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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자연의 품
by
서무아
Sep 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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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4일째인 10월 9일, 팜플로나의 시수르 메노르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의 19킬로를 걷기 시작했다.
걷기 1구간, 첫날의 순례길 여정이다. 7 구간까지 7일간 140km 순례길을 걷는다.
걷기 6구간의 출발점인 해발 1400미터 산꼭대기 마을 폰세바돈. 그 정상에 있는 철의 십자가 언덕 평원에서 고도원 님의 지도로 30분간 침묵 좌선 명상 시간을 가졌다. 드넓은 자연 속에서 거센 바람 소리 벗 삼아 '나'와 만나는 시간. 그리고 이어지는 걷기 명상.
모든 관계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심리학의 정석을 따라 천천히 내딛는 한 걸음걸음마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세 번씩 반복하며 걷고 침묵 중에 들려오는 음성에 귀 기울이는 명상 과정이었다.
그다음은
또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고.
그러나 나의 명상은 첫 단계, '어머니'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어머니."
그 한 마디에 쏟아져 나오는 오열.
어머니를 생각하면 솟구쳐 오르는 강한 감정이 있다. 정말 강하게 열심히 사셨던 그 노고와 철저히 이타적이었던 삶에 대한 애틋한 연민이다.
한없는 희생과 헌신으로 나를 지지해 주시고 아껴 주셨던 어머니. 위로 언니, 오빠 네 명을 위시해서 늦둥이에 속하는 나와 내 동생 둘까지 일곱 명의 자녀 한 명 한 명에게 눈높이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받은 것에 비해 드린 것이 너무 없는 나의 철없었음이 어머니의 큰 사랑에 비추어 더 어둡게 조명되었다.
"엄마, 죄송해요."
"엄마, 미안해요."
"엄마, 천국에서 영생복락 누리세요."
만약 나에게 엄마의 엄마라는 인연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처럼 그렇게 헌신할 수 있을까? 아마 못할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몫은 나의 세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엄마가 되는 일일 것이다. 조금이라도 자식들을 더 사랑하는 엄마.
이 땅에서 다시 뵐 수 없는 어머니께는 통회하는 내 낮은 마음을 담아 이 두 마디 인사를 드리고 싶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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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저의 정체성을 즐기고 있습니다. 자극과 격려를 얻어 천천히, 꾸준히 이 길을 가려 합니다. 사랑하는 도반 작가님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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