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 퇴직 후 부부 이야기
주말부부로 지낼 때엔 서로 얼굴 보고 이야기하기 바빠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두 집 살림을 합치면서 나날이 늘어가는 흰머리와 길어지는 흰머리가 자꾸 거슬리나 보다.
"여보, 염색해야겠어요.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사람이 흰머리가 그렇게 많아서 어떡해요."
"나이 들면 자연적으로 생기는 건데 뭘~ 괜찮아."
"난 안 괜찮아요. 신경 쓰여요."
"왜? 나랑 다니기 창피해? 할머니 같아서?"
"아뇨~ 창피하긴요. 당신이 젊어 보이면 좋죠. 당신도 좋고 나도 좋고."
"나는 안 좋아. 관심 끄슈~"
관심 끄라고 말을 했어도 은근 신경 쓰인다. 나만 괜찮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이어지는 관심을 가장한 잔소리 핵폭탄. 자연인으로 살고자 하는 나를 자꾸 부추긴다.
"아휴~ 됐다니까. 내 머리가지고 왜 그렇게 관심 둬."
"그럼 내가 내 마누라한테 관심 안 두면 누가 둬요? 나니까 당신한테 말하는 거죠. 이것도 다 사랑이에요."
"사랑은 무슨 사랑? 잔소리지. 듣기 싫은 잔소리."
"나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 보기에 당신을 할머니로 보면 어떡해요."
"할머니는 할머니지. 내 나이가 벌써 예순인데."
"당신 예순 같아 보이지 않으니께 염색해요. 그럼 훨씬 젊어 보여요."
"그럼 당신과 나는 불륜인 거네."
"이 사람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내가 너무 젊어지면 당신이 늙어 보일 거 아녀."
"나는 괜찮으니께 당신만 젊고 예뻤으면 좋겠어요."
"나도 괜찮으니까 자연인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꼬박꼬박 말대꾸에 눈만 꿈먹이는 남편.
"내일 꼭 염색해요. 알았어요?"
염색하리라 믿는다는 식으로 일침을 박는 남편이닷. 내 흰머리를 보면 남편도 나이 든 것처럼 느껴지나 보다. 매일 보기 때문에.....
헬스장 갔더니 이웃 언니들도 남편 못지않게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염색 안 할 거야? 염색해. 젊게 보이면 좋잖아. 언제 할 거야? 꼭 염색하고 와~"
반강제적이다. 남의 흰머리가지고 말이 많다.
저녁에 흰머리 염색을 했다. 할까 말까 고민하지 않고 염색했다. 염색하면 눈이 안 좋아진다고 해서 약 3~4달 버티다가 결국.
안 하려고 했는데..... 자연스러운 게 좋은데..... 백발로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스스로 위안을 받았는데. 멋진 백발 할마마가 되기로.
나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이 무너졌다. 남편도, 딸도, 이웃 언니들도 젊은 나를 보는 게 좋은가 보다. 보는 사람이 더 스트레스받는 듯.
어느 날 딸이 그랬다.
'엄마가 할머니 같다고. 염색하면 좋겠다고.'
'난 이미 할머니 될 준비가 되어 있는데 할머니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라고 반박했었다.
염색약 바른 나를 보고 남편이 빙긋 웃는다. 마치 쾌재를 부르듯이. 머리를 감고 나왔더니 과하게 감탄하는 남편.
"아구~ 여보, 당신 미스 됐어요. 미스."
"미스 좋아하시네. 미시즈거든. 아줌마. 아니참, 할머니."
"누가 당신더러 할머니래요. 내가 볼 땐 처녀 때랑 똑같구먼."
"말도 안 돼. 어떻게 처녀 때랑 비교할 수 있어."
"그만큼 당신이 젊어 보인다 이거죠."
만족을 넘어 대만족하는 남편이닷.
헬스장에 들어서니 눈이 마주치는 언니들마다
"잘했다. 젊어 보인다. 진작하지 그랬어. 이뻐. 염색하고 살아. 좋잖아~"
이 쑥스러움을 어쩔 거야~
관심받는 게 어색한데 예순이에 받는 관심을 행복하게 생각해야 하나.
남편과 같이 사니 맞춰가야 하는 부분이 늘어가고 있다.
당신이 좋다면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