 함께 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저희 모두를 당신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
신부님의 마무리 인사로 동영상이 끝났다. 오래오래 박수가 이어졌다. 아름다운 삶에 대한 감사와 감동이었다.
1956년생이신 신부님은 오는 8월에 있을 은퇴식을 앞두고 착한 목자로 쓰인 40년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에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 지난 4월 21일부터 사흘 동안 본당 모든 교우들이 참여하는 엄청난 규모의 사랑 나눔 바자회 행사를 기획, 주관하셨다. '비움의 방법은 기부'라는 가치관을 솔선수범하여 행동으로 보여 주셨다. 미사 집전시 평생 써 오신 성찬례 황금 성작을 비롯하여 상당량에 달하는 귀한 소장품들을 바자회 기부 물품으로 내놓으셨다.
신자들도 1억이 넘는 기부금과 고급 양주를 비롯해 엄청난 양의 기부 물품들을 내놓았고 평소 인맥이 닿았던 제조업체들로부터도 많은 협찬품들을 기부받았다.
두 달 전부터 준비해 온 많은 교우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높은 참여,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는 신부님의 열정으로 기적 같은 성과를 이루어내었다.
다들 혀를 내둘렀던 2억을 목표로 삼았던 수익금이 3억 2천을 넘어섰다.
많이 기부하고 많이 구매하고 많이 봉사함으로써 예수님 부활의 기쁨을 드러낸 우리 공동체의 무한한 힘을 최대치로 끌어올리신 행사였다.
캄보디아 선교 지원금으로 2억 1천만 원이 한국외방선교회에 전달되었고 나머지도 생명 사랑 나눔의 큰 목적으로 미혼모 돕기, 발달장애자 터전 마련 돕기 등으로 계속 선용되고 있다 .
오늘 사제 서품 40주년 감사 미사는 성공적으로 끝난 사랑 나눔 바자회의 뒤풀이도 겸한 듯한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한 달 내내 김치를 만들어 팔고 시골 된장, 간장을 기증받아 팔고 구매 티켓을 팔고 음식을 준비하고 매대를 설치하고 판매를 담당하느라 온갖 힘과 정성을 다 쏟은 모든 봉사자와 교우들에게 고급진 국수와 맛난 떡이 제공되었다.
신부님의 사제 서품 기념 상본과 타월, 도예 작가 조정숙 율리아 씨가 빚은 성모상 벽걸이가 참석자 모두에게 기념품으로 주어졌다. 가로 20cm 세로 30cm의 창의적인 성모상이었다. 앞에는 꽃도 꽂을 수 있었다. 작품 제목은 <순명을 만나다>.
축하식 마지막에는 시 한 편이 낭독되었다. 사제 서품 축하 시. 40년간 액자에 넣어 고이 보관해 오셨다고 한다. 시를 지어 선물하신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셨다. 40년 전에는 어떤 모습이셨을까? 이제는 어깨가 굽으신 할머니, 김 마르첼리나 수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