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무아 Jul 29. 2021

 하우스 콘서트

 7월 25일 수요일.

함안에 이삿짐을 푼 지 꼭 일주일째 되는 날이다. 오전 10시, 수요일 평일 미사를 봉헌했다. 성전 좌석의 3분의 2 정도가 채워졌다. 소박하고 따뜻한 미사였다.


 오늘은 함안장이 열리는 날이다. 장터로 향했다. 백 개도 넘을 듯싶은 임시 가설 점포들이 두 도로를 끼고 넉 줄로 주욱 늘어서 있다. 과일, 생선, 야채, 옷, 그릇 등 온갖 생필품들이 펼쳐져 있다. 이 골목 저 골목 발 닿는 대로 둘러보았다. 생선 가게 규모가 대단하고 가격도 엄청 싸다. 서울에서는 한 마리 3,000원 정도 했던 크고 싱싱한 고등어가 네 마리 한 소쿠리에 5천 원이라고 한다. 야채들은 말할 것도 없다. 장터를 주욱 지나 버스 터미널까지 가 보았다. 서울 남부 터미널까지 가는 시외버스는 하루에 네 번 운행된다. 가격은 편도 2만 8천 원. 소요 시간은 4시간 30분. 인터넷으로 이틀 전까지 예매하면 10% 할인. 서울과 일일생활권으로 연결된다.


 터미널 바로 옆에는 초대형 마트가 있다. 없는 게 없다. 외국인 노동자 고객들이 많다. 올리브 오일과 우유, 닭 한 마리와 몇 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계산대로 향했다. 한 손님이 1.8리터짜리 생수 6병 한 팩을 계산한다. 그런데 가격이 1900원이다. 깜짝 놀랐다. 한 병이 아니라 한 팩인데 웬 조화 속인지 신기하다.


 사 온 물건들은 식탁 위에 던져둔 채 집 앞 카페로 향했다. 땀을 식히며 책을 보다가 옛날 기찻길이었다는 5분 거리 오솔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마지막 수요일. 서울은 문화의 날인데 이곳에서도 함안 예술 문화관에서 공연이 계획되어 있었다.


 저녁 7시 30분.


 문화가 있는 날.


 작은 음악회 하우스 콘서트


 피아노 박창수


 입장료 1,000원


 예술문화회관에 붙어 있던 포스트를 눈여겨보아 두었기에 서둘러 저녁을 먹고 20여 분 걸리는 길을 걸어 공연장으로 향했다.


 첫 길이라 시간에 쫓겼다. 급한 마음으로 공연장엘 들어서니 객석이 텅 비어 있다. 깜짝 놀라 둘러보니 연단 위 마루 바닥에 피아노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30여 명 되어 보인다. 우리도 회관에서 제공하는 큼직한 비닐 가죽 방석을 하나씩 받아 들고 연단 위에 가 앉았다.


  피아니스트 박창수 씨가 나와서 자신의 소개를 했다.


 본인은 즉흥 음악을 연주하며 매월 마지막 수요일, 이곳에서 열리는 하우스 콘서트에 훌륭한 연주자들을 나름 엄선해서 보내고 있는데 오늘은 본인이 직접 출연하는 날이다. 본인의 지명도가 높지 않은데 이렇게 많이 모여 주셔서 깜짝 놀랐다. 감사하다.


 겸손한 인사였다. 낮에 승용차를 타고 서울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좋은 경치를 많이 구경하였고 오늘 여러분 앞에서 어떤 연주를 하게 될지 당신 자신도 잘 모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러분들과 어떻게 소통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고도 했다. 나도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객석이 아니라 연단 위에 이렇게 둘러앉은 이유는 불편하더라도 음악은 피부에 와닿는 감각까지 온몸을 총동원하여 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눌한 듯하면서도 진지한 피아니스트 박창수 씨의 해설은 흡입력이 강했다. 역시 있는 힘을 다해 평생 한 길을 달려온 장인의 내공에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모든 관중들이 이어지는 연주와 해설에 집중하여 빠져들었다. 몇몇 초등학생 어린이들도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진지했다.


 첫 번째 연주가 시작되었다. 리듬이 있는 음악이라기보다는 뭔가 말해 주고 싶은 상황들을 한 덩어리의 보이지 않는 물체로 힘 있게 관중에게 던져주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는 철거 직전의 부산 용호동 마을을 카메라에 담은 영상들이 상영되고 그 영상들을 보며 박창수 씨가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시간이었다. 옛날 무성영화 시절 우리나라와 일본과 중국만 변사들이 말로써 해설을 했고 나머지 다른 나라들은 모두 음악 연주로 해설을 대신했다고 한다. 각 개인마다의 고유한 상상력을 존중하는 멋진 발상이다. 박창수 씨도 3시간 반 동안 상영되는 무성 영화 <벤허>의 해설 음악을 즉흥 연주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용호동 옛 마을을 찍은 사진들은 남루했다. 지금은 부산관광의 명소인 이기대를 포함하여 새로운 신도시로 개발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주로 나병환자들이 모여 닭을 키우며 생계를 유지하던 곳이다. 허름한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좁은 골목길. 그나마 사람들은 다 떠나가고 휑하니 비어있는 철거 직전 폐허의 공간들. 바람에게 내어준 빈 집, 떨어져 나간 문짝, 못 빠진 합판이 너덜거리는 천정, 녹슬어 금방이라도 삭아내릴 것 같은 말라빠진 수도꼭지.


 저 버려진 공간 속에도 언젠가는 가족이 있었고 살아내야 할 삶이 있었을 것이다. 웃음이 있고 눈물이 있었을 것이다. 그 속에서 몸부림쳤을 좌절된 수많은 꿈들과 집요하게 펼쳐내어 성취했을 또 다른 꿈들이 읽혔다. 강약과 고저를 반복하며 격렬하게 때로는 숨죽인 가냘픔으로 이어지는 피아노 음률, 몰입하여 혼신의 힘을 다 쏟아내는 연주자의 몸짓. 관중들도 다 함께 그 세계로 빠져 들었다.


 중간중간 화면에 작은 제목들이 떴다.


 떠났다. 모두.


 지켜본다. 바다가.


 모든 영상에 생명체는 전혀 담기지 않았다. 영상의 끝 부분, 빛바랜 시멘트 포장의 좁은 골목길에 구부정하니 홀로 서 있는 할아버지와 골목 계단참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비치기는 했다. 그나마 이미 끄트머리에 와 있는 생명. 그 둘조차 아무런 관계가 없는 홀로의 모습이었다. 끝까지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생명은 이미 멈춰 있었다. 모든 무채색 촬영에 할머니가 입고 계시는 낡은 스웨터의 새빨간 색 하나가 유일한 유채색이었다. 한 점 가능성을 남기는 것일까? 끝을 장식할 무렵 피아노 연주는 극에 달했다.


 가난과 척박 속에서 사라져 가는 한 세대의 적막함, 공허함, 막막함, 무기력함이 다음 세대에 이어주는 약속, 기대, 꿈들로 바뀌며 피아노 선율에 가득 담은 강렬한 생명력으로 온 강당을 채워왔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거나 또는 거역하며 자신의 삶을 처절하게 살아왔을 수많은 생명들의 회색빛 좌절과 무지개 빛 희망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많이 다르고 많이 변화된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나도 저들과 똑같은 인간으로서의 공통되는 고뇌와 좌절 그리고 기대와 소망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연주가 끝나고 또다시 해설이 이어졌다.


 ㅡ사람들이 묻습니다.


 "당신도 베토벤 곡을 칠 수 있나요?"


  제가 대답합니다.


 "물론 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말합니다.


 "한번 연주해 보아요."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런 요청은 사양하겠습니다.ㅡ


 관중들은 모두 다 같이 크게 웃었다. 다시 한 곡의 연주가 이어지고 1시간으로 예정되었던 하우스 콘서트가 끝났다.


 2002년부터 국내 최초로 자택에서 하우스 콘서트를 시작했고 16년 간 컴퓨터, 인스틸레이션, 영상 등을 복합적으로 이용한 총체적인 예술 작업으로 다양한 음악 장르의 공연을 600개 이상 무대에 올렸다는 피아니스트 박창수 씨. 이런 일을 해온 지 40년이 되었다며 그동안 당신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를 생각해 달라고 했다. 그 외로운 길을 꿋꿋이 걸어온 그분의 밖으로 보이는 몸집은 작았지만 내재되어 있는 실체는 위대한 장인으로 보였다.


 서울에서 하우스 콘서트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부지런한 친구들은 열심히 그 음악회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점점 명성이 알려져 요즘은 예약하기도 힘들다고 들었다. 입장료도 꽤 되는 것 같았다. 그런 연주회를 이곳 함안에서 이렇게 쉽게 편하게 그리고 말도 안 되게 싼 값으로 만날 수 있게 되다니, 특별한 밤이었다.



 2018년 7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