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 퇴직 후 부부 이야기
남편이 퇴직할 무렵 같이 퇴직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목 디스크가 와서 먼저 퇴직을 하였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는 퇴직은 갑자기 직장에서 쫓겨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 우울의 동굴 속으로 깊이를 파고 들어갔다. 남편은 주말마다 여행하자고 제안을 했다.
안 간다고, 가기 싫다고, 내버려 두라고 했지만 억지로 끌려 나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대천 해수욕장. 봄바람 부는 바닷가를 걷는데 주머니에서 손을 뺀 남편은 모래밭에 이름을 쓰고 하트를 그렸다.
"여보? 어때요? 좋아요?"
결혼 전에도, 신혼 때도 못 해본 짓을 예순이가 넘어서했다.
"뭐 하는 거야? 우리가 애들도 아니구."
"신혼 때 못 해봤으니 지금이라도 해야죠."
마음은 청춘이라더니 남편이 딱 그 짝이다. 우울했던 마음을 잠시 접고 활짝 웃었던 기억이 난다. 군산도 가고, 서천도 가고, 안면도도 가고.....
넓고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데려가 준 남편 출렁이는 파도를 보면서 마음 열기를 간절히 바랬나 싶다. 갔다가 오고 다시 갔다가 밀려오는 파도처럼 인생은 그런 거라고. 슬픈 날이 있으면 웃는 날도 있듯이.
"여보, 당신 웃으니까 참 예뻐요. 나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고요. 우리 힘내서 삽시다."
어느 땐가는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고마워서. 미안해서. 더 슬퍼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주말부부라서 걱정이 많은 남편이었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아침, 점심, 저녁으로 전화해서 식사를 했는지, 산책은 했는지, 무얼 하며 지냈는지 물어 대답해 주면 뭐가 그리 좋은지 껄껄껄 웃는 남편이었다. 남편 덕분에 힘을 내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다음 해 남편은 정년퇴직을 앞두고 일 년 전 공로연수에 들어갔다. 집에서 매일 잠에서 깨어 눈을 뜨고, 밥 먹고, 산책하고..... 늘 붙어 있게 되었다. 평생 주말부부를 했기에 반갑고 좋았다.
남편은 뭔가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이 요양보호사에 도전하여 학원에 다니면서 자격증을 받았다.
"여보, 우리 또 뭐 배울 거 없을까요? 퇴직하기 전에 사회에 나와서 써먹을 거 있으면 미리 공부해서 자격증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마음이 통한 우리 부부는 이번엔 사회복지사 자격증에 도전.
갑자기 목 디스크가 재발되어 아픔이 찾아왔다. 신경차단술로도 해결되지 않아 결국은 고대안산병원 신경외과에서 수술을 받았다. 남편만이 병실을 지키며 극진하게 간호를. 아픈 사람은 수술하느라 고생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은 간호하느라 더 힘들다는 사실.
열흘간 힘든 것을 티 내지 않고 지극정성 간호해 준 덕분에 퇴원하고 집에 와서 우린 사회복지사 강의를 들으며 마지막으로 시험 보고 성적을 확인한 뒤 서로 점수를 비교하며 이러쿵저러쿵 낙제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농담하면서 철없는 학생처럼 아웅다웅했었다. 보육원에도 나란히 현장실습 신청하여 잘 마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받아 부부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그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지금 생각해도 감격이다.
"여보, 당신이랑 이렇게 같이 다니고 같이 공부하니까 과커플 같아요. 대학 때 커플들 보면 부러웠거든요."
"그러게. 나도 당신이랑 같이 하니까 도움 되어 좋네."
"그쵸? 당신도 나랑 똑같은 생각이죠?"
맞장구를 칠 만큼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매우 좋아했다. 공로연수 기간 동안 우린 그리워했던 연인이 만난 것처럼 매일 소꿉놀이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