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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Dec 20. 2023

강화 갑곶성지

본당 설립 25주년 기념 성지 순례

신기한 일이다.

듣는 순간 혼자 되뇌었다.

'어, 이건 뭐지?'  

본당 설립 25주년 기념 전신자 성지순례 행사가 공지되었다.


 시간은 11월 4일 토요일.

 장소는 강화갑곶성지


 갑곶성지는 바로 넉 달 전 남편의 유골을 모신 곳이다. 전국의 하고많은 성지 중에 어떻게 이곳이 선정되었을까? 그것도 위령의 달인 11월에, 위령의 날 이틀 후인  주말에.

 운전을 하지 않는 나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일까?

 이렇게 여섯 번째 봉안당 방문이 은총으로 이루어졌다.


 오전 7시 30분, 대형 관광버스 아홉 대로 나뉘어 400여 명의 교우들이 본당에서 출발했다. 1시간 남짓 지나 도착한 갑곶성지. 본건물에 있는 순교기념성지 성당이 아닌 봉안당 성당에서 미사가 봉헌되었다.

 신부님과 수녀님, 가족들과 친지, 친구, 교우들의 배웅을 받으며 남편의 유골이 마지막 안식처로 향했던 곳이다. 남편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마지막 미사를 드렸던 곳이다. 바로 아래에 남편의 유골이 안장되어 있다.

 미사 봉헌 후 가까운 교인들과 수녀님이 봉안당으로 내려가 남편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


 남편과 함께 국내외 여러 성지들을 순례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시간 이런 장소에서 이제는 혼자되어 그의 죽음을 슬퍼하다니, 생각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으니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같은 삶이다. 그러나 같은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 해도 미욱함을 여전히 반복하는 어리석은 인생이라는 생각으로 무너지는 마음을 추슬렀다.

 여럿 교우들이 남편을 기억하며 인사를 건네왔다. 애써 미소 지으며 담담한 척 응대했지만 돌아서면 바로 눈물이었다.


 아름답게 조성된 오솔길을 따라 14처 기도를 바치고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성지 곳곳에 숨겨놓은 보물찾기 쪽지를 찾고 야외 제단 앞 광장에 모여 오락, 화합의 시간을 가졌다.


 새로 부임해 오신 지 2개월째인 주임신부님께서는 앞자리에서 조용히 행사 진행을 지켜보고 계셨다. 난센스 퀴즈로 한바탕 웃음바다가 벌어진 후 신부님 성함 석 자로 즉석 삼행시 발표가 있었다. 버스 속에서 구역장에게 미리 전해 듣고 언뜻 떠올렸던 글귀가 있었기에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끌어내어 손을 들었다.

"저요~!!"

세 명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내 차례가 되었다.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무선 마이크를 전해 받는 순간 마이크를 들어 올릴 수가 없을 정도로 팔이 떨렸다. 힘이 쏙 빠졌다. 아무리 사백여 명 군중 앞이라지만 이리 담이 작을 수가ᆢ. 몸과 마음이 많이 쇠잔해졌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전제덕 바오로 신부님

 전 신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시는 신부님

 제 일 멋진 우리 신부님

 덕 으로 저희들의 아름다운 아버지가 되어 주십시오


 마이크를 제대로 쓰지 못했으니 내용이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발표를 무사히 끝내었고 부상으로는 만남의 방 커피 쿠폰 만 원짜리 한 장을 받았다. 당당하게 즐기지 못해 아쉬웠지만 도전하길 잘했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했다.


 다음 방문지는 강화 전통 풍물시장이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 9대가 일렬로 풍물시장 주차장에 들어섰다. 풍요로운 가을 수확을 말해주듯 높이 쌓아놓은 야채, 생선, 과일들이 넓은 시장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상인들의 분주한 몸놀림과 그에 쌍을 이루는 높은 목소리, 떼 지어 다니는 손님들의 웅성거림이 전통시장 높은 천장 위로 가득 피어 올랐다. 같이 다니던 D 형님이 강화순무김치 한 통씩을 사 주셨고 E 구역장이 게양념무침을 한 통씩 사서 돌렸다.

생선을 사고 버섯을 샀다.

2층으로 올라가니 여기저기 식당 앞에 술자리가 벌어져 있었다. 낯익은 교우들의 반가운 손짓을 따라 이미 차려진 상에서 회무침과 함께 막걸리도 마시고 부추해물전도 먹었다.

 이윽고 주부들의 양손에 들린 커다란 먹거리 비닐봉지들.


 버스는 다시 서울로 향했다.

 일상으로의 회귀, 봉안당과는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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