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 '읽기는 쉽지만 잊기는 어렵다'는 서평이 확 와닿는 작품이다. 하지만 읽기도 그리 쉽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읽어내지 못하는 책 중의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축약해 말한다면 '죽음을 앞둔 노부부의 마지막 사흘 동안의 기록'이다. 그 사흘 동안 그들이 겪은 일과 기억에 떠올린 일, 만난 사람들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이 475쪽에 이르는 방대한 장편 속에 치밀하게 종횡으로 엮여 있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다양한 소재와 주제, 과거와 현재를 거침없이 넘나들며 독자들의 상상력과 추리력을 자극하는 치밀한 구성, 강한 흡입력을 지닌 독자적인 문체로 작가의 뛰어난 역량을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낸다.
사흘이라는 시간 속에 수십 년의 긴 세월이녹아 있다. 액슬, 가웨인, 위스턴. 이 세 주인공과 그들의 삶에 연관되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 녹녹지 않은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의 역사가 장엄하게 펼쳐진다. 어느 한 부분도 소홀히 건너뛸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사건과 인물들이 작품 전체에 걸쳐 잠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묘사되고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해양 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하여 켄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작품은 작가가 61세인 2015년에 발표되었다. <남아있는 나날>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너무나 방대한 내용이라 줄거리 요약이 정말 어렵다. 따라서 독후감 쓰기도 막막하다. 그렇지만 이 큰 감동을 망각의 강물 속에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워 기록으로 남겨 보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은 지 거의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용을 쓰며 도전해 왔다. 표현이 뛰어난 문장이나 줄거리 요약, 느낌 등을 메모해 놓은 16절지 이면지 용지가 무려 스무여덟 장이나 된다. 2주일이 한도인 함안 도서관의 도서 대출 반납과 연장을 되풀이한 것도 여러 차례. 임의로 설정한 주제도 세 번이나 바뀌었다.
맨 처음에는 '사랑'으로 잡았다. 부부의 사랑, 공동체의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 하느님에 대한 사랑. 그러다 어느 날은 '선과 악의 대조'로 바꾸었다. 일반적인 인간의 양심에 비추어 본 선과 악, 하느님의 절대선에 비추어 본 선과 악. 그러나 다시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정독하며 작품의 마지막 부분, 죽음을 앞두고 두 부부가 원치 않는 이별을 하는 장면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순간, 내가 읽어낸 이 작품의 주제는 또 한 번 바뀌었다. '인간의 연약함, 그리고 그에 대한 연민'으로.
그런데 이 셋은 또 하나로 연결된다.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타인에 대한 사랑보다는 자기에 대한 사랑이 앞서는 인간의 본능. 그로 인해 그 어느 누구도 자기중심적이라는 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에 대한 심판으로 홀로 남겨져 떠돌아야 하는 운명. 이것이 바로 인간의 연약함이며 그 연약함으로 인해 가슴 찢어지는 심판에 노출될 때 자신의 힘으로는 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에 휩싸인다. 울컥하는 연민의 감정이 솟구친다.
그가 훌륭한 기사이든 역량이 뛰어난 전사이든 하느님이 기뻐하실 법을 주장하는 의인이든 단 한 명의 예외도 없다.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그 한계성 때문에 겪어야 하는 형벌이 너무 아프다. 비켜갈 수 없는 그 아픔이 인간 모두를 향한 깊은 연민을 자아낸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간과 장소는 800년 경 고대 잉글랜드이다. 브리튼 족과 색슨 족이 치열하게 서로를 죽고 죽이며 땅을 뺏던 시절이다. 주인공 액슬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브리튼 족의 정의로운 전술가로서 '무고한 자들을 위한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지키기 위해 양 진영을 오가며 신뢰를 쌓는다. 전쟁 중이더라도 무고한 여자와 아이들은 죽이지 않고 보호하자는 법이었다.
당시 영국은 위대한 아서 왕이 대단한 지혜와 정의로 이 땅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결코 자신이 하느님보다 위대하다고 여기지 않고 늘 자신을 이끌어 달라고 기도하는 통치자였다.
아슬아슬하게 이 법이 지켜지고 있었지만 브리튼 족 용사들의 돌발적인 잔혹함으로 일순간 이 법은 깨지고 아서 왕은 커다란 승리를 거둔다. 색슨 족 용사들은 그들의 자식과 친척들의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아내와 딸과 어머니가 강간당하는 걸 지켜보아야 했다. 갓난아기가 피투성이 장난감이 되어 자갈돌 위에서 발에 차여 나뒹굴었다.
아서 왕의 참모 역을 맡은 마법사 멀린은 암용 케리그에게 주문을 걸어 이 암용이 내뿜는 안개로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할 수 없게 만든다. 모든 것이 은폐되고 망각되어 복수의 감정도 파묻힌 채 표면상의 평화가 유지된다.
액슬은 자신이 지키려 애썼던 정의와 평화가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리자 참담한 배신감에 사로잡힌다. 전쟁의 승리에 젖어 환호하는 수많은 기사와 병사 앞에서 한 치의 물러남 없는 준열한 태도로 아서 왕을 꾸짖는다. 전쟁터에서 '무고한 자를 위한 신성한 법'을 어기는 부하를 용납했다고, 결코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다고.
그는 왕의 따뜻한 관용과 자비를 서릿발처럼 차갑게 거부하고 등을 돌려 그곳을 떠난다. 그 자리에서의 그는 정의와 용기의 화신이었다. 그리고 비어트리스라는 여인을 만나 결혼한다.
현재 그 둘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존중하며 헌신하는 노부부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두 노부부. 바로 어제 일도 기억되지 않는, 깊은 안갯속에 빠진 듯한 모호한 정신 상태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뭔가 이건 아니라는 내면의 끝없는 속삭임에 시달린다. 과거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은 마을 사람들 속에서 엄청난 용기로 결단을 내린다. 잊고 지냈던 아들에 대한 어슴푸레한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덮어 둔 진실을 만나야 한다는 최후의 본능적인 욕망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만나야 하는 시간이 왔다. 아들을 찾아 떠나는 위대한 모험을 결정했다.
차가운 현실에서는 이미 노약자로 취급되어 토끼굴이라는 공동체 주거 지역의 추운 변방으로 밀려나 있었다. 나이 들어서 손이 떨린다는 이유로 밤에 촛불 켜는 것도 금지당한 채 컴컴하게 온 밤을 지내도록 소외된 약자의 처지이다. 그러나 익숙하고 정든 삶의 터전인 토끼굴. 그들은 그 조그만 확실성에 안주하지 않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두려운 여정의 첫발을 내딛는다.
첫날은 아내의 제의로 색슨족 마을에 사는, 병을 고치는 여자를 찾아갔다. 아내가 얼마 전부터 남 모르는 통증을 살살 달래려는 듯이 한쪽으로 기우뚱하게 걷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어두운 힘들이 잠잠할 가능성이 큰 정오 무렵에 맞추어 출발을 결행했다. 지팡이를 짚고 등에는 보따리를 진 채 대평원을 지나는 동안 소나기를 만났다. 소나기를 피해 들어간 낡은 대저택에는 젊은 뱃사공과 그를 향해 끝없이 저주를 퍼붓는 남루한 노파가 있었다. 그들의 사연을 들으며 둘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부부가 같은 배를 타고 함께 피안의 섬으로 건너가려면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가장 소중한 기억을 따로따로 뱃사공에게 얘기해서 그로부터 가능, 불가능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노파는 자신이 분명히 남편과 함께 그 배를 탈 수 있었는데 뱃사공이 고의로 방해해서 이렇게 홀로 남게 되었다고 끝없이 그를 원망하며 저주하고 있었다.
뱃사공은 노부부를 향해 말했다.
"이 노파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지만 남편과의 유대가 너무 약했어요. 저 노파에게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 보고 어디 한번 말해 보라고 하세요."
날이 어두워질 무렵 힘들게 도착한 색슨 족 마을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그곳에서 색슨 족 전사 위스턴과 도깨비에게 잡혀갔다가 위스턴에게 구출되어 돌아온 색슨 족 소년 에드윈을 만나 여행길을 동행하게 된다.
둘째 날은 병을 더 잘 본다고 마을 여자로부터 소개받은 조너스 신부를 찾아 험한 산꼭대기에 있는 수도원을 방문한다.
위스턴은 길목 다리를 지키고 있는 브리튼 족 병사, 브레누스 경의 부하와 싸워 그를 죽인다. 산꼭대기 수도원에 도착해 보니 옛날 색슨 족들의 전투성이었던 그곳에서 은밀히 진행되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의 죄악이 대단하다. 친절하고 지혜로운 수도사로 널리 알려진 조너스 신부를 비밀리에 만났다. 죄를 짓고도 오랫동안 벌을 받지 않았을 때의 속죄 행위로 수도사들이 차례대로 마차 위에 설치된 우리 속에 들어가 족쇄에 묶인 채 절벽 끝에서 야생 새들 앞에 맨몸을 드러내는 관례가 행해지고 있었다. 조너스 신부는 토사물과 오줌 냄새가 나는 좁은 방에서 굶주린 새부리에 쪼여 온몸에 입은 상처로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 관례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수도원장은 온몸이 멀쩡했고 조너스 신부를 비롯한 일부 수도사들은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었다.
비어트리스는 조너스 신부로부터 그냥 나이가 들면 생길 수 있는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깊은 밤, 색슨 족 전사 위스턴을 죽이기 위해 브리튼 족 지도자 브레누스가 파견한 병사들이 몰려왔다. 일행은 힘든 전투와 모험 끝에 수도원을 벗어났다. 지니고 있던 물건들은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몸만 빠져나왔다.
셋째 날은 망각의 주요 원흉인 암용을 죽이기 위해 거인의 돌무덤을 지나 케리그의 은신처로 향한다. 암용 케리그가 내뿜는 입김이 이 땅을 온통 안개로 뒤덮고 사람들의 기억을 뺏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육체의 아픔을, 셋째 날은 정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그 여정은 만만치 않았다. 아니 결코 만만할 수 없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만나 인생을 총정리하는 장엄한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건과 사람을 만나 어두웠던 과거를 떠올리고 불안한 미래를 예감한다. 남편 액슬은 반복해서 여러 번 아내에게 묻는다.
"부인, 당신은 이 안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확신하나요? 우리가 알지 못하게 감춰져 있는 편이 더 좋은 것도 있지 않을까요?"
아내 비어트리스의 대답은 한결같다.
"오늘 우리가 각자 마음속으로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들여다보면 기억을 되찾는 길이 우리에게는 어떤 위험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이었더라도 함께 기억할 거예요. 그건 우리에게 소중한 거니까요."
그녀는 자기에게도 던져질 뱃사공의 질문을 걱정하였고 잃어버린 기억을 안타까워했다.
첫날밤 색슨 족 마을에서 만난 색슨 족 전사 위스턴은 액슬을 이렇게 기억했다.
ㅡ 전사는 아니지만 칼을 차고 멋진 종마를 타고 다녔어요. 그 멋진 남자가 출렁이는 망토를 입고 마치 돼지와 소 사이에 있는 사자처럼 우리 마을을 지나가는 것을 수줍게 엿보고 있었어요.ㅡ
액슬이 브리튼 족 고위 전략가로서 약자인 색슨 족 마을을 둘러보며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던 때의 일이다. 그러나 액슬은 위스턴의 그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이튿날 수도원을 찾아가는 길에서 만난 아서 왕의 기사 가웨인. 그는 한 때 색슨 족과의 전투에서 액슬과 생사를 함께한 동료였다. 가웨인은 이 만남에 깜짝 놀랐지만 액슬은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망각과 은폐로 과거 브리튼 족이 저지른 만행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여 평화를 유지하게 하려는 사명을 지닌 아서 왕의 기사 가웨인. 그는 수도사들의 도움을 받아 거인의 돌무덤 앞에 먹이를 가져다 두어 은신처에 가두어 놓은 암용을 지켜 왔다.
다섯 살도 되기 전, 아직 아이였고 힘이 없었을 때 브리튼 족들이 불을 지르고 칼로 베며 상처 입어 죽어가는 어린 여자들을 번갈아 강간하는 것을 지켜보았던 에드윈. 그들에게 끌려가던 엄마, 그 엄마가 늘 그를 부르는 소리, "나를 구하러 오라"는 환청에 시달리는 에드윈. 그는 이제 열두 살이 되었다.
그와 똑같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색슨 족 전사 위스턴. 위스턴은 전사적 기질을 농후하게 지닌 소년 에드윈을 색슨 족의 뛰어난 전사로 키워 볼 계획이다. 그에게는 현재 브리튼 족의 지도자인 브레누스 경의 비열함 때문에 치를 떨며 보장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던 아픈 과거도 있다.
브레누스가 암용의 힘을 이용하여 색슨 족 정복 전쟁을 벌일 거라는 정보가 입수되었기에 그는 암용을 죽여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액슬과 비어트리스, 두 노부부는 서로 간의 행복했던 사랑의 기억을 되찾아 아들이 있는 섬으로 가는 배를 반드시 함께 타야 했기에 암용을 죽여야 했다.
운명의 장소인 암용의 은신처에 함께 도달한 브리튼 족 기사 가웨인, 액슬과 비어트리스, 색슨 족 전사 위스턴과 에드윈.
위스턴은 가웨인과의 결투에서 뛰어난 칼솜씨로 그를 죽이고 이어서 암용 케리그도 죽인다. 그리고 에드윈과 함께 브리튼 족에 대한 철저한 복수를 맹세한다. 이제 망각의 안개는 서서히 걷히고 잔인함의 끝을 경험한 그들이 쓰러진 동료들의 복수를 위해 증오의 칼을 빼들었다. 끝없는 전쟁이 이어질 것이었다.
서로 끔찍이 사랑하는 노부부의 마지막 목표는 둘이 함께 그들의 희망이었으며 사랑이었던 아들이 있는 섬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대단히 강한 사랑의 유대로 엮여 함께 나눈 과거를 기억해 내어 오랫동안 이어져 온 지속적인 사랑을 증명해 보여야 했다.
그 증명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역할을 맡은 뱃사공이 말했다.
"부부는 사랑으로 이어져 있다고 주장하는데도 우리 뱃사공의 눈에는 분노나 증오가 보일 때도 있어요. 아니면 아무것도 없이 황량하기만 한 경우도 있고요.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지 참된 모습이 곧 드러나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지속적인 사랑, 그런 걸 보는 경우는 정말 드물지요."
소설의 맨 마지막 서너 페이지에서 소설 전체를 덮고 있던 안개가 완전히 걷히며 그들 앞에 드러난 진실은 가혹하다.
젊은 시절,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아름다운 아내 비어트리스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여 자신을 떠나갔던, 다시 떠올리기 싫은 참담했던 시간에 대한 액슬의 어두운 기억.
남편이 자기를 혼자 버려둔 채 멀리 떠나 여러 날 밤 혼자 침대를 지켜야 했던 비통한 시간들에 대한 비아트리스의 슬픈 기억.
그 상처들에 대해 서로 또 다른 복수와 정죄를 하며 괴롭히는 것을 지켜보던 사춘기 아들의 고뇌.
그 쓰라린 일을 모두 지켜본 목격자인 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집을 떠났다. 얼마 후 이웃 마을을 휩쓴 전염병으로 아들이 덧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풍문이 전해졌다. 액슬은 함께 아들의 무덤을 찾아가 보고 싶어 하는 아내의 간절한 소망을 묵살했다. 아들의 시신이나마 보고 싶어 하는 모정을 모질게 꺾고 장례식에조차 참석하지 못하게 통제했던 남편 액슬.
해가 뉘엿뉘엿 서편 하늘로 넘어가는 시간, 그들은 아들이 있는 섬으로 갈 수 있는 바닷가에 이르렀다. 모든 기억을 되살려 낸 그가 죽음의 항해를 주관하는 뱃사공과 독대하여 고백한다. ㅡ어리석은 자존심 때문에 전쟁터에서는 용서를 이야기하고 실천하면서 아내를 향해서는 복수를 갈망하는 마음속 작은 방에 용서의 마음을 오랫동안 꽁꽁 가두었다. 옹졸하고 증오에 찬 행동을 했다.ㅡ
진정으로 완벽하게 서로 사랑해 왔다고 믿었고 그래서 둘이 함께 아들이 있는 섬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어 왔지만 허망하게도 이승과 저승으로 따로따로 헤어져 철저히 혼자가 되어야 하는 순간이 왔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깊은 좌절을 맛본다. 참담한 심정으로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내는 이제 이 강을 건너 저 섬으로 갈 것이다. 담요에 단단히 싸여 배의 한 모퉁이에 아기처럼 가만히 눕혀져 있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공주, 당신을 한 번만 더 안을 수 있게 해 줘요."
남편 액슬의 애절하고도 짧은 마지막 포옹.
"잘 가요, 내 하나의 진정한 사랑."
아내를 실은 배가 저 멀리 있는 섬을 향해 미처 떠나기도 전, 그는 망연자실한 허허로운 모습으로 혼자서 휘적휘적 바닷가 물속을 걸어 나간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죽음의 항해를 하기 전까지 내게 주어진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지금 나는 완전한 사랑을 하고 있는가? 그것은 아니었다. 그럼 이 모양 이대로 계속 살아도 될까? 그것도 아니었다. 인간이 이리 연약하고 불완전하고 심지어 사악하기까지 한 존재인가? 아마 그런 모양이다.
죽음의 신이 내리는 심판 앞에서 인간은 철저히 혼자이다. 그것도 알게 모르게 지어온 수많은 죄들을 누더기처럼 더덕더덕 걸쳐 입은 존재로서. 이 암담한 절망과 좌절 앞에서 붙잡아야 할 것이 있다. 끊임없는 자각과 성찰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함께하는 타인들을 섬기고 존중하고 위하는 좁은 길을 걷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를 잊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희미한 안갯속에서 꿈틀거리는 잃어버림과 버려짐의 아픔을 기억하고 떠올려서 이해하고 수용하고 다독이는 만남과 치유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자신과 화해하고 타인과 함께하는 화평의 길, 그것은 '좁은 문'을 선택하는 소수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은총이 아닐까?
2019년 6월
*책을 많이 읽는 친구 중 한 명은 이 독후감을 길잡이 삼아 몇 번 밀쳐 두었던 일본어판 이 소설을 드디어 완독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