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좋아하는 팥죽

알콩달콩 퇴직 후 부부 이야기

by 그님


동지인 줄 알았는데, 그냥 넘어갈까 했는데 블로그에 올라온 팥죽 사진이 마음을 자극한다. 먹고 싶으면 팥죽을 끓이는 걸로.


애동지와 동지를 굳이 따지지 않는다. 시루떡보다 팥죽을 더 좋아하는 나라서. 겨울이니까 팥죽이닷.


팥을 불려 한번 끓여냈다. 독이 있고 떫은 맛을 우려내려고. 식힌 후 냉동실에 얼렸다. 언제든 팥죽이 먹고 싶으면 끓이려고 냉동했던 팥을 꺼냈다. 그날이 오늘 동짓날이닷.


팥을 꺼내 냄비에 넣고 약불에서 끓인다. 새알은 넣지 않고 대신 찹쌀과 맵쌀을 반반 넣는다. 새알은 뜨겁기만 하고 맛이 밍밍하다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직도 새알 맛을 모르는 예순이닷.


약불에서 보글보글 익고 있는 팥. 그동안은 폴폴 김 나는 뜨거운 팥을 스텐 소쿠리에 넣어 주걱 뒤 볼록한 부분으로 동그라미 그리면서 으깼다. 부드러운 속살이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 기분 좋았다. 팥 껍질은 버리고 속살에 불린 쌀을 넣고 주걱으로 젓는 것은 정성이다. 어깨와 팔이 아프지만 가족들 먹일 생각에 즐겁기만 하다. 이때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한다. 단맛보다는 고소한 맛으로.


아들과 딸은 팥죽을 끓여 먹으라고 하면 싫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 그릇은 무조건 먹였다. 남은 팥죽은 냉장실에 넣어 놓고 여러 날 먹는 기쁨과 행복이 있었다.


오늘은 팥 알갱이의 씹는 맛을 함께 즐기기로 했다. 통팥을 삶을 때 자꾸만 넘치려 뚜껑을 제친다. 찹쌀, 맵쌀 반반 불린 것을 같이 넣고 휘적휘적~ 이때 소금과 설탕 밑간을 가볍게 한다. 쌀과 팥이 냄비 바닥에 들러붙으면 탄다.


부지런히 저어야 한다. 노 젓듯이. 오른손으로 젓다가 팔이 아프면 왼손. 바꿔가며 젓다가 뽀글뽀글 툭~ 튀면 조심해야 한다. 툭 튀는 팥죽에 화상 입을 수도. 그동안 팥죽, 호박죽 쑤다가 화상 여러 번 입었다.


그. 래. 도. 팥죽을 쑤는 건 뭔지.

남편이 좋아하니까~


쌀이 동동 뜨고 뽀글뽀글 툭툭 튀면 불 끄고 뜸 들인다. 뜨거우니까 잠시 잊기로 했다.


탁구장에 다녀온 남편과 오병이어 학사 식당에 갔다. 팥죽이 나왔다. 두 그릇 떠와서 남편이 숟가락으로 먼저 얌~ 인상을 찡그리면서 하는 말.


"아호~"

"왜?"

"들어 봐요."

"달아?"

"들어 보면 알아요."


한 숟가락 떠서 입에 얌. 달다. 진하게 달다.


"당신이 해야 맛있는데. 어째 오늘은 팥죽 안 쒀요?"

"여기서 드셨잖아."

"이것 말고 당신이 만든 팥죽요."

"기대할 걸 해야지. 팥죽 쑤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래요? 난 맨날 얻어먹기만 해서. 그래도 아쉽네. 난 당신한테 매일 커피로 예우를 해주는데 당신은 일 년에 한 번 하는 팥죽도 안 쑤고. 이근임 예우법 폐지해야겠어요."

"언제부터 예우법이 있었어? 금시초문이네."

"내가 생각하면 법이죠. 지금 만들었어요."


가끔 엉뚱한 발상을 하는 남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아니 말문이 막혀 웃음이 났다. 남편도 따라 히죽 웃는다.


산책하고 집에 도착. 주방으로 향하는 남편은 냄비 뚜껑을 연다.


"이게 뭐여? 그럼 그렇지. 팥죽 쒔네요."

"그럼. 당신은 가장 소중한 사람인데 내가 직접 맹글어 줘야지."

"아우~ 역시 당신을 계속 예우해야겠어요."


점심을 배부르게 먹었다고 했는데도 접시와 숟가락을 집어 든 남편. 팥죽을 푹 뜨고 또 뜬다.

죽을 한 숟가락 아~ 암.


"으흠~ 이 맛이에요. 이게 진짜 팥죽이지."


먹는 건지 웃는 건지 바라보는 마음도 맛있다.


"당신 입맛에 맞어?"

"맞는 게 뭐예요. 살살 녹아요. 너무 맛있어서 나 혼자 먹을 거예요."


말재주가 늘었다. 남편의 말에 나조차 살살 녹는다.


"주고 싶어도 줄 사람도 없어. 애들 오라고 할 수도 없고."

"애들 부르면 안돼요."

"그래서 본죽 팥죽으로 카카오 선물 보냈어."

"엥~ 본죽? 잘했어요."

"그렇게라도 챙겨 먹이고 싶어서 보냈어."


남편은 나한테 내 편인데 어떻게 남편을 만들 수 있으리오. 남편이 좋아하는 것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팥죽 서프라이즈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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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 학사식당 팥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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