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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03. 2021

 베사메무쵸

    Kiss  me  much.


베사메 베사메무쵸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

베사메 베사메무쵸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베사메무쵸야

리라꽃 같은 귀여운 아가씨

베사메무쵸야

그대는 외로운 산타 마리아  


 베사메 베사메무쵸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

 베사메 베사메무쵸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리라꽃: 라일락꽃

 

 9월 1일.

 2021이라는 숫자가 겨우 눈에 익는가 했더니 어느덧 9월이다.

 올해 여름은 아주 똑 떨어지는 성격의 소유자였나보다. 한 달 남짓 확실하게 찜통 무더위의 위력을 보여주더니 어느 한순간 바로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으로 가을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한여름 무더위를 조금 잊어 가고 있는 듯한 순간, 9월이라는 숫자가 성큼 눈앞에 다가와 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핸드폰을 열었더니 부지런한 카톡 이웃 형제님어느새 동영상 한 편을 올려 놓으셨다.

 패티킴<9월의 노래>다.

 높은 하이힐에 갈색 챙모자를 고 멋진 바지 정장 차림으로 키 낮은 팔걸이의자에 걸터앉아 한 손을 살짝 턱에 괸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프로다운 자신감과 당당함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무대에 설 때면 언제나 바닥에 흙이 묻어 본 적 없고 상표도 떼지 않은 새 구두를 신었으며 몸매 관리를 위해 평생 저녁 식사 약속을 잡지 않았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9월이 오는 소리

  다시 들으면

  꽃잎이 지는 소리

  꽃잎이 피는 소리 ᆢᆢ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겨난다. 약간은 쓸쓸하고 애잔하고 그립고 아쉬운 정서가 오랜만에 듣는 시원한 목소리에 담겨 전해진다.


 뒤이어 소개되는 '패티킴 노래 모음'을 눌러 보았다. 말없이 둘이 먹는 아침 식탁에 패티킴의 막힘없는 노래가 가득 울려 퍼진다. 지나간 과거의 시간으로 끌고 가는 노래들이다.


 그 중에 <베사메무쵸>가 들어 있었다. 누가 불러도 흥겨운 듯하면서도 애잔한 리듬에 쉽게 빠져들게 하는 곡이다. 장인 패티킴이 불렀으니 그 호소력이 더 강렬하다.


 이 노래를 들으면 생각나는 분이 계신다.

 선우경식 원장님이시다. 영등포역 쪽방촌에 있는 노숙인 자선 의료기관인 요셉의원을 설립하셨으며 20여 년 원장으로서 이 병원을 지키셨다.

 가톨릭 의대를 졸업하시고 미국 킹스브룩주이스 메디컬센터에서 내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셨다.

 결혼도 하지 않고 무료 진료에 헌신하시다 2008년 63세로 선종하시기까지 마지막 위암 투병 2년 동안에도 요셉의원 진료를 쉬지 않으셨다.


 성당 레지오 활동으로 요셉의원 봉사활동을 다닐 때 그분을 자주 뵈었다. 늘 웃으시는 따뜻하고 편안한 얼굴에 지성미가 넘치는 미남이셨다.

 우리는 챠트 봉사활동을 했다. 환자들이 오면 창구에서 접수를 받고 챠트를 찾아 선생님들의 진료실로 가져다 드리고 진료가 끝나면 다시 제자리에 꽂아 정리해두는 일을 했다. 봉사하는 날은 병원 식당에서 제공하는 노숙자 무료 급식용 점심도 맛있게 먹었다. 식당 입구에는 늘 사탕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의료 봉사하시는 선생님들의 존경스러운 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열악한 환경에서  온갖 냄새를 다 풍기는 노숙자들을 스스럼없이 가까이 대하시며 진료하시는 이다.


 우리는 챠트만 취급하니까 환자들과 잠깐씩 거리를 두고 만나는데도 그 냄새가 참 많이 힘들었다.

 당뇨 합병증으로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고 있는 사람, 알코올 중독자로 술에 찌든 사람, 만성 위염을 앓고 있는 사람, 고도 비만으로 제대로 몸을 못 가누는 사람 ᆢ.

 환자들 대부분이 오랜 병력을 갖고 있었고 정기적으로 약을 타러 오는 단골 손님들이었다. 쭈뼛거리며 물어물어 처음 찾아오시는 분들과 외국인 노동자들도 꽤 있었다. 의식주가 일정하지 못한 처지이다 보니 옷이랑 몸에서 온갖 고약한 냄새가 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잠깐 대하는 것도 힘든데 정작 선생님들은 바로 코앞에서 환자들의 몸에 청진기를 대 보시고 등을 두드려 보시고 배를 눌러 보시며 입 안을 살펴 보신다.

 진료시간 내내 그런 일을 하시니 고약한 냄새를 참아내는 인내력만으로도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했다.

 고귀한 인류애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느해 봄, 자원 봉사자 하루 피정 프로그램으로 멀리 경상도 쪽으로 알코올 중독자 수용 시설을 방문 견학하게 되었다. 에너지 넘쳐 보이는 활달한 원장 수녀님이 설립하셔서 운영하고 계셨다. 힘들고 어렵게 하느님의 사업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라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들에게는 교훈과 감동이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버스는 긴 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렸다. 원장 선생님을 향해 노래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형 관광 버스를 꽉 채운 봉사자들의 열화 같은 재촉에 원장님께서 부르신 노래가 바로 이것이다.


 <베사메무쵸>


 목소리가 정말 좋으셨다.

 사람을 사랑하실 줄 아는 분답게 노래 속에 담긴 정서가 깊고 그윽했다. 이미 원장 선생님의 노래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봉사자들이 그렇게 열렬히 요청했던 모양이다.

 불편하고 좁은 관광 버스 의자에서 마이크를 고 이 노래를 불러 주시던 생전의 모습이 기억 속에 아련하다.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13년이 흘렀다.

 당시 병원 한 달 운영비로 800만 원 정도가 필요한데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든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이 돈이 매달 끊기지 않고 마련된다고 하셨다. 이 돈이 끊기면 당신께서는 이 일을 끝내실 데 어떤 때는 동창 친구분이 재혼 축의금으로 들어온 돈을 모두 기부한 적도 다고 하셔서 모두들 웃었다. 사실은 병원 운영비 마련을 위해 불철주야, 노심초사, 이곳저곳을 애써 찾아 다니셨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긴 시간 의사라는 전문직 공부를 힘들게 마치고 소외된 사람들을 가족처럼 배우자처럼 자녀처럼 끌어안고 홀어머니와 함께 검소하게 사셨다.

 '쪽방촌의 슈바이츠'로 불리셨다.


 "이 환자들은 내게는 선물이나 다름없다.

 의사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능력한 환자야말로 진정 의사가 필요한 환자가 아닌가?"

                                                         ㅡ 선우경식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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