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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Nov 09. 2023

꿈길밖에 길이 없어

  "아, 이제 다 보인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나요?"

눈물 뚝뚝 흘리며 묻고 또 묻는 내 막막한 질문에 대한 답이었을까? 그가 꿈에 나타났다.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되는 새벽녘의 꿈. 9월 13일, 떠난 지 두 달 되는 날, 벌초를 위해 함안으로 출발하는 날이었다.


 덕수궁쯤으로 생각되는 궁궐 마당.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그 뜰에 서서 축대 위에 지어진 궁궐을 고개 들어 바라보고 있었다. 궁궐의 오른쪽 낮은 돌기둥 위에 나와는 직각되는 방향으로 그가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양손을 짚고 팔을 쭉 뻗은 채 상체를 약간 앞으로 숙인 자세. 단정한 체크 무늬 모직 잠바와 검고 깨끗한 바지 차림. 시선은 나와는 반대 방향인 그의 왼쪽으로 향하고 있었고 이마 위 머리카락이 청량한 바람에 시원스레 나부끼고 있었다. 그는 멀리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축대 아래 땅 위,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아련한 마음이 되어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내가 있는 반대쪽 허공으로 시선을 향한 채 그가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아, 보인다."

 "아, 이제 다 보인다."

 그의 얼굴도 표정도 보이지 않는데 말소리는 뚜렷했다. 독백처럼 내뱉는 이 두 문장.

 그리고 끝이었다.

 반짝 눈이 떠졌다.


 "아, 보인다."  

 "아, 이제 다 보인다."

 그는 무엇을 그렇게 보기를 원했고 또 본 것일까? 그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고 알고 싶어 했던 것은 무엇일까? 조금은 쓸쓸해 보였지만 고 깨끗했다.

 고요히 홀로 있기를 좋아하고 번잡한 변화를 싫어하는 그의 조용한 성격에 딱 맞는 곳. 힘들어했고 무거워했던 의무와 책임, 불안과 외로움을 훨훨 떨쳐 벗어버린 자유로운 곳. 아버지 하느님은 그에게 딱 어울리는 품격 있고 평온하고 따뜻한 곳으로 그를 불러 올리신 모양이다.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하던 불안과 외로움에서 벗어나 타고난 모습 그대로 너그럽게 수용되고, 있는 모습 그대로 편안히 머물 수 있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나라로 안아 들이신 모양이다.


 유난히도 비가 많고 무더웠던 올여름. 아들네 세 식구는 장례식 다음날 화려한 호랑나비로 아빠를 만났다. 비 내리는 24층 아파트 창문 밖, 방충망 위에 앉아 있는 화려한 호랑나비 한 마리에 며느리와 손녀의 눈길이 끌렸고 아들까지 함께 세 식구가 신기한 마음으로 나비를 지켜보았다고 했다.

 아빠에게 정성을 쏟았던 세 아이들 중 겉으로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않아도 한결같은 애정으로 사소한 것까지 다 챙겨 드리며 따뜻하게 집중해 주었던 아들의 사랑이 남편 마음속 깊숙이 새겨졌던 듯하다.

 "아빠, 더 잘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임종 이틀 전 아들이 아빠에게 한 말이다. 아들의 눈이 축축해졌고 지켜보던 며느리와 나도 눈물을 훔쳤다.


 장례가 끝난 며칠 후 화분들을 손보고 베란다 물청소를 하던 중 우연히 다본 바깥. 창밖에 설치되어 있는 태양열 집열판 아래, 사선으로 걸쳐져 있는 집전판 스테인레스 테두리에 꿀벌 한 마리가 매달려 있었다. 내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이었다. 그날도 여전히 비가 내렸고 불어오는 바람은 집열 아래로도 비를 흩뿌렸다. 꽤 오랜 시간 차가운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꿀벌 한 마리. 여왕벌이 아닌 일벌. 나는 왜 그 벌을 보면서 남편을 떠올렸는지. 

 성실하게 일했고 열심히 아꼈고 차곡차곡 남겨둔 남편. 빗속에서 옹색한 공간에 조용히 매달려 있는 꿀벌 한 마리. 외로워 보였고 착해 보였다.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느낌.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날아와 초연히 이곳에 잠깐 머물고 있는 느낌. 차마 핸드폰을 갖다 댈 수도 없었다. 그렇지, 우리는 이제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다른 형체가 된 존재들이지. 꽤 긴 시간 꿀벌은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머물렀다.

 얼마나 마음이 녹아내리는지, 뜨거운 눈물이 한없이 차올랐다.


 친구 J가 12층 자기네 아파트 방충망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는 검고 커다란 나비 한 마리를 사진으로 보내 주었다.

 많이 기도해 주고 오랜 시간 변치 않는 공감과 지지를 보내 주는 친구다. 남편을 떠올리며 그 나비에게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만규 씨, 이젠 안 아프시죠?"

 글도 보내왔다.

 "무관심하지 않았고 힘든 점도 있었다는 건 그만큼 서로에게 매력적인 존재였다는 증거다. 사랑하는 아내가 슬픔에서 벗어나 안정된 생활 누리기를 지금도 천상에서 기도 중이라는 걸 나는 확신한다. 빨리 평온한 생활 되찾아서 사랑했던 만규 씨에게 응답해라."

 답글을 썼다.

 "슬픔에 함몰되기 십상이다. 상실감이 너무 크다. 내가 남편을 좀 많이 좋아했으니까. 내게는 참 힘든 사람이기도 하고 가장 편안한 사람이기도 했지. 차가운 사람이기도 하고 따뜻한 사람이기도 하고. 빛과 어둠이 너무 짙었다고나 할까?

 이젠 다 흘러간 일들이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 잘 자란 세 아이들의 화목한 가정. 내게 남기고 간 마음 아픈 선물들을 귀하고 고맙게 잘 지켜야지."


 어둠과 빛

                 방혜자


 바위 속에

 별들의 고향이

 숨겨 있음을

 나는 오늘 알았네


 물속에

 구름들의 춤이

 흐르고 있음을


 허공 속에

 무지개 빛 색소가

 가득함을

 나는 오늘 보았네


 어둠 속에도

 영혼의 빛이

 살아 있음을


 밝은 빛 속에도

 어둠의 씨앗이

 숨어 있음을

 나는 오늘 느꼈네


 어둠과 빛이

 모든 생명 속에

 하나임을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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