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비교의 터널에서 나만의 길 찾기
학문의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성과를 요구받는다. 대학원생 시절에는 논문을 얼마나 썼는지, 어떤 학회에 갔는지, 연구실에서 인정받고 있는지 등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나면, 비교의 폭은 더욱 넓어진다. 같은 시기에 졸업한 동료들은 어디 교수로 임용되었는지, 어떤 연구비를 따냈는지, 논문 피인용 수는 얼마나 되는지 등을 비교하며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교수로 자리 잡은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비교의 대상은 학계 전반으로 확장된다. NSF(미국 국립과학재단) 같은 대형 연구비를 받았는가? Computers & Education, British Journal of Educational Technology, Journal of the Learning Sciences, Educational Researcher, Educational Technology Research and Development 같은 최상위 저널에 논문을 퍼블리시했는가? 연구팀을 얼마나 잘 운영하고 있는가? 이 모든 기준들이 나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NSF 그랜트 수주는 연구자로서의 커리어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여겨진다. NSF와 같은 연구비를 확보하면 연구를 보다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고, 연구팀을 꾸려 프로젝트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특히 교수 사회에서 연구비 확보는 연구력의 상징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압박감은 상당하다.
유사한 압박은 저널 퍼블리싱에서도 존재한다. '탑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은 학문적 명성을 높이는 지름길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달성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최고 수준의 학술지들은 경쟁률이 치열하고, 엄격한 리뷰를 거쳐야 한다. 한 편의 논문을 위해 수십 번의 수정과 재심사를 거치는 일도 흔하다. 또한, 연구자가 연구비를 따냈든 따내지 못했든, 논문이 '어디에' 실렸느냐는 평판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점이 있다. NSF 그랜트를 따내고, 탑 저널에 논문을 퍼블리시한 연구자들은 결코 우연히 그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엄청난 노력과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성과를 만들어낸다. 이들의 업적은 마땅히 존경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이룬 성과가 곧 모든 연구자의 필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NSF 그랜트를 받고, 탑 저널에 논문을 퍼블리시하는 것이 훌륭한 성취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연구자의 목표가 될 필요는 없다. 나와 연구의 방향성이 다르다면, NSF 그랜트가 아닌 다른 연구비를 통해 연구를 이어갈 수도 있고, 특정 저널보다는 학문적 커뮤니티 내에서 의미 있는 연구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더욱이, 성과 중심의 사고방식이 극단적으로 흐르면 연구의 본질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연구자는 ‘성과’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연구의 목적은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학문 공동체와 사회에 기여하는 데 있다. NSF 그랜트를 목표로 하는 과정에서 연구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리면, 오히려 연구의 질을 해칠 수도 있다.
또한, 연구비 수주와 논문 출판이 연구자의 능력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척도가 될 수도 없다. 모든 연구자가 NSF 그랜트를 받을 필요는 없고, 모든 연구자가 Nature에 논문을 퍼블리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연구자의 길은 각기 다르며, 자신만의 방향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연구자로서 경쟁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연구의 지속 가능성이 달라진다. 성과 비교의 터널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몇 가지 태도가 필요하다.
연구비 수주와 논문 퍼블리싱은 연구자의 능력을 입증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NSF 그랜트를 받지 못했다고 연구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고, Q1 저널(상위 25% 저널)에 논문이 없다고 연구 실적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연구의 본질은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연구비 확보나 저널 출판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연구자로서 '왜 이 연구를 하는가?'를 지속적으로 성찰하고, 본인의 연구 방향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의 의미를 스스로 정의하고, 이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연구는 단기간의 성과가 아니라 장기적인 과정이다. 오늘 논문 한 편을 퍼블리시한다고 해서 커리어가 극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꾸준히 연구를 수행하고, 차근차근 연구 역량을 키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 큰 기회가 열린다.
연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동료 연구자들과 협력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NSF 그랜트를 여러 번 떨어져도 결국 성공하는 사례가 많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과정이다.
연구의 본질은 지적 탐구와 문제 해결에 있다. 논문이 높은 저널에 게재되든, 연구비를 따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성과만 좇다 보면 연구의 재미를 잃고, 이는 장기적으로 연구자의 동기부여를 약화시킨다.
NSF 그랜트, 탑 저널 퍼블리싱, 연구 실적. 이 모든 요소들은 연구자로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것이 나의 연구 인생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을 성취한 연구자들은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이 모든 연구자의 목표일 필요는 없다. 성과 비교의 터널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나만의 연구 목표와 방향성을 잊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구자로서의 길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남들과 비교하며 불안을 키우기보다, 연구 본연의 즐거움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가치 있는 길일 것이다.