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 퇴직 후 부부 이야기
퇴직한 남편은 여성가족원의 밑반찬 만들기 반에 등록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먹는 게 중요하다며, 요리를 배우겠다고 하여 잘 생각했다고 격려해 주었다. 수줍음 많고 낯가림하는 남편은 여자들 틈에서 과연 잘 어울리며 배울 수 있을까 싶은 마음. 몇 번 다니다 그만두겠지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의외로 꾸준히 다니는 남편의 모습에 나날이 놀랍고 응원까지 보태는 나.
수강생은 거의 여자. 딱 봐도 나이든 남자 세 명이란다.
다니다 보니 한 주, 두 주..... 지나면서 남자들 중에 남은 사람은 남편뿐.
"여보, 남자가 당신 혼자 남았다매. 어색하지 않아?"
"어색하죠. 근데 어떡해요. 배우기로 했으니 끝까지 배워야죠."
"여자들하고 요리할 만해?"
"할 만한 게 뭐예요. 그냥 조용히 쥐 죽은 듯이 보는 거죠."
"그럴 줄 알았어."
말해 놓고 왜 그렇게 웃음이 나는지 깔깔깔~
"여자들이 말하는 거 보면 다 쎄요. 왜 그렇게 쎈 거예요. 나는 말도 못 붙이겠어요."
"그 정도야? 말은 붙여 봐야지. 실습하다 보면 물어보기도 해야 실수하지 않지."
"몇 번 물어봤는데 무서워서 그냥 시키는 것만 하기로 했어요. 설거지는 내가 도맡아서 하구요."
"뭐? 요리를 배우러 갔는데 설거지만 하는 겨?"
"아니, 나는 요리하는 것을 지켜보고 여자들이 거의 알아서 해요. 그래서 내가 할 건 설거지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당신도 해야지. 요리 배우러 갔는데. 그럼 뭐 하러 배워?"
"하는 거라도 옆에서 보면 늘지 않겠어요?"
"뭐라고? 직접 해봐야지. 옆에서 지켜보려면 왜 가? 그럼 가지 마. 내가 집에서 해줄게."
"에이~ 아니에요. 야채 씻어 주는 것도 해요. 알았어요. 다음부턴 나도 요리에 참석해 볼게요."
집에 오면 미주알고주알 있었던 일을 풀어 놓는 남편.
말하는 것을 들으니 뒤처리만 도와주러 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훈수 두는 나.
이다음부터는 자기도 요리 실습을 했다고 자랑했다.
직접 계량을 했다고,
야채를 씻어서 썰었다고,
보글보글 끓을 때 넣고 간도 보았다고,
생선과 닭도 손질했다고.
어느 날은 겉절이를 담갔다고 자랑하는 남편은 맛 좀 보라고 성화다. 남편의 솜씨인지 같은 조 여자들의 손맛인지 어쨌든 맛있었다.
"여보, 나 이제 겉절이 맛있게 담글 수 있겠어요. 소금에 절이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비율을 잘 맞춰야 맛이 나요."
자신감 상승이다.
"그려? 앞으로 김치 담그는 건 당신 담당."
쐐기를 박아 주자 기분 좋게 콜 하는 남편은
"알았어요. 이제 김치는 내가 담그리다. 당신은 드시기만 해요."
이렇게 말했는데 여성가족원 밑반찬 만들기 8개월 다니고 나서 요리를 졸업하고 아예 손을 뗐다는 썰.
익은 김치보다 겉절이를 좋아하는 나는
"여보, 당신이 배운 겉절이 좀 실습해 봐. 먹고 싶어. 당신 잘 만들잖아."
"그거 배운 지가 언젠데요. 다 까먹었어요. 먹고 싶으면 당신이 직접 만들어요."
이렇게 변하기가 쉽지 않은데 쉽게 변해버린 남편이닷.
요리를 배우러 다닌 것만 해도 감사한 것은 요리 대신 야채를 깔끔하게 손질해 주는 남편이 되었다. 더불어 설거지까지 도맡아 해준다.
대신 요리는 평생 내가 하는 걸로. 자기가 만든 음식은 이 맛도 저 맛도 아니라며 과소평가하고 겸손해지는 남편은 내가 만든 음식을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라며 남기는 법이 없다.
주방 탈출하나 싶었는데 도루묵이 되었다.
그래도 뭐든 손질해 주고 설거지를 도와주는 게 어디야~
맛있게 드셔 주는 것만 해도 행복인걸.
퇴직한 남편은 여성가족원 밑반찬 만들기를 배우러 다니는 사이에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블로그에 빠져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따로 또 같이~ 이것도 참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