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다니시는 내과에서 연락이 왔는데 전립선암일 수 있으니 큰 병원에 가보란다.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탈이 나신 거다. 큰 병원에 예약을 하고 검사가 필요하다. 전립선암에 대해 검색해 보니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전이 속도가 느리고 알맞은 처방으로 회복이 빠른 암이라고 나와서 마음이 좀 놓였다. 게다가 지난주에 만났을 때 식사를 잘하셨고 아프다는 말씀도 없으셨다. 얼굴빛이 좋아지셨던 걸 기억한 후에서야 더 마음이 진정되었다.
동생은 아버지의 정밀 검사 예약을 해 두었단다. 건강하고 관리를 철저히 한 사람일수록 질병이 닥쳤을 때 이겨내는 힘이 좋다고 한다. 전화로 아버지께 안부를 물었더니 나이 먹으면 탈이 나고 망가지는 건 당연하다고 하시며 괜찮다고 하셨다. 애써 걱정을 털어내시려는 듯 보였다. 며칠 후 검사를 받으셨고 다음 주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다녀왔다. 병원 도착 후 2시간을 기다려서 의사를 만났다. 병원은 시간을 잡아먹는 거대한 스펀지 같다.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없다. 우리의 예상대로 아버지는 전립선암이었고 뼈까지 전이되었다고 한다. 노령으로 수술은 어려우니 약물 치료하자고 한다.
너무도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암이라니 놀랍고 슬프다. 건강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고 했던가. 아버지가 놀라시지 않게 하려고 이런저런 이유를 일부러 쏟아냈다. 암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걸리고 건강한 사람일수록 잘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하여 안심시켜 드렸다. 아버지는 <일상생활에 문제없고 식사 잘하며 운동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괜찮다> 며 명랑한 마음을 표현하신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갑자기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간다면 난 어떻게 할까 두려웠다. 아버지 힘내시고 병균과 꼭 싸워서 이겨내세요.
연극 < 더 드레서 >에서 박근형 배우의 배역은 한평생 무대에서 연기하는 노배우역을 맡았는데 연극을 올릴 수 없을 정도의 기억력, 부족한 배우 등 고된 여정의 날들을 보낸다. 모두의 노력으로 연극을 끝내고 박배우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울컥했다. 평생 성실하게 당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오셨다. 우리는 작은 슬픔 하나쯤은 다 가지고 사는데 나의 몸이 쪼그라질수록 그 슬픔은 이상하게 더 커진다는 오만석 <드레서>의 대사가 가슴을 찌른다. 지난 만남에서 아버지의 어깨가 부쩍 작아 보였기에 더 그렇다.
박근형 배우가 40년생, 아버지와 동갑이시다. 그렇기에 무대에서 혼신의 열정을 보이시는 박배우의 탁월함에서 아버지의 집념이 보였다. 누구나 맞이하는 생과 사, 자연스럽고 멋있게 준비하셨으면 좋겠다. 내게도 언젠가 닥칠 그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