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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31. 2021

  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어.

    마음 느끼기

 "1, 2, 3, ㆍㆍㆍ 9, 10."

 1부터 10까지 또박또박 뜸을 들여 가며 소리 내어 정확하게 숫자를 헤아리는 검사원의 목소리가 차갑다. 콧속 깊숙이 들어가 있는 막대기에서 시작되는 시큼한 통증이 꽤 묵직하게 전해진다. 드디어 검사용 막대기가 빠져나간다. 눈물이 찔끔 난다.

 "와아, 되게 아프네요."

 "10초 동안 이렇게 해야 해요."

 아주 사무적이고 가차 없이 엄격한 어조다.


 "하나, 둘, 셋, ㆍㆍㆍ 아홉, 열."

 빠른 속도로 숫자를 열까지 다 헤아린다. 조금이라도 더 빠른 시간 안에 검사를 끝내주려고 서두르는 듯한 마음이 느껴진다. 검사가 끝나자 따뜻하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힘드셨죠? 수고하셨어요."

 따끔한 눈물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똑같은 병원 선별 진료소 코로나 검사이지만 지난번 검사원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코로나 시대가 거의 2년을 꽉 채워가고 있다. 내 또래 친구들 대부분은 비교적 코로나 검사와는 무관한 일상을 살고 있다. 나는 그동안 여섯 번의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두 번에 걸친 남편의 입원 생활에 보호자 역으로 함께해야 됐기 때문이다. 입원하기 전에 음성 판정을 받아 가야 하고 입원 기간 중에도 나흘마다 한 번씩 병원 내에서 코로나 감염 여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세 번은 구청을 이용했고 세 번은 입원 병원 선별 진료소를 이용했다. 다섯 번은 무료로 검사했고 한 번은 거의 9만 원에 육박하는 거금을 지불했다. 아이들 말에 의하면 무료 검사는 검사비가 무료가 아니라 세금으로 검사비를 대신 지불하는 것이라고 한다.


 구청에서 하는 검사는 별소리 없이 콧속에 검사용 막대를 넣었다가 잠시 머문 후 바로 빼내고 끝난다. 그래도 꽤 시큰하고 따끔하다.


 병원에서 하는 검사는 채취 방법이 훨씬 더 엄격했다. 콧속에서 정확히 10초간 머무르며 분비물을 채취해야 한다. 검사원이 소리 내어 시간을 측정해 준다. 그런데 같은 10초를 헤아리는 데도 뜸을 두어 가며 "1, 2, 3 ㆍ ㆍ" 하고 또각또각 숫자를 말하는 것보다는 약간 서두르는 듯 "하나, 둘, ㆍㆍ" 하고 헤아려 주는 것이 견디기가 훨씬 수월했다. 참 묘한 사람 심리이다.


 거기에다 검사원의 어조도 한몫한다. "1, 2, 3 ㆍㆍ" 틈을 두어 가며 시간을 재는 목소리에는 기계적인 엄격함이 배어 있다. 반면에 "하나, 둘, ㆍㆍ" 하며 빨리 헤아리는 태도에는 상대의 고통을 배려하며 좀 더 빨리 끝내주고 싶어 하는 듯한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고통도 덜하다. 아마 소요되는 시간은 똑같았을 것이다. 10초라는 시간은 규정되어 있었지만 어떤 방법으로 헤아려야 한다는 방법까지는 정해져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검사원은 기계적인 태도로 "1, 2, 3"을 헤아리고 또 다른 검사원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나, 둘, 셋"을 헤아린다. 그들 각자의 선택 사항일 것이다.


 완전 일회성으로, 익명으로 잠깐 만나는 이 인연에서도 관계를 맺는 태도의 중요성이 느껴진다. 내가 맡은 업무에 충실히 임하는 태도에다 한 차원을 더 넘어선 관심과 사랑을 고명으로 올려주면 그 업무 자체가 상대에게 따뜻한 보양식이 될 수 있다.


 반복해서 꾸는 꿈은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내가 반복해서 꾸는 꿈 중의 하나는 집에 손님이 찾아와서 나는 부엌으로 나가 그를 대접하기 위한 상을 차린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마음만 급할 뿐 그 상차림이 부실하기만 하고 내가 마음먹은 푸짐한 상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꿈속에서도 황당하고 초조해진다. 아쉬움 속에서 꿈을 깨고 나면 여러 가지 후회스러운 감정들이 마음을 파고든다.  

 '아,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일에 많이 서투르구나.'

 '상대와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는 일보다 내가 인정받는 일에 더 급급해하는구나.'

 '겉으로는 풍성한 상을 차려주는 척하면서 평소에 그런 준비를 해놓고 있지는 않구나.'


 그 문제를 심리 상담한 적이 있다. 그때 상담 선생님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잘 차린 음식인지, 따뜻한 대화인지를ᆢ.


 나는 풍성한 음식상이 환대의 표현이라는 나만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나마 그것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미숙한 수준에서.

 상대의 마음에 공감하고 그 마음을 지지하려는 의지와 실천에 대해 끊임없이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런 내 마음을 이용하면서 나를 조종하려는 상대에 대해서는 예외를 적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지난봄에 큰애가 정혜신의 적정 심리학 <당신이 옳다>를 강추하며 택배 주문해 주었다. 다시 꺼내어 책장을 펼쳐 보았다.

 그 책을 보내준 큰애의 마음을 알기에 밑줄 쳐 가며 읽었건만 나는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충조평판 (충고, 조언, 평가, 판단)만 하지 않아도 공감의 절반은 시작된다.


 이 말 하나 굳게 붙들고 사람을 살리는 관계에 집중하여 상대도 살아나고 나도 살아나리라. 그 길에 들어서는 것조차 나에게는 요원할 수 있지만 그 길을 지향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여기며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다행히 귀감이 되는 사람 몇 명의 얼굴도 떠오른다.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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