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는 십 대의 어린 청소년 시절, 하느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가 되어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고 민족의 영웅이 된 다윗. 질투에 사로잡혀 그의 목숨을 노리는 이스라엘 초대 임금 사울 왕. 그의 집요한 추적에 쫓기며 벼랑 끝에 내몰린 고통의 삶을 견디기 십수 년. 드디어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되어 넘치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다윗에게 손님이 찾아온다. 선지자 나탄. 그는 다윗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매우 많은 양과 소를 가진 부자와 딸과 같이 귀히 여기는 작은 암양 한 마리밖에 없는 가난한 이가 한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부자에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자기의 매우 많은 양과 소는 아껴 두고 가난한 이의 한 마리 암양을 잡아 그 손님을 대접하였습니다."
다윗 임금은 불같이 화를 내며 말하였다.
"그런 자는 죽어 마땅하다."
그 순간 나탄이 던진 촌철살인의 한마디.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다윗은 바로 알아듣는다. 그리고 회개의 무릎을 꿇고 주어진 벌을 달게 받는다. 밧 세바와의 사이에서 갓 태어난 어린 아들이 병마의 고통 끝에 죽음을 맞는다. 다윗은 욕정이라는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자기의 수많은 처첩들은 안중에도 없이 충신 우리야의 단 한 명 아내인 밧 세바를 임신시킨 것이다. 그리고는 멀리 떨어진 변방의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적군과의 전투에 임하고 있는 우리야를 고의로 죽게 하고 밧 세바를 데려다 자신의 아내로 삼았다. 그것이 크나큰 죄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던 다윗.
크나큰 수많은 죄를 죄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착각과 교만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 나탄 같은 선지자로 찾아온 손님이 있다.
2021년 2월 19일.
'한국 질병 분류 기호 C541, 식도의 중간 3분의 1의 악성 신생물'이라는 낯선 글자가 적힌 진료 의뢰서 한 장이 갑자기 내 앞에 날아왔다.
구정을 앞둔 2월 8,9일 이틀을 연이어 남편은 친지와 친구를 만나 술을 한잔 했다. 집콕 생활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마련한 자리였다. 그 후 며칠 동안 복통으로 동네 병원을 다녔으나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위내시경을 해 보기로 했다. 동네 병원 검진 센터에 예약을 하고 금식을 하고 진료에 응했다. 위내시경을 실시하면서 의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 진료 의뢰서를 작성해 준 것이다. 남편이 내민 그 종이 조각을 받아 들고 한참 동안 그냥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었고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생각과 함께 가슴 한쪽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연민이 온몸 가득 밀려왔다. 얼마나 두렵고 막막할까? 무섭고 안타까울까? 아쉽고 후회스러울까? 마음이 무너졌다. 너무 슬프다. 감추려 드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시간은 오후 3시.
외래 진료 접수를 위해 집에서 가까운 서울 성모병원으로 향했다. 마음이 급했다. 출발 전, 군의관으로 복무 중인 아들의 카톡방으로 진료 의뢰서를 사진 찍어 보냈다. 딸들이 있는 가족방에도 다시 올렸다. 아들이 바로 소화기 내과 추천 교수님 이름을 보내왔다. 동문 친구들의 자문을 구한 모양이다. 오늘은 금요일, 교수님의 진료는 다음 주 월요일로 예약되었다. 위내시경 사진이 담긴 CD를 영상 입력시켰다.
가족들은 모두 충격적인 비애와 근심의 파도에 함몰되었다. 상심의 격랑이 휘몰아쳤다.
남편은 겉으로는 크게 동요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순간순간 덮쳐오는 온갖 힘든 감정들의 공격을 받고 있을 것이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감정들이 뒤죽박죽 섞여서 마구 회오리를 쳐댈 것이다. 나는 밤이고 낮이고 너무 가슴이 아프다. 남편이 애처롭고 불쌍하고 가련하다. 눈물을 감추려고 노력하지만 거의 불가능이다. 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통회와 간구의 기도를 드린다.
아파트 같은 통로의 위층에 살고 있는 아들은 퇴근 후 마스크를 쓴 채 우리 집에서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으면서 수시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코로나에 노출되면 진료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기니까 각별히 조심하자고 거듭 당부한다.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면밀히 세우고 노트북으로 온갖 자료들을 보여 주며 아빠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 뒤에는 모습이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항상 따뜻하고 명민한 며늘아기가 함께하고 있다. 깜짝 놀라 가슴 아파하며 노심초사하는 아들에게 그런 배우자가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다.
월요일 아침, 이틀 동안 온갖 자료를 모으고 검토하여 내린 결론을 아들이 알려왔다.
"엄마, 아산병원으로 정해야겠어요. 오늘은 일단 교수님 의견만 듣고 오세요."
서울성모병원 소화기 내과 교수님은 CD로 접수시켜 놓은 위내시경 사진을 보여 주시며 딱 잘라 말씀하신다.
"이 사진을 보고 암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건 더 이상한 겁니다."
마음 저편으로부터 밀려오는 검은 구름 속에서 막연히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강렬한 소망으로 힘들여 붙잡고 있던 가느다란 희망의 실낱이 한순간에 툭 끊겨 나갔다.
허탈한 심정으로 서로 입을 다문 채 병원문을 나섰다. 바깥 풍경들은 여전했고 나무들은 이제 막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금 걷다가 집으로 가기로 했다. 손을 꼭 잡고 걸었다. 70을 전후한 지금 이 시간, 이렇게 걷고 있는 이 길. 어리석은 일상의 반복되는 부딪침 속에 저 깊은 곳으로 파묻혀 버린 20대 때의 그 아련했던 풋사랑의 느낌이 기억 속에 뚜렷이 떠오른다. 이 따뜻한 추억들도 나에게 과분하게 주어진 감사한 선물 중의 하나이리라.
아파트 뒷동산의 할아버지 쉼터 벤치에 앉았다. 남편이 셀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배경을 정하고 둘이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얼굴 가득 순순한 표정을 담고 남편이 말했다.
"새 출발하는 첫날의 기념사진이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는 남편 앞으로 다가갔다. 남편의 머리를 껴안고 또 한참을 울었다. 너무 애처롭고 마음 아팠다.
"무조건 당신 편이 되어 무조건 최선을 다할게요. 우리 같이 한마음으로 두 손 꼭 잡고 건강하게 회복하여 새 출발해요. 엄청 힘들 텐데 어쨌든 견뎌내야 해요. 많이많이 도울게요."
집으로 왔다. 현관을 들어서니 밝고 아늑하고 환한 우리 둘의 공간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펼쳐진다.
"시험에 떨어지고 집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야. 시험에 떨어져 본 적은 없지만 SK에서 잘렸던 그때 같아."
2002년 2월, 20여 년 청춘의 긴 세월 동안 온갖 열정 다 바쳐 열심히 일하고 그룹 최연소 전무로 승진한 바로 그다음 해, 남편은 52세로 직장 해고 선고를 받았다. 막내인 아들이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다. 퇴근길에 나를 불러내어 동네 베이커리에서 그 사실을 밝혔다. 그때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암에 걸렸다는 소식이 아닌 게 다행이네요. 괜찮아요."
섬세한 남편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캄캄했던 충격을 하나의 깊은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다. 그 뒤로 바로 취업이 되어 20년 가까이 수입이 더 많은 다른 직장에서 최고 경영자 자리까지 올라가며 열심히 일해 왔음에도 불구하고ᆢ.
우리가 없는 동안 청소기도 돌렸다면서 아들이 아빠 책상 위에 두라고 책상 야자 작은 화분을 하나 들고 내려왔다. 마스크를 쓰고 애써 웃는 표정이지만 안경 뒤의 눈이 빨갛다. 그 모습도 아프다. 별로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자기 일에 성실히 임하는 편인 아들로서는 최고의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고 있는 시간들이다. 들고 온 태블릿으로 온갖 관련 자료와 영상들을 보여주며 깊고 따뜻하게 아빠를 감싸 안는다.
아빠와 나누던 대화를 끝낼 무렵 아들이 말했다.
"엄마, 우리 집 베란다 화분들 좀 봐주세요."
"이 밤에? 담에 낮에 내가 한번 가 볼게."
아들이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한다. 나도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나섰다. 아들 집 현관을 들어서니 거실에서 며늘아기가 반갑게 맞이한다.
"엄마하고 얘기 좀 할게."
단 둘이 아들방에 앉아 아들은 깊은 속내를 드러내 보이며 눈시울을 적신다.
"엄마, 저는 암 선고를 받고 겪는 5단계 중 세 단계는 이미 넘어 버렸어요. 앞으로 겪을 어려운 과정에서 우울과 좌절의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많이 만날 거예요. 아빠가 제일 많이 힘드실 거고요. 봉우리가 높으면 골이 깊으니 너무 쉽게 희망을 가지지 말고 너무 빨리 좌절하지도 않으면서 흔들림 없이 이 길을 가야 해요. 저는 아빠랑 무조건 같이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거예요. 아빠가 좋아하시는 게 없어서 해 드릴 게 너무 없네요. 아빠한테 받은 게 너무 많은데ᆢ.
그래도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어찌 보면 다행인 면도 있어요."
이 급작스럽고도 황당하고 낯설게 찾아온 손님 앞에서 나와 내 남편의 결혼생활 43년을 뒤돌아 보았다. 정말 많이 부딪쳤고 많이 힘들어했던 시간들이다. 남편은 그것을 삶의 가시들에 찔린 것이라고 했다. 이제 그 모든 연약했던 과거는 내려놓고 새 출발을 해야 한다. 오로지 사랑의 힘으로 버텨갈 현재와 미래를 위해 부정보다는 긍정을, 판단보다는 수용을, 인색보다는 나눔을 지향하는 삶으로 그 방향을 재조정해야 하는 귀하고도 중요한 시간이다.
남편의 말처럼 새로운 출발의 첫날을 맞이한 것이다.
2021년 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