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첫 주일 오전 10시 30분, 함안 성당에서 교중 미사를 봉헌하였다. 오늘 신부님 강론 말씀의 소재는 '정치는 虛業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유명한 정치인이 남긴 마지막 말이다.
결코 정치는 허망한 일이 아니며 국가를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한 일인데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허업이 되고 말았다. 우리의 삶도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측은한 삶, 허망한 삶을 면할 수 없다.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항상 하느님께 묻고 하느님께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마음을 간직할 때 희망과 생명의 삶을 살 수 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지만 지상에 살면서도 조그마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섬김과 낮춤으로 천사의 삶을 사는 지혜를 청하자.
미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성당 마당 분위기가 무척 활기차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봉사자들이 뜨거운 커피와 차가운 메밀차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늘막 아래 줄지어 있는 테이블 위에는 말랑말랑한 콩고물 인절미 접시가 놓여 있다. 며칠 전 아버님상을 치렀다는 교우 댁에서 준비하셨다고 한다.
더위를 먹어서 점심은 안 먹겠다는 신부님의 폭탄선언^^. 표정도 그에 걸맞게 진지하시다. 나와 동갑인 양띠이시다. 곁에 서 있던 모든 교우들이 건강한 웃음을 터뜨린다. 신부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사무실 옆 넓은 강당에서는 매 주일 65세 이상 노인분들에게 점심 식사가 제공된다. 구경삼아 들어가 보았더니 맛나 보이는 비빔밥을 들고 계시던 할머니들이 어서 오라고, 여기 앉으라고 생판 낯선 우리를 반갑게 맞아들이신다. 쭈뼛쭈뼛해하는 우리에게 밥을 대신 가져다주겠다고 몸까지 일으키신다. 황급히 다음에 먹겠다고 사양하고 밖으로 나왔다. 주방 안에서는 바삐 움직이는 봉사자들의 열기가 후끈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절미 떡도 먹었겠다, 시원한 카페에 들러 남편은 아메리카노 나는 카마모일 국화차를 마셨다. 큰시누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벽에 들른 춘곡에서 밭일을 끝내고 마산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우리 집에 야채를 전하겠다고 한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준비했다. 아침에 해 놓은 맛있는 동부콩 밥 위에 텃밭에서 수확한 가지랑 노각나물을 올린 비빔밥을 넷이서 맛있게 잘 먹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네 시다. 부지런한 시누이는 식탁에서 일어나자마자 설거지를 시작한다. 그릇들을 반짝반짝 정갈하게 씻어놓고 마산으로 돌아갔다.
뜨거운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 무렵, 저녁 산책을 나섰다. 읍내를 중심으로 이곳저곳 펼쳐진 시골길을 걸어볼 생각이었다. 확성기를 통한 여자의 창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박물관 쪽이었다. 그리로 발길을 돌렸다.
<함안 여름 여행, 아라가야 달빛 마중>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가족 단위로 보이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인가 물어보았더니 담당 공무원이라는 예쁜 여자분이 마침 잘 됐다며 우리를 어느 한 팀으로 인도해 준다. 50분 정도 소요되는 밤길 고분 탐사에 동참하라고 적극 권유했다. 나이별로 10명 정도씩 네 팀으로 나누어 문화해설사 한 사람씩의 인도로 50분 고분 탐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아무 사전 지식 없이 인도해 주는 팀의 맨 뒤에 섰다.
박물관 건물의 왼쪽으로 잘 닦아 놓은 언덕길이 있었다. 아침부터 이어지는 일정에 함께해 온 참가자들은 각자 체험 시간에 만든 청사초롱을 하나씩 불 밝혀 들고 있었다. 각 팀을 이끄는 문화해설사를 따라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그 길을 걸었다. 길가에는 건전지로 작동하는 조그마한 촛불들이 쭉 깔려 있었다. 이 행사를 기획한 함안 군청 관광과의 정성과 노고가 엿보였다.
말이산 8호 고분부터 시작하여 7호, 6호, 5호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사적 515호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 탐사가 시작되었다. 5~6세기 함안 지역 최고 지배자 집단인 아라가야 지배층의 군집 묘역으로 113기의 큰 무덤들이 줄지어 조성되어 있다는 곳이다. 가장 크다고 알려진 4호분의 경우 봉분의 크기가 높이 10m 둘레 40m에 달한다. 일제 강점기인 1917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 위원들의 발굴 조사로 일본에게 많이 도굴당한 이후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 1990년 정밀조사가 이루어지기 이전까지는 농민들이 이곳을 밭으로 개간하여 보리농사를 지었고 겨울에는 높은 봉분이 동네 아이들의 눈썰매 놀이터였다고 한다.
1992년 해동 아파트 건설 공사 현장에서 말 갑옷이 출토되면서 다시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도 엄청난 유적들을 땅 속에 간직하고 있는 광대한 규모의 소중한 지역이라고 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시도 중이다.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점잖고 편안하게 숨 쉬고 있는 커다란 봉분들을 따라 능선을 걸으니 발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가야읍의 수많은 불빛들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긴 낮을 버티다가 서산으로 넘어간 뜨거운 여름 해의 잔영은 어둑해지는 밤하늘에 장엄한 빛의 유화를 그려 내었다. 멋진 시간과 멋진 공간. 우연히 경험한 거대한 규모의 고분 유적 탐사였다.
완전 다른 분위기에서 만났던 로마 여행이 떠올랐다. 밝은 낮의 찬란한 햇빛 속에서 넓은 평원의 눈 닿는 모든 곳에 드러나 있던 방대한 양의 돌 유적들. 달빛 속에서 상상으로 만나는, 이곳 말이산 고분군의 봉분 아래 조용히 잠들어 있는 수많은 유적들. 로마의 돌 유적과 말이산 고분군이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 할머니와 이제 막 꽃피려 하는 어린 처녀로 비교되어 와닿았다. 이런 위대한 유산이 바로 내가 살게 된 곳의 지척에 있다니.
시간을 초월한 인류의 공통된 정신이 무덤 속의 사연들과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나의 삶에 함께 녹아 흐르고 있다.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망각하기 일쑤인 삶의 유한성, 진실했지만 순간에 불과한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들, 일구어내느라 최선을 다했지만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삶의 흔적들.
내려오니 꽤 어두워져 주변이 컴컴했다. 차일 밑에 쭈욱 깔린 테이블에 수박화채가 준비되어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먹어 보는 여름밤 수박화채. 시원하고 맛있었다. 휴일인 일요일의 행사인데도 끝까지 친절하게 최선을 다하는 함안군 관광과 직원들의 노고로 큰 문화 체험을 선물 받았다. 아름다운 함안.
주보에 실린 이 한 편의 글도 아름답다.
사라지기에 아름답습니다
ㅡ쓸쓸해지기 위해 떠나는 길이 있습니다. 여름이 끝나는 바다에 서는 일이 그러합니다. 기쁨이 사람의 즐거운 감정이라면 쓸쓸함도 사람의 소중한 감정입니다. 뜨거웠던 열정 뒤에 오는 허전함 같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게 하는 쓸쓸함을 나는 좋아합니다. 그런 쓸쓸함 속에 사랑을 사랑답게 만드는 빛나는 눈물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떠나가도 갈매기들이 돌아오는 여름의 끝에 조용히 서 봅니다. 하늘 아래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집니다. 처음부터 모래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바위가 깨어져 자갈이 되고 자갈이 깨어져 모래가 됩니다. 또 어느 날에는 모래들도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바닷속에서 참으로 많은 것들이 태어나고 사라집니다. 사람도 사라지는 이름입니다. 나도 사라지고 그대도 사라집니다. 꽃도 사라지고 나무도 사라집니다. 사라지는 것은 쓸쓸한 일이지만 사라지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람도 사라지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람이 영원히 산다면 세상은 벌써 지옥으로 변해 버렸을 것입니다. 사람이 영원히 살지 않는 아름다운 존재이기에 사랑도 아름다운 일이며 쓸쓸함도 소중한 감정입니다. 눈물도 그리움도 참으로 소중한 사람의 일입니다. 여름의 끝, '꽃지'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서쪽 바다에 서 봅니다. 동쪽 바다에서 떠오른 해는 서쪽 바다에서 사라집니다. 그대, 사라진다고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요. 해는 내일 다시 또 떠오를 것이며 내 쓸쓸한 눈물 끝에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2018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