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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Dec 11. 2023

 부부의 緣

  하얀 눈밭

 "고모, 저 Y에요."

친정 큰오빠의 2남 1녀 중 막내아들, 조카 Y의 전화다.

 "응, Y구나. 어디야?"

 "저 지금 한국 와 있어요. 저희랑 제주도 가실래요?"


 50대 후반인 Y는 대학과 군복무를 마치고 바로 해외 생활을 시작했다. 베네수엘라에서의 어려운 선교사업을 헌신의 힘을 다해 성공하고 10여 년 전부터는 미국에서 일하고 있다.


 "앞으로 2,3년 간은 새로운 일로 바빠질 것 같아서 이번에 엄마 아빠 모시고 여행 다녀오려고 잠깐 한국 나왔어요. 고모 생각이 나서 전화드렸어요."


 고모부와의 사별을 위로하기 위한 조카의 초대다.


 "언제 출발해?"

 "내일이요. 내일 새벽 비행기예요. 다른 시간 비행기표가 없네요. 5시 반까지 김포공항에 오셔야 해요. 고모 표도 바로 끊을게요"

 "좋아."

 몇 가지 걸리는 일이 있지만 망설일 필요가 없다. 바로 승낙했다.


 2015년, 70대인 큰올케를 모시고 한 달 동안 우리 둘째네와 조카가 사는 LA를 방문한 적이 있다. 덕분에 조카네 부부와 말리부와 산타모니카를 비롯해 LA 북쪽으로 2박 3일, 샌디에이고가 있는 남쪽으로 1박 2일 자동차 여행을 했던 추억이 있다. 8년 전 일이다.


 이제 89세, 83세가 된 큰오빠 부부와 50대 조카 부부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명의 4박 5일 여행이 시작되었다.

10월 23일부터 27일.

 제주에서의 2박, Y의 누나인 조카딸 H가 사는 김해에서의 2박 일정이다.


 89세 큰오빠도 여섯 살 차이 나는 올케언니도 모두 대단하신 분들이다. 언제 어디서든 꼿꼿하게 자주적으로 걷고 움직이신다. 자식들에게 거동을 맡기거나 의존하지 않으신다.


 두 분이 8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왔던 부산을 떠나 큰아들이 사는 구리로 이사 오신 지 3년이 되어 간다. 새로운 곳으로 옮겨 앉자 큰오빠는 외출이 불가능해져 버렸다. 이름도 어려운 고층 아파트들이 숲을 이루고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빽빽하게 자리잡은 신도시의 낯선 거리와 빌라 입구 현관 비밀번호, 자택 현관 비밀번호를 외우거나 메모해서 혼자 외출하는 일이 버거워져 버린 것이다.

 반면 지혜롭고 영리한 할머니, 올케언니는 모든 일에 진취적이고 유능하시다. 50년 가까이 혼자 힘으로 식당을 운영하여 가정 경제를 담당해 오셨다. 낯설고 물선 곳으로 옮겨 오셔서도 큰며느리가 다니는 동네 작은 교회에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고 노인 일자리를 구해 두세 시간 일을 하고 성경을 읽으며 지하철로 멀리 떨어진 재래시장을 혼자 씩씩하게 잘 다니신다.


 게다가 올해 10월 초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셨다. 아마도 역사상 최고령 합격자이실 것이다. 세 번 도전하여 드디어 성공하셨다고 한다.

 합격증을 받는 순간 바로 배우자인 큰오빠의 보호사로 취업이 되었다. 고령이신 데다 행동의 제약을 받자 오빠는 기억력이 쇠잔해져 주위 상황에 빠르게 대응할 수 없는 치매초기 판정을 받아 약을 복용해 오고 있다. 80대에 배우자의 요양 보호사가 되어 월급까지 받게 되었으니 대단한 일이다. 모두의 축하를 듬뿍 받았다.

 

 하지만 젊은 시절 장남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져 온 데다 중년 이후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남편에 대한 불만과 짜증이 언니의 몸과 마음에 깊이 베어 들어 있다. 말과 표정에 핀잔과 불만이 가득 실린다.

 엄마 아빠를 모두 사랑하는 자녀들은 그런 장면을 볼 때 많이 힘들어한다. 4박 5일간의 여행에서도 그런 순간은 매번 포착되었다. 깊이 관여해서도 안 되지만 방관할 수도 없는 불편함이 있었다.


 드디어 어느 순간 언니가 애지중지하는 막내아들, 부모를 사랑하고 아끼는 조카가 슬쩍 한마디 던졌다.  

 "보호사가 왜 그리 까칠해요?"

 우리는 빙긋 웃었지만 언니는 엄청 섭섭해하시며 분노하셨다.

 "더 이상 우째 더 잘할 끼고?"

 분위기가 싸늘하게 굳어졌다.


 순간 생각했다.

 '내가 언니 오빠 두 분을 감당해야겠구나.'

 이미 늙으신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 있는 조카 부부가 매 순간 부모님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되었으면 싶었다. 노인인 우리 셋은 천천히 움직이며 내가 책임을 지기로 했다. 젊은 부부는 둘만의 귀한 시간과 공간을 자기들끼리 다정스럽게 즐길 수 있도록 마음을 썼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식전 기도 중에 조카가 말했다.

 "고모를 위해 초대한 시간인데 거꾸로 저희들이 고모 덕을 봤습니다. 부모님을 잘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마운 아이들이다. 부모에게 에너지를 덜 뺏길 수 있도록 나이 든 자녀들에게 세심하게 마음 써야 하는 자리에 우리가 서 있는 것 같다.


 제주에서의 숙소는 고급스럽고 쾌적했다. 예술 감각이 풍부한 듯한 주인장은 구석구석 은은한 향기를 남겨 놓았다. 벽면 가득 차지한 하얀 화면과 천정에 설치된 영사기, 추억의 가요와 팝송, 클래식 레코드를 갖춘 턴테이블, 손으로 직접 그리고 쓴 식당과 관광지 소개 노트, 부엌과 거실에 갖춰 놓은 각종 고급 집기들이 그러했다.

 아래층 큰 방은 큰오빠 부부, 위층 큰 은 조카며느리와 나에게 할당되었다. 조카는 2층 거실에 마련되어 있는 간이침대를 쓰겠다고 했다. 나는 극구 사양하였다. 난처해하는 조카를 설득시켜 두 부부가 한 방을 쓰게 하고 나는 거실 창가에 놓인 침대를 선택했다. 이틀 내내 편안한 숙면을 취했다.


 둘째 날 새벽 나를 찾아온 하얀 꿈.

 2층 창문 아래 정원에 새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 있었다. 무릎 정도까지 오는 높이로 하얗게 쌓인 눈.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깨끗하고 소복한 눈이 밝은 햇빛 아래 순결하게 빛나고 있었다.

  2층 창가에서 내려다보이는 조용하고 깨끗한 풍경.

 조금 열린 창으로 날아든 눈이 내가 덮고 잔 이불 한 귀퉁이에도 점점이 얕게 흩뿌려져 있었다.

 생명체의 숨결이라고는 전혀 없는 하얀 눈밭. 그 위를 비추는 눈부신 햇빛. 회색 고급 이불 위에 점점이 흩뿌려져 있는 하얀 눈송이들.


 눈을 떴다.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되는 장면이다. 고요한 듯 적막했고 평화로운 듯 쓸쓸했다. 아무도 없는 눈밭은 이런 느낌이겠지.

 나에게도 뿌려진 눈발의 의미. 잔설처럼 점점이 흩뿌려져 있던 그 눈이 언젠가는 무릎 푹푹 빠지는 막막한 눈 벌판으로 변하겠지.

 이어져 있는 이승과 저승,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옮겨 간다는 영혼, 그러나 분명히 나누어져 있는 현재의 이승과 저승.

 꿈이 전해 주는 이야기에 깊이 귀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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