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함부로 읽어 재끼는 편이다. 이른바 남독 스타일이다. 일단 한번 펼친 책은 거의 대부분 첫 장부터 끝장까지 다 읽어내지만 다시 한번 읽어 보거나 주제를 생각하며 지나온 부분을 찾아 뒤져 보거나 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마지막 책장을 닫기 바쁘게 또 나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책으로 달려가 버리곤 한다. 그런데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처음으로 돌아와 차근차근 다시 읽어 보지 않으면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많은 암시와 정교하게 얽혀있는 치밀한 인과관계를 발견하는 큰 기쁨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소설 전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긴밀하게 엮여 있다.
그의 첫 작품인 <창백한 언덕 풍경>은 더더욱 그러하다. 무심히 스쳐 지나간 한 문장 한 문장들이 다시 읽어 보면 뒤에 벌어질 사건들을 너무나 짙게 암시하거나 애매하게 의심스러웠던 부분들을 명쾌하게 해명하고 있다. 단 한 문장도 괜히 쓰인 게 아니다, 허투루 쓰인 문장이 거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40페이지에 달하는 긴 장편 소설 속에서 거의 모든 문장이 어떤 상징과 암시를 담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냥 무심히 스쳐 지나가듯 슬쩍 표현된 생각이나 감정, 상황, 사건 등이 뒤이어 일어나는 어떤 사건들과 긴밀한 인과관계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 앞으로 돌아와 다시 읽어 보노라면 '아아, 이건 이런 뜻이구나.' '그래서 그런 일이 생겼구나.' '이 사람이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이런 생각이었구나.' 등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큰 감동의 파문을 일으킨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서술되는 이 소설의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주인공 에츠코는 두 번째 남편인 셰링엄과 사별하고 영국의 부유한 전원주택에서 홀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셰링엄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니키가 런던에서 어머니를 방문한다. 그 이튿날 니키는 아버지가 다른 언니 게이코의 죽음을 화제에 올린다. 언니의 죽음이 결코 어머니의 탓이 아니라고 위로하며 지나치게 게이코에게 냉담했던 아버지 셰링엄이 언니에게 좀 더 잘했어야 했다고 자기 생각을 말한다.
그때부터 에츠코의 먼 옛날 과거 회상이 시작되며 그 시절에 있었던 두 여자의 삶이 까마득한 기억 속에서 교차된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어린 딸 마리코를 데리고 일본 주둔 미국군 프랭크와의 재혼을 고대하는 사치코의 삶. 전남편 지로와 딸 게이코 그리고 재혼한 영국인 남편과 딸 니키, 이들과 함께하는 에츠코의 삶. 이 두 여인이 엮어가는 삶의 외형은 많이 다르지만 그 속에 품고 있는 본질적 갈등은 동일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되는 1945년.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미쯔비시 주식회사가 있다는 이유로 원자 폭탄 투여 대상이 된 나가사키 지역. 수많은 사람과 건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까만 잿더미로 변해버린 곳. 복구 사업이 진행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새로운 내일을 희망하며 새날을 맞이한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난 주인공 에츠코는 순식간에 부모를 잃고 홀로 남겨진다. 부모와 친분이 있었던 오가타 상이 그녀를 보살펴 준다. 그러던 중 오가타 상의 외동아들, 지로와 결혼하여 오가타 상의 며느리가 된다. 결혼 직후 그 당시의 관습을 깨고 분가를 결정한 남편 지로와 함께 새로 지은 좁은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첫 아이를 임신 중이다. 네 동 짜리 아파트 옆에 있는, 물웅덩이로 가득 찬 넓은 황무지 끝에 강이 흐르고 있다. 그 강가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낡은 목조 오두막집이 한 채 있다. 어느날, 버려진 그 집에 사치코와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그녀의 딸 마리코가 이사를 온다. 그 해 여름 한 철, 두 여자는 마리코를 매개로 우정을 나누게 된다.
업무차 미국과 유럽에 주로 머물렀던 사치코의 아버지는 미국에서는 여자가 사업도 할 수 있고 영화배우도 될 수 있다며 사치코에게 영어 공부를 하라고 격려한다. 영문판 <크리스마스 캐럴> 책도 사다 준다. 사치코는 영어를 배워 그 책을 읽고 싶다는 꿈을 가진다. 아주 존경받는 집안의 남자니까 사치코에게 잘 맞는 짝이라고 부모님이 맺어준 남편은 엄격하고 애국심이 투철하며 사려 깊은 것과는 거리가 먼 남자였다. 그는 아내에게 뭔가 배우는 것을 금지했고 아버지가 사다 주신 그 책도 내다 버리게 했다. 사치코는 그런 게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기에 별 항의 없이 남편의 말을 따른다. 전쟁으로 그런 남편을 잃고 어린 딸 마리코와 단 둘이 남게 된 사치코는 바로 생계의 어려움에 부딪친다. 남편의 친척 되는 삼촌집에 신세를 지기도 한다. 삼촌집은 어마어마한 부자인지라 빈 방이 많았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 빈 방에서 그냥 이대로 늙어갈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그 집을 나와 도쿄로 향한다. 그녀의 목적지는 미국이다. 딸에게도 자신에게도 미국이 일본보다는 훨씬 더 살아가기에 적합한 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군과 인연을 맺어 그의 초대를 받아 미국으로 갈 계획을 세우지만 그가 선택한 미군 남자 프랭크는 술주정뱅이에다가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난봉꾼이다. 미국으로 갈 경비를 모으기 위해 사치코가 여러 달 동안 도쿄에서 무릎을 꿇고 바닥을 닦는 호텔 잡역부로 번 돈을 사흘 만에 술집 여자와 노는 데 탕진해 버린다. 다시 나가사키 삼촌집까지 찾아온 프랭크를 믿고 국숫집 주방 도우미까지 해 가며 열심히 모은 돈 또한 그런 식으로 다 써 버리고 프랭크는 자취를 감춘다. 그래도 사치코는 끝까지 프랭크를 찾아내어 미국으로 갈 계획을 세우며 이번에는 마리코를 데리고 고베로 이사를 갈 준비를 한다. 사치코에게는 프랭크가 물에 빠진 사람이 붙잡는 한 가닥 지푸라기였다.
한편 어린 새댁 에츠코는 큰 회사에서 잘 나가는 남편 지로의 뒷바라지에 전념한다. 결혼 후 처음인 시아버지 오가타 상의 방문을 맞아 그에게도 성심성의껏 며느리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권위적이고 사회적 명망이 높은 학교 교장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남편 지로는 언제나 외모를 깔끔하게 유지하며 엄격한 표정을 한 다부진 체격의 키 작은 남자다. 아버지의 고압적인 태도에 겉으로는 항상 "네, 그렇습니다." " 네, 옳은 말씀이십니다."라고 응대하지만 마음속까지 동의하지는 않는다. 아버지의 부탁도 건성으로 대답만 할 뿐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그것을 잊어버리기만을 기다린다. 아내에게는 까칠하게 닫힌 마음으로 차갑고 권위적인 태도를 취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그런 태도를 패배주의자라고 매도한다. 지로의 이런 성격이 훗날 아내와 딸 게이코를 떠나보내게 된다.
결혼한 아들을 그 아내 앞에서 패배주의자라고 호되게 나무라던 아버지는 다른 자리에서는 자기 아들을 성실하고 똑똑한 아이라고 자랑한다. 아들 친구인 젊은이들에게도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며 신사도를 과시하는 아버지 오가타 상. 자신은 젊은이들에게 군대 상관처럼 군림하지 않는다면서 시대의 변화에 잘 적응하는 열린 사람으로 자부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내가 남편과 다른 정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젊은 세대의 변화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개하고 개탄한다. 제자였던 후배 교사가 지난날 자신의 잘못을 지적한 글에 겉으로는 별 문제 삼지 않는 듯 점잔을 떨지만 속으로는 극심한 분노로 파르르 떨며 그의 집까지 찾아가 사과를 받는 일에 집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더욱 황당해한다.
지로를 떠난 에츠코는 딸 게이코를 데리고 일본에 파견되어 있던 영국인 기자와 재혼하여 딸 니키를 낳는다. 영국으로 이사 간 집에서 게이코에게는 가장 전망 좋은 방이 주어졌다. 게이코는 집을 떠나기 전 2,3년 간 굳게 방문을 잠그고 가족의 접근을 거부한다. 하루 종일 혼자만의 방에서 라디오를 듣거나 잡지를 보면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주방에 마련해 놓은 자기 음식 접시를 들고 들어가 다시 문을 잠근다. 스무 살이 넘자 엄마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도시, 멘체스타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을 매어 자살한다. 에츠코는 그 방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줄곧 딸이 목을 매단 채 밀린 집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 여자에게 발견될 때까지 방치되어 있었을 그 모습을 떠올린다.
부츠를 세 켤레나 준비해 온 본래의 계획과는 달리 닷새 만에 서둘러 다시 런던으로 떠나는 니키가 결혼 계획을 묻는 어머니에게 말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남편이나 빽빽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들과 어딘가에 처박혀 옴짝달싹 못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실상은 매 순간 초조하게 한 남자의 전화를 기다리다가 그 전화가 오자마자 급히 엄마 곁을 떠나는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 에츠코가 대답한다.
"물론 너는 네가 선택한 대로 살아야지."
그리고 남자 친구와 동거하고 있는 딸에게 덧붙인다.
"난 너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니키. 넌 네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삶이 무엇일까? 관계 속에서의 '해야 할 일'과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하고 싶은 일'을 병행시킬 수 있는 삶이 아닐까? 속해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자신과 타인의 그러한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성숙한 인격을 갖추었을 때 가능한 삶이다.
이 글 속에서는 그런 삶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고뇌가 세 단계로 포착된다.
사치코와 에츠코가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어른들이 결정한 배우자와의 혼인으로 사회관습의 희생자가 되는 첫 단계.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남편들의 일방적인 봉건적 권위주의에 아내인 여성의 독자적인 삶은 완전히 배제된다. 가부장적인 관습 아래에서 독자성을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아내와 나름대로의 트라우마로 인색하게 마음이 굳어 있는 남편이 빚어내는 부부 사이의 상처. 이 상처는 대물림되어 그들의 2세인 마리코와 게이코, 두 딸이 희생 제물이 된다.
사치코와 에츠코가 사별과 이혼을 경험한 후 보다 나으리라고 생각되는 다른 사회로의 진입을 꿈꾸는 둘째 단계. 사치코는 프랭크를 통한 미국 삶을 꿈꾸고 에츠코는 영국 남편 세링엄을 따라 일본을 떠나 온다.
니키가 부당한 사회 관습을 거부하며 이성과의 동등한 관계 속에서의 자아실현을 꿈꾸는 셋째 단계. 그러나 이러한 삶의 실현 가능성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니키는 미래와 자신에 대한 확신 없이 계속 불안정하게 서성인다.
이 세 단계 모두 여성이 꿈꾸는 유토피아에 도달하지 못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많은 사람들,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결핍들이 아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결핍들이 더 크다. 왜곡된 가치관과 관습으로 이어져 온 가정과 사회, 국가 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온 남성들이 겪는 갈등과 그로 인해 생긴 결핍들이 더 적나라하게 밖으로 드러나고 더 크게 주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 또한 대를 물린 희생자들이다. 사치코와 에츠코, 그 둘도 남편들의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왜곡된 이기주의의 희생자들이다. 남성에게 주어진 기득권 앞에서 힘을 뺏긴 여성에게 주어진 순종이라는 미덕이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아내에 대한, 여성에 대한 배려라고는 없는 폐쇄적인 남편과의 사이에 부부애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전혀 이해받거나 존중받지 못한 채 남편에게 편리한 도구로서만 존재하는 공허한 결혼 생활 속에서 두 여자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한 채 다른 꿈을 품는다. 여자들이 살기에 훨씬 더 나은 곳으로 떠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만 역시 남자에게 의지하는 양상을 벗어나지 못하기에 완전할 수 없다.
작가의 치밀한 구성으로 이 두 여자의 삶은 독립된 이야기인 것처럼 전개되지만 자의적인 해석과 투사가 가능한 '기억'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기에 중간중간 주인공 에츠코는 사치코와 자신을 동일시하곤 한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 '이게 뭐지, 이상한데?'하고 의문을 품었던 부분들이 두 번째 읽을 때는 경탄의 대상이 된다. '아아, 그 말이구나.'
첫째는 끈 이야기이다. 사치코가 프랭크를 찾기 위해 저녁 무렵 시내로 나가면서 에츠코에게 어린 딸 마리코를 부탁한다. 어두워지는 강둑에서 마리코를 발견한 에츠코는 걸어가는 도중 신발에 감긴 헝겊 끈 조각을 풀어내어 손에 들고 있다. 마리코는 그것에 엄청난 두려움을 보이며 에츠코를 피해 도망간다. 그 장면은 다시 한번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 묘사되는데 전후 문맥에 전혀 맞지 않게 생뚱맞다. 마리코를 마지막으로 보는 장면에서다. 사치코가 프랭크만을 믿고 고베로 이사 가기로 최후 결정을 내리고 짐을 싸는 마지막 밤. 또다시 거처를 옮기는 일에 불안해진 마리코는 '프랭크 아저씨는 자기 오줌을 먹고 침대에다 똥을 싸는 돼지'라고 막말을 하며 고베행을 반대하지만 어머니 사치코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짐 싸는 일에만 열중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마리코가 애지중지 기르고 있는 새끼 고양이들을 마리코 품에서 빼앗아 더러운 물에 빠뜨려 죽여 버린다.
이 장면은 전쟁 직후의 도쿄 생활, 돌무더기뿐인 터널이나 버려진 건물 안에서 지내면서 사치코 모녀가 목격해야 했던 끔찍한 일들 중 하나와도 연결된다. 골목길을 뛰어오는 마리코와 그 뒤를 쫓아오는 사치코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골목 끝 운하에서 아주 여윈 젊은 여자가 물속에 잠가서 죽인 아기 시체를 들어 올려 보여준 것이다. 장님처럼 여겨지는 텅 빈 눈을 한 그 여자의 옷소매 끝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2,3일 후 그 여자는 자기 목을 그어 자살한다. 마리코가 대여섯 살 때의 일이다. 그 이후 마리코는 그 여자를 줄곧 기억하고 집착하여 그 여자가 자기를 데리러 왔다고 종종 말하곤 한다.
고양이를 뺏기고 오두막 집을 뛰쳐나간 마리코를 찾아 에츠코가 가까이 다가간 순간 갑자기 똑같은 끈 이야기가 반복 서술된다.
ㅡ"왜 그런 걸 들고 있어요?"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거지? 난 널 해치지 않아."
아이는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다리 끝에 이르러 멈춰 서서는 의심에 찬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ㅡ
그리고 바로 앞 장면에서 프랭크가 싫다고 패악 부리는 마리코에게 에츠코가 말한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 아저씨는 널 무척 아껴 주셔. 그 아저씨가 새아빠가 될지도 몰라. 모든 게 잘될 거야. 내 말 믿어. 어쨌든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든 돌아오면 되잖아. 그래, 약속할게. 가서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곧장 돌아오는 거야. 하지만 그곳이 마음에 드는지 가서 알아보기는 해야지. 분명히 그곳이 마음에 들 거야."
에츠코는 프랭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게다가 두 번이나 미국 갈 경비를 술값으로 탕진해 버린 난봉꾼이라는 걸 사치코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처음 읽을 때는 내 눈을 의심했다. 뭔가 편집이 잘못되었나? 그러나 두 번째 읽으면서 의문이 풀렸다. 에츠코가 어린 게이코를 데리고 셰링엄을 따라 영국으로 갈 때 반대하는 게이코를 아마 그렇게 설득했으리라. 그리고 그것이 결국 게이코가 목을 매어 자살을 하는 끈을 제공한 셈이 되었다는 자각이 에츠코의 마음 깊은 곳에 죄책감으로 깔려 있다고 말해 주는 부분이었다.
218페이지의 이 문장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난해했다.
"그러니까 내 꿈에 나온 소녀는 그네를 타던 아이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런 것 같았지. 하지만 그 애가 타고 있던 것은 그네가 아니었어."
거듭 읽으면서 느낌이 왔다. '아하, 공원에서 그네를 타는 소녀조차 어머니의 무의식 속에서는 목을 매어 자살한 딸로 인식되는 것이구나.' 이것을 작품 해설에서는 딸의 죽음에 응답하고자 하는 어머니의 회상이라고 했다. 어떻게 이렇게 정교한 복선을 매끄럽게 잘 깔아 놓았는지ᆢ.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문예창작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한 작가이기 때문일까? 28세에 발표한 첫 작품인데 사람의 심리가 뛰어나게 잘 묘사되어 있고 그의 문체는 '위대한 정서적 힘'이라고 평가되는 마력이 있다. 책의 앞뒤를 수없이 뒤적여 가며 작품을 다시 한번 음미하고 독후감으로 정리하는 과정이 만만치는 않았다. 하지만 흥미롭고 행복한 작업이었다. 느끼는 만큼 보이는 스펙트럼을 확장시켜 가는 짜릿한 기쁨.
'와아~~, 그걸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2012년 7월, <일본 속 작은 유럽, 나가사키 크루즈>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남편의 해대 동기 부부들이 동창이 경영하는 CLUB HARMONY 호를 타고 3박 4일 간 나가사키와 벳부를 여행했다. 그때 나가사키항 터미널에서 도보로 돌아본 오우라 천주당ㅡ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순교하신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이 파견되어 선교하신 곳ㅡ과 글로버 공원이 있는 언덕, 나가사키 짬뽕 그리고 노면 전차를 타고 찾아간 평화공원에서 본 거대한 탑과 원폭 전시관이 생각난다. 그 자유 여행 경험도 이 책을 읽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작품으로 위니프레드 볼트비 기념상을 수상하며 화려한 출발을 한 가즈오 이시구로는 그 뒤로도 계속 7편의 굵직한 작품들을 발표해 각종 문학상들을 수상했고 2010년 타임스가 선정한 '1945년 이후 영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 50인'에 선정되었으며 2017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화자인 에츠코와 게이코
또 다른 등장인물인 사치코와 마리코
이 두 모녀의 이름을 잘 기억하면 읽는 데 도움이 된답니다.
2019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