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엄마를 만나 북토크
덥고 더워서 에어컨 없이는 견디기 힘든 여름이었다.
“여보, 아이랑 엄마들을 모시고 북토크를 하면 어때요?”
“뭐? 안 돼. 떨려. 그냥 책으로 내고 책을 선물로 드렸으면 좋겠어.”
분명히 의사를 밝혔는데도 내편은 더운데 더 덥게 힘차게 밀어붙였다.
여름에 부채질을 하면 시원해지기보다 더 더워진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딱 그 짝이었다.
틈만 나면 부채질에 이어 노래까지 부르는 내편.
“여보, 북토크를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까요?”
“안 한다니까. 지금 이대로가 좋아.”
“시립박물관이나 원신흥도서관에 모임 장소를 빌려주는지 알아볼게요.”
“됐어. 그만해. 나, 떨리거든.”
아랑곳하지 않고 전화까지 돌려보던 내편은 조금 뒤 이렇게 말했다.
“여보, 미안한데 박물관은 개인 북토크는 대관이 안 된대요.”
속으로는 ‘유훗, 잘됐다’ 싶었다.
그렇게 관심이 시들어 가나 싶었는데, 내편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내 생각에는요, 카페도 괜찮을 것 같아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내 생각이 절대 필요 없는 질문이었다.
선택 장애,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내편의 저돌적인 행동은 늘 예고 없이 다가왔다.
“아니, 안 해도 된다니까.”
“아니에요. 내가 비용은 다 낼게요. 떨리면 더더욱 나서야죠.”
“비용 문제가 아니라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래.”
“그럴수록 나서야죠. 아이들이랑 엄마들을 만나면 당신도 반가울 거예요.
실명 허락도 받았으니 인사도 드려야 하고요.”
그 말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사진을 받았을 때의 그 감동이 떠올랐다.
벌써 이렇게 컸나 싶었던 마음.
여름 내내 내편은 나를 이니셜 카페로 데려갔다.
라떼를 사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만 몰랐다. 다 계획이었다는 걸.
어느 날, 라떼를 앞에 두고 내편이 말했다.
“여보, 이니셜 카페 어때요? 북토크 하기 딱인데.”
“뭐? 북토크 하려고 여기 오자고 한 거야? 안 한다고 했잖아.”
“아이들 보고 싶잖아요. 엄마들까지 모셔서
조촐하게라도 이야기 나누고 책을 드리면 좋잖아요.”
계획적이고 자기주도적인 내편을 말릴 재간은 없었다.
싫다고 말하면서도 끌려가는 마음.
토요일 오전 열 시.
일주일 전부터 내 마음은 계속 떨렸다.
다섯 해가 지났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예준이와 시윤이, 그리고 어머니들이 먼저 도착했다.
설렘과 기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꽃바구니를 건네며 축하 인사를 해주시는 어머니.
아이들의 손을 잡고, 품에 안고, 등을 토닥이며 세월을 만졌다.
이어 연진이와 어머니, 주차를 마치고 들어온 예준이 엄마.
어머니들은 더 젊어 보였다.
『선생님, 우리 친구지요?』 책에 사인을 해서 두 권씩 건넸다.
한 권은 아이와 엄마에게,
한 권은 조부모님이나 지인에게 드리라고.
아들의 사회로 인사를 나누고 케이크에 여섯 개의 초를 꽂았다.
가운데 하나는 교사, 주변 다섯 개는 아이들.
불을 밝히고 모두 함께 후— 하고 불었다.
박수와 웃음이 카페에 가득 찼다.
커피와 케이크, 과일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북토크.
“몇 장만 쓴 책인 줄 알았어요.”
“일 년 과정을 이렇게 두껍게 책으로 만들 줄 몰랐어요.”
왜 이 아이들 이야기로 책을 냈는지 묻는 질문에 차분히 답했다.
신학기 적응이 남달랐던 아이들,
그럼에도 잘 따라와 준 고마움.
어머니들이 보여준 신뢰와 기록.
보육 현장의 실제 이야기가 후배 교사들에게,
부모와 조부모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아들과 딸, 며느리와 사위까지 함께한 자리.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시간.
보육교사로 일하던 시절
입학식과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해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아이들이 잘 자란 것에 감사했고,
그 성장 곁에 내 이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감동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