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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30. 2021

 미입도록 아름다워.

  기억과 추억

 학창 시절은 학창 시절 그때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져 오며 내 삶에 커다란 힘과 위로가 되어 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에게 학교는 높고 깊은 지식과 문화의 세계를 선물해 주었고 그때 맺은 우정은 결혼과 이사행동반경이 좁아져 버린 서울 생활에서도 큰 활력소로 작용했다.

 대학 시절부터 서울로 유학왔거나 조국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남편의 직장을 따라 상경한 동창 친구들이 전체 동창의 거의 절반 정도였다.

 친구들과 만나고 친구들과 영화 보고 친구들과 음악 듣고 친구들과 연극 가고 여행 가고. 내 곁에서 계속 함께 흘러간 친구들의 우정이 내게는 큰 보배였다. 앞에서 이끌어 주기도 하고 옆에서 더 넓은 세상을 소개해 주기도 하며 지금껏 함께해 온 친구들.


 유달리 비가 많았던 2020년 여름의 어느 하루. 92명이 참가하고 있는 여고 동창 단톡방에 동영상 네 편이 올라왔다. 코로나와 비 속에 갇힌 무료함을 달래 보라는 글과 함께.

 2014년 10월, 63 빌딩 연회장에서 열렸던 여고 총동창회 모임에서 환갑을 맞은 우리 44회가 기념 공연을 한 기록물이었다. 핸드폰이 바뀌고 하는 과정에서 사라져 버려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던 동영상이라 올려 준 친구의 배려와 사랑이 반갑고 고마웠다. 당장 핸드폰 갤러리 앱의 서류 난에 다시 고이 간직했다.


 봄에는 부산에서, 가을에는 서울에서 각각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여고 총동창회는 우리들만의 커다란 축제다. 그해에 환갑을 맞는 기수와 칠순을 맞는 기수, 이렇게 두 기수의 동창들이 무대 공연을 갖는다. 그해의 주인공이 된 두 기수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그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를 연출한다. 거의  년 전부터 모여서 연습을 하고 어떤 팀은 합숙까지 한다고 들었다.

 온갖 화려한 고양이들로 변신한 분장으로 <캐츠> 뮤지컬의 주제곡, <메모리>를 불렀던 어느 해 선배님들의 칠순 잔치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가사를 우리말로 바꾸어 학창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노래했다. 뒷배경으로는 50년도 더 지난 여고 시절의 여러 사진들이 흑백으로 깔렸다. 왠지 눈물 나는 시간이었다.


 우리 44회 친구들도 우리 차례가 된  2014년 공연을 위해 준비에 들어갔다. 공연에 참여할 인원들을 모집하고 공연 종목을 고르고 지도해 주실 선생님과 연습 장소를 물색했다. 그 해 임원을 맡은 회장단들의 노고가 컸다. 총무를 맡은 친구가 연습 때마다 어김없이 준비해 오던 간식과 준비물들. 공연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많은 친구들도 앞다투어 저녁을 사 주었다.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공연에 필요한 무대 의상과 액세서리들도 다 마련했다.


 드디어 공연 당일, 63 빌딩 2층 그랜드 볼륨 대연회장 무대에서 커튼이 올랐다. 음악에 맞추어 행여 실수라도 할세라 가슴 졸이며 환갑을 맞은 할머니들이 추었던 두 편의 춤. 우아한 왈츠와 경쾌한 리듬의 댄스. 부산 동기들도 찬조 출연을 위해 수십 명 상경하여 단체 댄스 공연으로 무대를 빛내었다. 그날의 추억을 떠올려 주는 동영상 네 편을 보니 마음 한편이 아련해져 온다. 아마도 이런 게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짙은 무대 화장을 하고 화려한 왈츠복과 과감한 노출의 댄스복 차림으로 무대에 서서 정신없이 몰두했던 그 순간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6년 전, 우리가 이렇게 행복해했던 시간들이 있었구나. 그때는 저렇게 젊은 모습들이었구나. 연습하느라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었던 지하 연습장과 하하 깔깔 웃으며 어색한 몸짓을 다듬어 가던 친구들의 모습이 기억에 새롭다. 그때 우리가 빚어내던 그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바로 '사랑'이었구나.


  하 수상한 코로나에 밀려 총동창회가 열리지 못했지만 코로나가 물러가면 어김없이 그 행사는 또 계속될 것이다. 그런 자리에서 일 년에 한 번 보는 친구도 있고 십 년에 한 번 보는 친구도 있고 매달 만나는 친구도 있다. 생각나면 전화해 바로 만나는 친구도 있다. 항상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귀감이 되는 친구들. 이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학창 시절이 고맙다. 또한 그런 학창 시절이 가능할 수 있도록 헌신과 희생으로 뒷바라지 해준 내 부모, 형제들에게 감사한다.


 이제는 하나의 기록물로 남겨진 동영상 네 편이 오늘 하루 내 마음을 뿌듯한 사랑의 기쁨으로 채워준다.


 삶의 끝자락에 걸쳐 있는 어느 한 시점에서 설령 치매에 걸린다 해도 기억할 것 같은, 아니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줄 것 같은 모교의 교훈.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언제까지나 빛나고 있는 찬란한 보석이다.



  겨레의 밭

                     청마 유치환


 억세고 슬기로운 겨레는

 오직

 어엿한 모성에서 이루어지나니


 이 커다란

 자각과 자랑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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