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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Dec 03. 2023

 Red dancing shoes

  기장갈매기

 2023년 10월 17일 화요일.

 재경 총동창회가 열리는 날이다.

 잠실 롯데월드 호텔 3층 크리스털 볼륨.

 졸업 50주년 기념, 칠순을 맞이한 우리 44회와 팔순을 맞이하신 선배님들 34회가 기념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노래 두 곡을 선정하여 자유롭게 즐기자던 애초의 계획이 연습 도중 조정 보완되었다. 너무 빈약하고 밋밋하니 춤이라도 한 곡 넣어야 한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나훈아의 '기장 갈매기' 라인 댄스를 넣자.

 모두 왕년의 모범생들답게 몸을 사리며 손사래를 친다.

 "못 해, 못 해. 나는 완전 몸치야."


 대표주자 다섯 명이 앞에서 라인 댄스를 담당하고 그날 행사에 참석하는 전원이 백댄서가 되어 보조를 맞추기로 했다. 다섯 명 속에 내가 포함되었다. 조금 황당했지만 거절할 뾰족한 명분이 없었다. 9년 전 환갑기념으로 열여섯 명이 무대에 올랐던 공연에서 춤선이 고왔다며 부추겼다. 20여 년 전 목동현대백화점 문화센터 부부댄스강좌에서 함께 했던 다섯 명 중 세 명이 팀원이 되었다.


 난생처음 듣는 나훈아의 '기장 갈매기' 유튜버 영상을 보며 노래를 익히고 댄스 연습에 들어갔다. 첫 모임은 우리 집에서 가졌다. 동창회관을 이용할 수 없는 날이었다. TV에 유튜브 영상을 연결시키고 나란히 서서 어설픈 동작으로 따라 하느라 웃기 바빴다. 연습보다는 수다를 더 많이 떨었다. 간단한 집밥을 해 먹고 친구들이 사 온 간식들을 나누며 어영부영 첫 연습을 마쳤다.


 동창회관에서 연습이 이어졌지만 공연 날이 임박해지자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설왕설래. 동작들이 제대로 각이 잡히지 않았다.

 이건 아니다.

 총대를 멘 J의 열정으로 지도 선생님을 물색하여 집중 연습에 들어갔다. 3면이 거울인 마루 바닥 연습장. 재색을 겸비한 아름다운 선생님이 우리에게 주문하시는 요구사항 넷.

 1. 정수리를 천정에 줄로 매달아 위로 끌어당기는 듯한 자세를 유지해라.

 2. 가슴을 활짝 펴라. "나, 한 가슴 하거든ᆢ." 하고 뻐겨라.

 3. 무조건 웃어라, 활짝. 집에서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고 입모양을 만들어라.

 4. 고개를 들어라. 공연장에 걸려 있는 천정의 샹들리에를 쳐다본다고 생각하라.

 선생님을 모시고 우리 다섯만 따로 2회, 모두 다 함께 2회의 수업을 받았다.

 어느 정도 충동작이 몸에 익었다. '레전드'라는 명칭이 주어졌다. 전설적인 존재라니, 하하하. 그야말로 자뻑이다.


 춤 스텝을 밟아 본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제대로 된 신발도 없다. 다시 쓸 일 없을 것 같아 없애 버린 지 오래다. 주민센터에서 계속 라인 댄스를 익히고 있다는 친구가 신고 온 신발이 눈에 확 띄었다. 굽이 조금 있는 빨간 운동화.

 저걸 한번 신어 봐?

 가족방에 사진을 올렸다. 첫째가 번개같이 택배 주문을 넣었다. 다음 날 새벽 바로 배달되었다. 신폭 발바닥에 와닿는 감이 참 좋다. 크기도 맞고 색깔도 마음에 쏙 든다.


 청바지로 통일하되 밝은 색 청바지여야 한단다. 총무를 맡고 있는 M이 지금은 못 입는다고 가져온 오래된 청바지가 내 몫이 되었다. 헌신적인 J가 시간과 발품을 팔아 고터몰과 유니클로를 뒤져 다섯 명의 사이즈에 딱 맞는 상의 속옷과 겉옷을 구해 왔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착착 움직이는 결속력에 우리 모두 점점 고무되어 갔다. 백댄서 친구들의 리듬감 있는 동작도 선생님의 안무로 완성되었다. 역시 전문가는 위대하다. 라인댄스 지도 박사학위까지 취득하신 분이라고 했다.

 공연 전날에는 실제 무대에서 리허설도 했다.


 D day.

크리스털 볼륨 720석 의자가 부족해 별실까지 동원되었다. 모두들 65세를 넘은 할머니들 7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점심 식사 후 선배님들의 공연이 먼저 있었다. 우리들은 복도에 나와 입장 준비를 했다. 80세 선배님들이 통일된 무대복 차림으로 정성껏 공연을 끝내고 퇴장함과 동시에 우리가 무대에 올랐다.


 먼저 노래 두 곡을 부르는 동안 의상이 다른 우리 다섯은 눈에 띄지 않게 맨 뒤에 서서 동참했다. 노래가 끝나고 댄스로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하는 시간이 왔다. 우리 다섯이 서야 할 자리는 넓은 청테이프로 따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빠~ 바빳바~

 '기장 갈매기'의 박력감 있는 전주곡이 흐르고 무대 뒤로 넓은 배경 화면이 나타났다. 청바지와 흰 상의는 통일하되 겉에 걸친 남방은 3대 2로 변화를 준 깔끔한 복장에다 선생님이 직접 수고해 주신 무대 화장 위에 짙은 선글라스를 걸치고 우리 다섯이 선두에 나섰다.

 음악에 맞춰 각자의 분위기대로 같은 춤동작을 펼쳤다.


 '신의 한 수'라고 평가된 선생님의 투입. 백댄서 친구들과 같은 의상을 입으신 선생님이 뒷줄 중앙에서 시범 동작으로 큰 동작을 유도해 내니 순간 친구들의 움직임이 물결처럼 출렁이며 무대를 살아있는 공간으로 바꾸었다. 앞에 선 우리 다섯은 프로다운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큰 실수나 긴장 없이 그 무대를 즐겼.

 마지막 장면, 강한 여운을 남기며 길게 빼는 나훈아의 높은 목소리에 맞추어 있는 힘껏 옷자락을 뒤로 젖히며 허공으로 주먹을 뻗었다.


 쏟아지는 박수 소리. 진행을 맡은 선배님이 목청을 높이셨다.

 "오뉴월 하루볕이 다르다 카더니 역시 70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다리가 쭉쭉~~, 보기 좋지요?"

 활짝 웃으며 다 함께 손을 잡고 허리를 깊이 숙이는 것으로 그동안의 모든 시간들이 막을 내렸다. 뿌듯한 감동들로 카톡방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3분 43초짜리 귀한 동영상이 선물로 남았다.


 2023년 10월 17일 화요일.



동쪽에서 바라보면 여섯 개로 보이고

서쪽에서 쳐다보면 다섯 개로 보이는

오륙도 돌고 돌며 나래 치는 내가 바로

내가 바로 기장 갈매기다

사랑 따윈 누가 뭐래도 믿지 않는다

이별 따윈 상관없다 떠나든 말든

어차피 사랑이란 왔다가는 파도처럼

가 버리면 그만인 거야

오늘은 해운대서 사랑을 하고

내일은 영도에서 이별을 하고

또다시 남천동의 밤을 꼬신다

내가 바로 기장 갈매기다

내가 바로 기장 갈매기다


내 청춘은 누가 뭐래도 의리 하나다

빈 주머닌 상관없다 없어도 그만

어차피 인생이란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가버리는 것

오늘은 다대포에서 낙조에 취하고

내일은 송도에서 일출에 잠 깨고

내친김에 광안대교도 접수를 한다

내가 바로 기장 갈매기다

내가 바로 기장 갈매기다

내가 바로 기장 갈매기다~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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