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여행 제안에 원산도를 향하여

알콩달콩 퇴직 후 부부 이야기

by 그님


운동하러 갈 건데 아침 먹으면서 먼저 말하는 남편.


"아침 먹고 운동 나가야죠. 나는 탁구 레슨 있으니까 당신 혼자라도 잘 다녀와요."


청개구리 심보가 나를 자극한다.


"혼자 가라고? 재미없어. 나중에~"

"안돼요. 당신은 당뇨 전단계라 밥 먹자마자 나가서...."


줄줄이 잔소리를 외치며 같이 나가잔다. 내편은 탁구장으로~ 나는 소운동장으로~


현관문을 먼저 나선 나는 캠퍼스 소운동장을 다섯 바퀴 걸었다. 남편이 말 한 것보다 한 바퀴 더 걷고 발을 씻으러 세면대로 갔다. 바닥에 낯익은 남편 신발이 보인다. 옆을 보니 안 보여 뒤를 보니 따라오며 열심히 걷는 남편이닷.


"엉~ 탁구 레슨 한다매. 언제 왔어?"

"친선 경기 있다고 오늘 레슨 안 한대요. 몰랐네~"

"왔으면 불러야지. 뒤따라 걸었어~ 몇 바퀴째야?"

"두 바퀴."

"나는 다 걸었는데."

"그럼 먼저 집에 가요. 내가 발 씻겨 주리다."

"내가 씻고 가도 돼."


말했어도 남편은 내 발을 씻겨주고 혼자 걷는다. 혼자 냅두고 가려니 마음에 걸리지만 나는 집으로 쌩~


집에 들어오자마자 핸드폰이 급하게 울려서 받았다.


"여보, 원산도 갈까요?"

"응? 내일 가기로 했잖아."

"내일 비 예보가 있기도 하고, 탁구도 바람맞고..... 당신만 괜찮으면 갑시다. 지금 출발해도 늦지 않아요."

"나는 괜찮긴 한데....."


계획에 없던 번개에 좋으면서도 대답을 시원하게 못했다. 탁구를 못 치게 된 내편의 마음이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리게 대답했지만 그런 대답도 남편은 아랑곳없이 통화를 마치자마자 번개처럼 집으로 왔다.


"여보, 지금으로부터 약 15분 내로 준비하구려."


후다닥~ 뚝딱~ 대답은 안 해도 15분 내로 준비 완료. 남편한테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말을 하면 나의 행동이 빠르다는 것. 편두통이 약간 나의 기분을 좌우했지만 남편의 번개를 거절할 수 없었다.


승용차 타고 원산도를 향하여 출발~ 가는 중에 카페에 정차하고 당연히 라떼 한 잔을 주문했다. 둘이 나누어 마시며 룰루랄라~ 하고 싶지만 커피를 마시고 두통을 잠재우려 눈을 내린 나.

'남편은 내가 졸려서 자는 줄 알겠지.'


"여기 대천이네요. 당신 여기서 살았다고 했죠?"


눈꺼풀을 들어 올려 나를 잠에서 깨웠다. 국민학교 다니던 추억을 찾고자 두리번거렸지만 어릴 적 추억은 기억 저편에서 가물가물~


해수욕장을 가로질러 대천항이 나왔다. 우린 원산도 해저터널로 직행하였다. 해저터널이라고 해도 일반 터널일 뿐. 바다와 물고기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터널 끝에서 찾은 것은 남편의 배꼽을 달래줄 식당. 맛집 검색 1순위인 선촌항의 명가 식당에 들어갔다. 여행지 맛집은 은근 기대 반, 걱정 반인데 불 맛이 나는 볶음으로 정말 맛있다. 서로 잘 찾아왔다고 토닥토닥~


고깃배가 왔다가고, 바다낚시를 즐기는 선촌항을 둘러보았다. 다음은 원산 안면대교로 들어가 영목항 전망대에 입성. 22층 전망대로 오르니 멀리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장관이닷.


바다를 눈과 마음에 가득 담고 무심히 지나쳐 온 원산도 해수욕장에 갔다. 제일 넓은 해수욕장이란다. 아무도 없다. 넓은 바다에 사람은 없고 모래사장엔 우리 두 사람.....


햐~ 모래가 고옵다. 조개껍질이 하얗게 반긴다. 파도를 잡으려 발을 들여놓았다가 깜짝 놀랐다. 따끔하니 아프다. 뭔가가 자꾸 물어댄다. 오른발로 왼쪽 발 등을 비벼댔다. 파도가 왔다 가면 뭔가가 무는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원산도'라 쓰고 발 도장을 찍었다.


헛~ 파도를 무시하고 하얀 모래사장을 걸었다. 그 후로는 따끔한 맛을 보지 않고 우리 둘만의 자유를 만끽~ 모래사장을 맨발로 부드럽게 파고드는 느낌이 참 좋았다. 조개껍질도 예뻤다.


아쉽지만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카페로 갔다. 대전으로 가기 전 운전하는 남편을 위해 라떼 한 잔, 피치 딸기 피지오 한 잔을 나누어 마시며 집을 향하여~


아침에 나의 기분을 좌우한 편두통은 언제인지 모르게 달아나 버렸다. 룰루랄라~ 왜케 기분 좋은지~ 매일 지내던 공간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 둘이라서 더 좋다. 남편은 기분이 업되고 나는 머리가 맑아진 하루.


가고 오는 길에 임 영웅 님의 노래를 들었더니 두통을 낫게 했다는 나의 처방.

내 맘대로 해석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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