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퇴원
의료진을 포함해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동생은 어제 퇴원을 했다.
8월 26일 입원, 28일 수술, 9월 20일 퇴원. 거의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이 긴장과 초조 속에서 흘러갔다.
많은 검사를 통해 구강암으로 밝혀지자 치과에 속해 있는 구강악안면외과 의사 선생님이 주치의가 되었다. 수술 및 치료 매뉴얼과 의료진의 활약은 대단했다. 기저질환으로 당뇨를 앓고 있는 환자는 수많은 검사를 받고 수많은 동의서를 작성했다. 혀 밑에 있는 암을 제거하는 수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아랫니 앞니 네 개를 뽑는다고 할 때, 환자보다 옆에서 듣는 나의 충격이 더 컸다. 생니를 네 개나 뽑는다니ᆢ. 가슴이 철렁했다. 나중에 다시 이빨을 심는 수술을 한다고 했다.
아, 엄청난 그림이었다.
이어지는 설명은 더욱 섬뜩했다. 암을 떼어낸 자리를 메꾸기 위해 팔뚝살을 이식하고 또 그 팔뚝을 메꾸기 위해 허벅지 살을 이식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성형외과와의 협업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나는 숨을 죽였고 정작 환자 본인은 담담하게 이 모든 설명을 받아들였다.
정작 수술을 끝내고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돌아왔을 때 다행히 팔뚝에는 상처가 없었다. 대신 양 쪽 허벅지 두 부분이 길게 붕대와 반창고로 덮여 있었다. 세포 배양 과정을 거쳐 가장 적합한 피부를 택해 이식했다고 한다.
콧줄로 약물과 수분, 영양을 공급하고 코와 입으로는 불가능해진 호흡을 위해 목을 뚫어 둥그런 기구를 붙여 놓았다. 기구가 불편해지자 기구를 떼내니 목구멍의 벌건 생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곳에 바로 호스를 넣어 가래를 뽑아내는 석션을 한다. 나는 미안했지만 매번 간호사의 도움을 받았다. 다행히 친절하게 바로바로 응해 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몸속 상처 부위에서 흘러나오는 체액을 받아내는 조그만 투명 고무 주머니도 다섯 개나 환자복에 여기저기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상처투성이가 되어 병실로 돌아왔을 때의 처참한 모습은 엄청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감정 따위는 미처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행해진 엄청난 작업의 회복 과정에 집중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었다.
마취가 풀리고 엄습해 오는 통증, 입과 목으로 먹기와 숨쉬기를 할 수 없는 상황, 시간 맞춰 온갖 약물이 투여되고 체온과 혈압, 혈당을 측정하고 손가락에는 산소포화도 측정기도 달고 있어야 했다.
말을 할 수 없으니 필담을 나눌 수 있는 도구가 침대 옆에 비치되었고 많이 힘들 때는 언제든지 간호사를 부를 수 있는 비상 버튼까지 머리맡에 놓였다.
폐기능을 점검하기 위해 매일 병실로 휠체어를 가져와 2층 엑스레이실로 태워가는 직원들은 새벽 두 시인데도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고 발걸음이 재빨랐다. 엑스레이실은 간호사실과 마찬가지로 24시간 운영되고 있었다. 외래환자들은 낮시간을, 입원환자들은 밤시간을 이용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하루 종일 불을 환히 밝히고 분주히 움직이는 많은 분들이 노고를 직접 보게 되니 가슴 한편이 찡하게 울려왔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이렇게 성실하게 힘들게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덕에 우리 삶이 평온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 시간이었다.
하루 세 번 처방되는 약은 열 가지도 넘는 종류의 약들이 0.5mg, 1mg 등 분말로 갈아져 각각의 봉지에 따로따로 담겨 나왔다. 그것을 모두 생수에 녹여 콧줄로 주입한다. 목에 뚫어 놓은 구멍으로는 끝없이 가래가 만들어져 환자의 호흡을 힘들게 하니 석션으로 빼내야 하고 기침을 크게 하면 그곳으로 바로 가래가 흘러내렸다가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다시 안으로 쑥 들어가 버리니 나오는 순간 재빨리 티슈로 닦아 내야 한다. 그것이 반복되니 그 주위의 피부가 또 빨갛게 자극을 받아 환자는 따갑고 아프다.
첫 3일, 5일, 일주일 간은 긴박한 상황이었다. 24시간 내내 환자는 고통스러웠고 간병인은 긴장해야 했다. 그러던 것이 점점 치유 회복 과정을 거치며 작은 주머니들을 다 떼내고 콧줄을 빼고 링거액 공급줄을 떼고 마지막에는 뻥 뚫렸던 목구멍도 어느새 돋아난 새 살로 완전히 메꾸어졌다. 코로 호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식용 피부를 도려낸 허벅지 살도 많이 아물어 보행이 자유로워졌다. 간병인 없이 환자 혼자서도 지낼 수 있었다.
콧줄을 떼고 난 직후, 병원에서 제공되는 식사를 보는 순간 또 한 번 뭉클했다. 곱게 으깨어 하나 씹히는 것 없이 동그랗게 만든 찐 감자 두 덩어리가 정성스레 올려져 있는 접시, 하얀 죽이 담긴 밥그릇, 곱게 갈아 만든 고기, 야채, 두부 반찬과 말간 간장이 담긴 공기 그릇. 시간 맞춰 하루 세 번씩 제공되는 정갈한 식사였다.
좋은 시설과 능숙한 솜씨를 발휘하는 전문가가 아니면 누가 어디서 이런 음식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인가?
수술 전 여러 가지 검사 때마다 하는 금식으로 3kg, 수술 후 가장 힘든 시기의 콧줄 공급으로 3kg, 도합 6kg이 줄었지만 식사를 하고 집에서 구입한 영양 음료를 하루에 두 팩씩 먹으면서부터 체중은 더 이상 줄지 않았다.
밖에는 폭염이 이어지고 잠깐만 걸어도 등판이 흠뻑 젖는 날씨였지만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병실에서 집중 치료와 간호를 받으며 천천히 천천히 회복의 길을 걸어온 24일간의 병원 생활. 환자 본인의 의료진에 대한 무한 신뢰와 적극적인 협조 의지도 회복에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한 올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상황에서 회복 속도가 빠른 것 같다는 의사의 사소한 격려 한 마디도 큰 힘이 되었다.
가족 카톡방을 만들어 수시로 안부를 묻고 회복 과정을 보고하고 치유되어 가는 사진을 공유하면서 형제간의 우애가 더 깊어진 듯하다.
바쁜 와중에도 승용차로 단양까지 삼촌의 귀가를 도와준 장조카 H, 군대 생활 중에서도 최선을 다해 아빠를 간호한 조카 M, 제일 어려운 시기에 간병을 맡아 준 조카 E, 퇴원이 하루 늦춰지는 바람에 승용차를 가져와 휴가 하루를 허탕 치며 병원에서 오래 기다려 준 조카 K, 잘 이겨내고 잘 따른 동생.
모두 고맙고 장하다.
남은 치과 외래 진료와 4주 간의 방사선 치료도 끝까지 잘 마무리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
많이 기도해 주시고 같이 걱정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