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23년 동안 한 번 이사, 결혼 후 41년 동안 열세 번 이사. 예순네 살이 된 지금까지 모두 열다섯 곳의 집에서 살아 보았다. 그 열다섯 집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그 집들에 얽힌 추억들을 기록해 보고 싶다.
가장 최근에 살게 된 지금 이 집을 제일 먼저 적어 본다.
경남 함안군 가야읍 함마대로 1514 - 20, 로얄 베스트 602호.
이사한 지 겨우 한 달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집이 내게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세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부모님을 섬기고 형제들을 챙기고 집을 넓히며 열심히 살아온 40년 서울 생활. 그 시간들을 접고 많은 인연으로 엮인 사람들과 일을 내려놓고 세 아이들과도 멀리 떨어져 온 집. 43년, 긴 세월의 직장 생활을 끝내고 많이 힘들어하는 남편과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옮겨 온 집이다. 미리 한 번 둘러보지도 않고 인터넷 상의 거래만으로 전세 계약을 마쳤다. 별 기대는 없었다. 남편의 고향인 함안으로의 귀향을 결심하고 나서 그저 좁고 오래되고 외진 시골집에서 생활하기는 좀 불편할 것 같아 읍내 아파트 하나를 주거지로 선택한다는 정도였다.
2018년 7월 17일. 서울 이삿짐을 출발시키고 푹푹 찌는 더위 속을 6시간 남짓 승용차로 달려 처음으로 이 집에 왔다. 그동안의 이사 준비와 더운 날씨에 지친 데다 눈썰미가 별로인 나는 집을 깨끗이 청소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시누이와 시매부의 환대 속에서 그냥 대충 둘러보고 별생각 없이 그날 밤 하루 묵기로 한 춘곡 본가로 향했다.
이튿날, 제대로 얼굴을 드러내는 여름 더위 속에서 이삿짐이 부려지고 대강의 정리 정돈이 끝났다. 이삿짐센터 직원들도 다 떠나고 드디어 남편과 둘만 남았다. 일곱 명이 북적대던 서울 집과는 완전히 다른 낯선 분위기이지만 익숙한 살림살이들이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간들을 구석구석 살펴보니 조금씩 마음에 와닿고 정이 들기 시작했다. 지은 지 7년 된다는 이 집은 깨끗하고 넓고 시원하고 산뜻했다. 완전 기대 밖의 선물이었다. 그분이 이곳, 이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 같은 느낌. 앞 베란다를 터서 확장 공사를 해 놓은 거실은 충분히 넓고 환했고 두 개의 욕실과 주방의 모든 시설들도 깔끔했다. 안방과 건넌방에 설치되어 있는 붙박이장과 이곳저곳 마련되어 있는 많은 수납공간들은 넉넉하고 편리했다. 묵은 짐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남서향인 거실, 넓고 환한 창문 밖으로는 멀리 여항산을 선두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높낮은 산들이 겹겹이 펼쳐진다. 서너 겹씩 겹쳐져 때로는 숨어들고 때로는 드러나며 아련한 능선들을 그려낸다. 그 아래로 요 근래 들어선 깔끔하고 아담한 낮은 집들이 소담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북동향 부엌 베란다 쪽도 툭 트인 시야가 시원하다. 멀리 삼봉산 아래로 보이는 조그만 마을들이 아늑하다. 마주 트여 있는 창문으로는 쉴 새 없이 시원한 맞바람이 드나든다. 넓게 펼쳐져 있는 초록 벌판으로부터 불어오는 먼지 없는 상쾌한 바람이 도시의 매연을 실은 후덥지근한 바람과는 확연히 다르다. 지상 주차장에 세워 놓고 보름 만에 승용차를 사용하게 된 남편은 차창이나 차체에 먼지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신기해한다. 작은방 하나는 이 여름 불볕더위 열대야에도 선풍기 없이 잠을 잘 수 있다. 밤이 되면 시원하다 못해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산들바람이 열린 창을 넘어 살랑살랑 방바닥으로 스며든다. 여항산을 넘어 불어오는 산바람이 지나가는 바람 길목인가 보다. 신기하다. 110년 만의 폭염, 서울이 서프리카로 불린다는 올해의 이 무더위 속에서 편한 잠을 잘 수 있게 온 몸을 식혀 주는 고마운 바람이다.
집을 나서면 사방으로 길들이 뻗어 있다. 서쪽을 향하면 도움 마을, 못골 동네, 관동마을, 신음 마을 등을 거쳐 춘곡 본가로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좌우에 넓은 논밭이 펼쳐져 있는 긴 둑길들이 여러 갈래다. 함안은 원래 저지대 습지인지라 일본 강점기 때부터 조성되어 온 둑들이 전국에서 가장 많고 총길이도 가장 길다고 한다. 남쪽은 도서관과 군청 등의 관공서와 농협 은행, 병원, 대형 마트와 재래 시장을 포함한 상가 건물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읍내 중심지이다. 그 뒤로는 박물관과 말이산 고분 군집지, 삼기 마을이 있다. 옛날 부모님들의 정취가 느껴지는 소박한 집들과 잘 가꾸어진 정원을 갖춘 번듯한 집들이 있다. 무성히 자란 풀들로 완전히 뒤덮여 버린 폐가들도 적지 않다. 북쪽으로는 논을 메워 조성한 넓은 들판에 큼직하게 지어 놓은 체육관과 수영장, 공설 운동장이 있다. 운동장 대형 잔디 위에 자리 잡은 야외 공연 무대랑 구석구석 발견되는 작은 공연장들, 예술문화회관이 갖추어져 있는 함주공원과 전국에서 가장 넓다는 연꽃 테마 파크가 있고 잘 가꾸어진 충의 공원도 있다.
모두 다 집에서 도보로 20분 내외의 거리에 있다. 매일 저녁, 해 떨어지는 시간에 맞추어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동서남북 발 닿는 대로 한두 시간씩 주변을 돌아보며 산책을 즐겼다. 달맞이 꽃이랑 강아지 풀, 칡넝쿨 등의 초록으로 뒤덮여 길게 뻗어 있는 둑길도 걷고 물이 찰랑찰랑한 논과 시커먼 초록으로 쑥쑥 자라고 있는 콩밭과 고추밭들 사이로 넓게 뚫려 있는 농로도 걷고 지나가는 인기척에 개들이 사납게 짖어대는 동네 마을길도 걸었다. 어디를 가나 인적이 드물고 풍요로운 자연이 반겨 준다.
낮에는 책 한 권 들고 가서 달콤한 팥빙수나 향긋한 커피를 맛보며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한낮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카페가 있고 외식할 곳으로는 갈비탕, 감자탕, 청국장, 오리 불고기, 닭찜 등 프로 주방장 솜씨를 자랑하는 식당들이 다 모여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신도시 같은 느낌이다.
친구들은 시골쥐와 서울쥐 동화 이야기가 생각난다며 가성비 낮은 서울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허울 좋은 서울쥐에 비유했다. 요새는 시골쥐가 때깔도 더 좋다고 말하지만 아무래도 강력한 자외선에 더 많이 노출되다 보니 때깔이 좋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서울에 있는 아들은 텃밭 작업 중에는 보호경을 꼭 끼고 바깥으로 나갈 때는 선글라스를 반드시 착용하라고 신신당부한다. 작업 중에 눈을 다쳐 응급실에 오는 사람들도 많고 강한 자외선은 망막 황반변성의 주요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현관에다 선글라스를 두고 양산과 함께 열심히 챙겨 쓴다.
외국 노동자들이 많이 눈에 띄지만 넓은 자연의 품 속에서 사람끼리 부대끼는 일이 적다 보니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고 그들의 활달한 모습도 아주 자연스럽다. 남녀노소, 외국인, 내국인 할 것 없이 모두 외모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생긴 대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편안한 차림으로 어디를 다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관공서든 시장이든ᆢ. 그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나도 헐렁한 면 원피스 하나로 어디든 누비고 다닌다. 더구나 여기는 완전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이 아닌가? 넉넉한 자연의 품이 이기적인 인간들의 비교 경쟁 욕구들로 인한 교만과 열등감을 다 녹여서 품어 안아 버린 듯하다.
처음 한 동안은 시외버스 터미널만 쳐다봐도 눈물 났다. 아는 얼굴 한 명도 없는 낯선 성당. 미사를 봉헌하고 남편과 둘이 성당 골목길을 나설 때면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도 했다. 밝고 환하게 웃으며 형님, 아우, 호형호제하는 반갑고 정다운 얼굴들로 가득한 방배4동 성당. 착하고 성실한 세 아이들이 살고 있는 서울과 뚝 떨어져 있는 것이 마치 유배를 온 듯도 했다. 얼마 동안 이곳에서 이런 생활을 하게 될지 별다른 계획도 없이 그냥 물 흐르는 대로 살아보자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한가함 속에서 편안한 휴식의 시간들을 선물로 누리고 있다.
깔끔하게 인쇄되어 나오는 서울대교구 주보와는 달리 독자적으로 16절지 복사지 두 장으로 발행하는 함안 성당 주보도 편안하다. 오늘 거기 실린 글 한 편이 촉촉하게 내 마음에 다가온다.
ㅡ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면.
한 번쯤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면 그때 그 용서할 수 없었던 일을 용서할 수 있으리. 자존심만 내세우다 돌아서고 말던 미숙한 첫사랑도 이해할 수 있으리. 모란이 지고 나면 장미가 피듯 삶에는 저마다 제 철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찬물처럼 들이키리. 한 번쯤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면 나로 인해 상처 받은 누군가를 향해 미안하단 말 한마디 건넬 수 있으리. 기쁨 뒤에 슬픔이, 슬픔 뒤에 또 기쁨이 기다리는 순환의 원리를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면 너에게 말해 주리.
인생의 황혼이 되어 이런 후회를 하지 말고 지금 열심히 살았으면 좋으련만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누구나 다 느끼고 삽니다. 지금, 지금이 중요하지요. 조금은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내가 바보 되고 말지.' 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좀 더 덜 어렵게 용서하고 자존심 죽이고 참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살 수 있을 듯합니다. 돈 버는 일에는 그렇게도 영악스럽고 똘똘한데 정작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데는 지독히 어리석은 것이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인생의 길이는 한 치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연장시킬 수 없지만 그 폭과 깊이는 우리 노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늘릴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을 충실히 산다면 우리 삶이 좀 더 풍요롭고 깊어질 텐데ㆍㆍ.
2018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